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거울속의 남자

by 재미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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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었다. 해가 지는 저녁. 상담소 창문엔 불빛이 희미하게 걸려 있었고, 잿빛 하늘 아래로 처마 끝에 물방울이 느리게 떨어졌다. 그냥, 그뿐이었다.

현관문이 거칠게 열렸다. 남자가 들어왔다. 신발을 벗는 동작은 어색했고, 코트 자락은 바닥을 쓸며 무겁게 흔들렸다. 윤서령은 펜을 쥐고 기록지를 펼쳤다. 고개는 들지 않았다. 굳이 그래야 할 이유가 없었으니까.

남자는 소파에 앉았다. 몸을 던지듯 앉았다. 허리를 앞으로 숙이고, 손가락 관절을 꺾었다.

"딱, 딱."

짧은 소리가 방 안을 채웠다.

"...내 꿈 얘기, 꼭 해야 합니까."

그의 목소리는 거칠었지만, 그 안엔 떨림이 있었다. 얇고, 얇은.

차가운 유리창에 맺힌 성에처럼 위태로운 떨림.

"네."

서령의 대답은 짧았다. 딱 그만큼만. 펜촉은 종이 위에서 멎었고, 숨소리만 얇게 흔들렸다. 남자는 무릎 사이로 손을 늘어뜨렸다. 관절을 꺾는 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문을 열었습니다."

그가 낮게 말했다.

"닫혀 있는 줄 알았는데... 열리더군요. 그 안에... 제가 있었습니다. 웃고 있었습니다. 그냥, 그대로. 그리고 칼을 들었습니다."

서령의 펜촉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러나 질문은 없었다. 그냥 받아 적었다. 그게 그녀의 일이었다.

"그 사람이... 아니, 내가... 나를 찔렀습니다. 꿈이었는데, 너무 똑같았습니다. 아프고, 뜨겁고. 그냥, 그대로."

그는 고개를 숙였다가 갑자기 웃었다. 웃는 건지, 우는 건지 알 수 없는 소리였다. 서령은 기록지를 넘겼다. 종이 스치는 소리가 방을 울렸다. 남자의 시선이 거울로 향했다. 오래된 액자처럼 걸려 있는 거울. 그는 눈을 가늘게 떴다.

"...선생님도 보십니까."

서령은 대답하지 않았다. 펜촉만 움직였다.

"거울에 비친 거. 그 손. 빈손이 아니었습니다. 칼을 쥐고 있었습니다."

그의 목소리가 눌려왔다.

"내 꿈에서 나를 찌르던 그 얼굴. 그 표정. 여기서도 봤습니다. 거울 속에서. 바로 그 얼굴."

서령의 호흡이 얕아졌다. 펜을 종이에 눌렀지만, 글씨는 나오지 않았다. 검은 점 하나만 덩그러니 남았다. 남자는 고개를 떨군 채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어깨가 들썩였지만, 그게 웃음인지 울음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아파 보였다.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현관으로 향했다. 문턱 앞에서 잠시 멈춰 섰다. 낮은 목소리로 혼잣말처럼 말했다.

"...꿈이, 여기서 멈추지 않는 것 같습니다."

문이 닫혔다. 소리가 방 안을 메웠다가, 이내 사라졌다. 그러나 그가 나간 뒤에도, 거울 속 시선은 여전히 남아 있는 것 같았다. 기록지는 이미 열려 있었다. 마지막 여백에는 낯선 선이 얇게 이어져 있었다. 고리 같기도, 날카로운 금속의 단면 같기도, 아니, 그냥 엉킨 실타래 같았다.

서령은 천천히 눈길을 돌렸다. 거울. 낡은 액자 속 공간은 방금 전과 똑같았다. 비어 있는 상담실, 기록지를 붙잡은 상담가. 그러나 아주 짧은 순간, 거울 속 서령의 시선이 그녀를 곧게 마주본 것 같았다. 그리고 빈손에는 아직도 칼 같은 것이 남아 있는 듯했다. 펜촉은 멈춘 채 종이 위에서 얇게 떨렸다. 서령은 눈을 내리감았다가 다시 떴다. 거울은 차가운 유리로 돌아와 있었다.

문은 닫혔다. 그러나 닫힌 건 문뿐이었다. 거울은, 여전히 무언가를 비추고 있었다. 그냥, 그래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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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금요일 연재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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