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죽은 아이의 손

by 재미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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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오후였다. 하늘은 기울어 있었고, 붉은 기운이 커튼 올 사이로 얇게 스며들었다.
빛은 금세 식어 사라졌고, 방 안의 공기는 낡은 종이처럼 눌려 있었다.

현관문이 열렸다.여자가 들어왔다. 앉으면서도 여전히 서 있는 사람처럼 허리를 곧게 세웠다.
무릎 위에 얹힌 두 손은 관절이 하얗게 드러나도록 힘을 주고 있었다.

윤서령은 기록지를 펼쳐 펜을 준비했다.
시선은 들지 않았다.

“…열 살 때.”
여자의 목소리는 종잇조각처럼 부서져 나왔다.
“동생이 죽었습니다.”

(침묵. 펜촉이 종이 위에서 멎었다.잉크가 번지지 않은 채, 공기만 눌려 있었다. 숨소리만 얇게 흔들렸다.)

서령은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아주 느리게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그 애가 떠난 뒤로… 같은 꿈을 꿉니다.
문이 있습니다. 닫혀 있는 문.
그 밑으로, 손이 나옵니다. …작은 손.”

여자의 눈동자가 아래로 떨어졌다. 입술이 떨렸으나,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그 손이 제 발목을 붙잡습니다.”
그녀의 두 손이 무릎에서 발목으로 내려갔다.
“피부가 종이처럼 축축하게 들러붙습니다.
젖어 있었고… 오래된 흙냄새 같은 게 났습니다.
차갑고, 떨면서. 체온은 살아 있는 것 같았습니다.”

(침묵. 잔 위 표면이 얇게 흔들렸다.)

“그리고 묻습니다.”
여자의 목소리가 끊어진 음처럼 갈라졌다.
“언니, 왜 문을 닫았어.”

(펜촉이 종이 위에서 다시 멎는다. 숨소리만 얇게 흔들린다.)

서령의 눈썹이 아주 잠깐 흔들렸지만, 펜은 멈추지 않았다.
검은 점 하나가 깊게 번졌다.

“처음엔 그냥 꿈이라고 했습니다.”
여자가 웃었다. 웃음이라기보단, 얼굴에 그려 넣은 흉내 같았다.
“그런데… 깬 뒤에도 발목이 차갑더군요.
손이 아직도 붙어 있는 것처럼.”

방 안은 고요했으나, 그 고요는 소리처럼 느껴졌다. 마루 밑 어딘가에서 오래된 공기가 흘러가는 것 같았다.

“어젯밤엔요.”
여자의 어깨가 떨렸다.
“손이 하나가 아니었습니다.처음엔 발목. ‘톡.’그다음엔 복숭아뼈, 장딴지. ‘톡, 톡.’그리고 넷, 다섯.
발목에서 무릎까지… 저를 잡아끌었습니다.”

그녀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꿈인데도 무게가 있었습니다.살은 젖어 있었고… 손톱이 종아리를 긁었습니다.톡, 톡. 그 소리는 마치 오래된 시계 초침이 끊어진 방에서 혼자 움직이는 것 같았습니다.”

서령의 손은 기록지를 누르고 있었다.그러나 글자는 나오지 않았다.
빈칸만 길어졌다.

“오늘은 상담소 문 앞에서도 들렸습니다.”
여자의 목소리는 낮고, 기어들었다.
“문지방 아래서… ‘톡, 톡.’두드리는 소리.”

둘의 시선이 동시에 문을 향했다.
그곳은 고요했다.그러나 고요하다는 사실이 방 안을 짓눌렀다.

“…그리고, 그 목소리.”
여자의 어깨가 들썩였다.
“동생 목소리 그대로.
‘언니, 왜 문을 닫았어.’같은 말만, 같은 높이로.”

서령은 펜을 잡았지만, 글자는 나오지 않았다. 검은 점만 깊어졌다.

여자가 떠나고, 상담소는 다시 고요해졌다. 그러나 그 고요는 이전과 달랐다. 공기가 더 두꺼워진 듯했다.

서령은 기록지를 펼쳤다.
마지막 장.
이름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었다.그녀의 손가락이 한 줄에서 멈췄다.

숨이 멎었다.

이선우.


글씨는 오래된 잉크였는데, 막 적은 듯 선명했다.
순간, 글자가 흔들리며 다른 이름처럼 보였다.
“선우”가 “서령”으로 변했다가 곧 사라졌다.

서령은 짧게 숨을 들이마셨다.

잉크 냄새가 또렷하게 올라왔다.
잉크에선 원래 나지 않아야 할 냄새였다.

글씨 주변으로 번진 잉크가 눈동자 무늬처럼 퍼져 있었다.
점 가운데 점, 원 가운데 원—
기록지가 그녀를 응시하는 듯했다. 서령은 고개를 들어 문을 보았다.

문지방 아래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그림자가 움찔 움직였다.아니, 그녀의 눈꺼풀이 저절로 깜박인 탓일까.

어느 쪽이든, 본 것은 사라지지 않았다.

서령은 펜을 들어 올렸다.그러나 글씨는 나오지 않았다.종이 위에는 검은 점 하나만이 깊게 남았다.

점은 잉크를 빨아들이며 원처럼 퍼져 나갔다. 그리고, 마치 눈동자 하나가 기록지 위에 천천히 떠오르는 듯했다.



문은 닫혀 있었다.
그러나 닫혀 있다는 말은… 끝내 열린 적이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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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화부터는 매주 금요일 발행 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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