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프로파일러

by 재미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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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실, 늦은 오후.

커튼 틈새로 빛이 찔끔, 들어왔다. 방은 그만큼 어두웠다. 서령은 기록지 위에 펜을 얹었다. 꾹, 눌러 쓸 일은 없었다. 문 밖, 쿵, 쿵, 발소리가 났다. 문이 열렸다. 남자가, 들어섰다. 구겨진 코트. 풀린 넥타이. 지친 얼굴. 그러나 눈은, 시퍼렇게 살았다.

호진, 전직 형사. 서령의, 한때, 동료. 서령은 펜을 다시 들었다.

기록지 위에 얹었다. 고개는 들지 않았다.

“상담하러 왔나요, 추궁하러 왔나요.”

호진은 어깨를, 으쓱, 했다.

“둘 다.”

소파에 앉았다. 팔꿈치를, 무겁게, 걸쳤다. 담배를 들 듯, 허공을, 만졌다. 담배는 없었다. (침묵) 펜촉, 멎었다. 잉크, 흐르지 않았다. 숨소리만, 얇게.

“넌 그때, 그냥… 문, 닫아버렸지.”

호진의 목소리가 방을, 눌렀다. 서령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묻는 건가요, 말하는 건가요.”

호진은 웃었다. 웃는 건지, 우는 건지.

“둘 다.”

말은 짧았다. 공기 속에 오래 머물렀다. 밖에서 새가, 벽돌 담을 스쳤다. 방은, 더 고요했다.


과거의 메아리

호진의 목소리가 멈춘 자리에, 서령은 지난 겨울의 냄새를 맡았다. 습기와 곰팡이가 뒤섞인 냄새. 그건 낡은 지하실의 냄새였다.


어둠 속의 집

"김호진 경위님, 피해자는 이 안에 있습니다."

수사팀장이 나지막이 말했다. 서령은 그 말을 듣고도 문고리를 잡지 못했다. 대신 뒤로 한 발짝 물러섰다. 어둠 속에서 호진의 얼굴이 보였다. 그의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서령의 어깨를 스쳐 지나갔다. 낡은 철문이 끼익, 소리를 내며 열렸다. 안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었다. 호진은 먼저 들어가려다 멈칫했다.

“같이 갑시다, 윤 상담관.”

그는 서령에게 손을 내밀었다. 서령은 그 손을 잡지 않았다. 대신 고개를 저었다. "전… 여기서 기다리겠습니다." 호진의 표정이 굳었다. 그는 결국 혼자 문 안으로 들어갔다. 철문이 닫혔다. 그 문 뒤에서, 서령은 끔찍한 소리를 들었다. 누군가 울고, 소리치고, 수갑을 끄는 소리. 그리고, 마지막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침묵만이 서령의 귓가를 찢었다.

그날 서령은 문을 닫았다. 마음속의 문도, 상담소의 문도, 그리고 그 사건의 문도.


현재의 침묵

“요즘, 꿈을 꾼다.”

호진은 허리를 숙이며 낮게 말했다.

“문 앞, 서 있다. 안에서, 발소리. 수갑 끄는 소리.”

손이, 무릎 위에서, 움찔.

“철이 바닥 긁는 소리가, 문지방 밑에서, 꼭… 들리는 것 같았다.”

서령은 펜을, 기록지 위에 댔다. 글자는, 나오지 않았다. 빈칸이 길었다.

“그리고, 그게, 말한다.”

호진의 입술이 말라붙은 듯 떨렸다.

“잡아줬어야지.”

(침묵) 컵 속의 물이, 흔들렸다. 바람도 없이.

호진의 목소리가 더 낮아졌다.

“그게, 피해자인지, 내 양심인지는… 몰라. 그런데, 매번, 똑같아.”

서령의 눈썹이, 짧게, 흔들렸다. 펜촉은, 종이를 긁었다. 잉크는, 나오지 않았다.

호진은, 일어섰다. 벽 쪽으로 걸었다. 검은 문. 손잡이는, 가죽끈으로, 묶여 있었다. 그는 손을 얹었다.

“이 방… 그날 봤지. 네가, 닫은 거.”

서령의 목소리가, 낮게, 잘렸다. 단단하게.

“그 손, 거두는 게 좋습니다.”

공기가, 순간, 휘청. 문이 숨을 들이쉬듯. 철제 표면이, 부풀었다, 줄었다. 늑골, 들썩이는, 움직임.

호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손은, 그대로, 얹은 채, 서 있었다. 결국 손을, 뗐다. 짧게, 웃었다.

“넌 아직도 이러는구나.”

그는, 소파로, 돌아가지 않았다. 코트를 고쳐 입고, 현관 쪽으로 향했다. 돌아서기 전, 낮게, 중얼거렸다.

“그 방 안엔… 내가 묻은 게 있어.”

문이, 닫혔다. 소리가, 방을, 채웠다가, 사라졌다. (침묵) 펜촉이, 기록지 위에, 내려앉았다. 서령의, 숨이, 얕게, 흔들렸다.


20250830_1037_낯선 선의 고리_remix_01k3w9v0wyfchtnwd1wfzt9kas.png


서령은 홀로 남았다.
기록지를 펼쳤다.
마지막 여백에 낯선 선이 얇게 이어져 있었다.
겹치고, 이어지며… 무언가의 고리처럼 보였다.
수갑인지, 단순한 낙선인지 알 수 없었다.

서령은 펜을 들어 올렸지만, 적지 않았다.

눈길만 문으로 옮겼다.

문지방 아래 그림자가 길어졌다.
움찔, 움직였다.
아니, 그녀의 눈꺼풀이 스스로 깜박인 것일까.
어느 쪽이든, 본 것은 사라지지 않았다.

문은 닫혀 있었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지만, 방 안의 침묵이 그 문을 대신 열고 닫는 것 같았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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