서울 종로의 오래된 골목.
낮인데도 햇살은 깊숙이 들어오지 못했다.담벼락 위에 덮인 담쟁이 덩굴이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그림자가 바닥에 흩어졌다.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면 기와지붕이 낮게 이어지고, 그 끝에 집 하나가 있었다.한옥이라고 불러도 어쩐지 어울리지 않았다.새로 덧댄 부분과 낡은 부분이 동시에 보였다.창틀은 다시 칠해졌는데, 벽지는 오래된 기름 냄새가 밴 것 같았다.모든 게 정돈된 듯 보이면서도, 그 질서가 불편하게 느껴지는 집.
현관 위에는 작은 간판이 걸려 있었다.
그 아래에는 단정한 글씨로 쓰인 안내문.
“들어오실 때 조심하세요.”
누구를 향한 말인지, 어떤 조심을 말하는 건지는 적혀 있지 않았다.
윤서령은 작은 주전자를 가만히 올려놓았다. 끓는 소리는 방 안에 거의 들리지 않았다.
이 집은 소리를 머금는 법을 아는 듯했다. 현관에서 발소리가 났다. 서령은 시선을 창문 커튼에 두고 귀로만 그 움직임을 따라갔다.낯선 여자의 발걸음. 구두 뒤축이 바닥에 닿는 순간, 잠깐 멈칫했다.
“…….”
여자는 현관에서 신발을 벗지 못한 채 서 있었다.
눈길이 바닥에 고정됐다.
문지방.
나무턱 하나 앞에서 발끝이 묶인 듯 멈춰 있었다.
“…발이, 안 움직이네요.”
여자의 목소리가 낮게 갈라졌다.
“이상하네요. 그냥, 안 넘어가져요.”
서령은 대답하지 않았다.
고개도 들지 않았다.
시선만 천천히 내렸다.
여자의 발끝, 그 앞에 닳아 있는 나무결.
다른 나무와 다를 것 없는 문턱이었다.
그런데, 공기만은 조금 비틀려 있었다.
“그냥 들어오세요.”
그녀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허락처럼 들렸지만, 동시에 경고 같았다.
여자는 조심스럽게 발을 옮겼다. 순간 몸이 기울며 무릎이 흔들렸다. 바닥에 그림자가 길게 흔들리고, 곧 다시 제자리에 붙었다.
서령은 눈을 한 번 깜빡였다. 그리고 다시 무표정으로 돌아왔다.
“물을 드릴까요.”
그 말은 늘 똑같은 높이에서 떨어졌다. 상담실은 소박했다.
하얀 벽지, 낮은 책장, 오래된 소파 두 개.
창문은 있었지만, 커튼은 항상 닫혀 있었다.
빛은 오직 전등에서만 내려왔다.
그 중에서도 시선을 잡아끄는 건 벽 한쪽의 문 하나.
검은 페인트로 덧칠된 철제 문.
손잡이는 가죽끈으로 감겨 있었고, 열리지 않았다.
그냥 닫힌 게 아니라, 봉인된 듯한 문이었다.여자는 자리에 앉으면서도 그 문을 힐끗 보았다.
“저 문은… 안 쓰는 거예요?”
서령은 기록지 위에 펜을 올려놓았다. 고개를 끄덕이지도, 젓지도 않았다.
“원하시면, 그 이야기를 하셔도 됩니다.”
여자의 얼굴에 어색한 웃음이 스쳤다.
“아뇨, 그냥 궁금해서요.”
그녀는 발목을 몇 번 문지르며, 여전히 긴장이 풀리지 않는 듯 보였다. 대화는 평범하게 시작됐다.
업무의 피로, 인간관계, 남편과의 갈등. 여자는 천천히 말을 이어갔고, 서령은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종이에 펜이 부딪히는 소리만 일정하게 흘렀다. 마치 대화 대신 종이가 대답하는 것 같았다.
한 시간이 채 되지 않아 상담은 끝났다. 여자는 커튼 뒤로 들어오는 빛을 흘긋 보다가, 조심스레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을 나설 때 다시 한 번 발끝이 문지방 위에서 주춤했다. 그녀는 이번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갔다.
문 닫히는 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가, 곧 사라졌다.
다음 내담자는 남자였다.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코트를 단정히 접어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안경 너머 눈동자가 잦은 깜빡임에 시달리는 듯 보였다. 손끝은 무릎 위에서 계속 움직였다. 그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령은 기다렸다.
기다림은 그녀가 가장 잘하는 일이었다.
“이도연입니다.”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정신분석학을 전공 중입니다.”
서령은 기록지에 이름을 적었다.
이름이 잉크 위에서 번지듯 선명하게 눌러졌다.
도연은 등을 곧게 편 채 앉았다.
보고서를 자주 쓰는 사람 특유의 자세였다.
입술을 축이며 말을 이어갔다.
“…꿈 얘기를 해도 되나요?”
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상담실 안 공기를 가르는 데 충분했다.
서령은 기록지 위에서 펜을 멈췄다. 눈을 들지 않았다.
꿈.
그 단어가 방 안의 고요를 흔들었다.

독자의 몰입감을 위해 3화까지는 매일 공개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