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d better come on time!

by 재미나이



부채춤.jpg



스무 살의 영어는 내게 끝없는 모험이었다. 꿈 많고 거침없던 그 시절, 나는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보고 싶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패기가 영어를 배우는 데 큰 힘이 됐지만, 당시엔 그저 한국에서 배운 영어를 미국 땅에서 몽땅 써보고 싶었을 뿐이다. 외출 전, “일상회화 정복!” 책을 펼쳐놓고 “오늘은 이 표현 써야지!” 다짐하며 캠퍼스로 뛰쳐나갔다.


그 시절, 캠퍼스엔 1년에 한 번 한국 문화를 알리는 작은 행사가 열렸다.

거창한 축제는 아니었지만, 한국 유학생들이 모여 불고기, 떡볶이, 파전을 만들고 한국 물건을 파는 아담한 바자회였다. 당시 인터넷은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아 미국 친구들은 한국을 거의 몰랐다. 그들에게 문화를 소개하는 건 설렘이자 책임이었다.

나는 특히 한국 음식이 너무 그리웠다.. 서부에선 한국 음식이 제법 구하기 쉬웠지만, 동부로 온 뒤론 사정이 달랐다. 괜찮은 한국 식당은 차로 세 시간 거리. 학기 중 왕복 여섯 시간을 뚫을 여유는 없었다. 그러니 하루라도 불고기와 떡볶이를 마음껏 먹을 기회는 축제 그 이상이었다.

우리는 교회 목사님, 사모님, 다른 종교단체의 도움을 받아 식재료를 구했다. 준비 과정은 정신없었지만 웃음으로 가득했다. 행사 전날 밤, 나는 방에서 부채춤 연습에 몰두했다. 어설프게 부채를 휘두르며 혼자 킥킥댔다. “왜 하필 부채춤이지…” 지금 생각하면, 그 촌스러운 춤을 한국 전통춤이라 믿은 미국 친구들에게 미안할 뿐이다.

그때 방으로 들어온 친구들이 내 춤을 보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

“Whoa, What’s that? It’s so cool!” (와! 그거 뭐야? 멋지다!)

나는 땀을 닦으며 씩 웃었다.

“내일 한국 행사에서 공연해! 저번에 말했잖아? You’d better come on time!” (꼭 시간 맞춰서 오면 좋겠어)--->적어도 내 입장에서는

책에서 건진 그 표현을 멋지게 써봤다고 뿌듯했다.

그런데 순간, 친구들 얼굴에 어색한 미소가 스쳤다.

“Wow… you’re kinda intense. Okay, we’ll be there!” (와, 너 진짜 진지하구나...알았어. 우리 갈게!)

그들은 슬며시 사라졌다. 나는 ‘쟤들 왜 저래?’ 하며 다시 부채를 휘둘렀다.

며칠 뒤, 점심을 먹다 Kevin이 그때 이야기를 꺼냈다.

“ you were hilarious. You straight-up threatened us to come to the event!” (야 너 웃겼어. 너 우리 보고 바자회 오라고 막 협박 했잖아!)

나는 어리둥절했다.

“Threatened? Me?” (혐박?내가?)

Kevin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Yeah! ‘You’d better come on time’? That’s like saying, ‘You better show up or else!’”

(그래! 너 제 시간에 오는게 좋을걸? 그건 마치, 너 안오면 알아서해!"이런거야!")

그제야 퍼즐이 맞춰졌다. 내가 뿌듯하게 써먹은 그 표현은 초대가 아니라 협박이었다. 한국어로 치면 “제시간에 와, 안 그러면 혼나!”라고 툭 던진 셈. 웃음이 터졌고, 얼굴은 화끈거렸다. “일상회화 정복!” 저자님, 이 표현은 좀 빼셨어야죠!

그 모든 건 스무 살의 용기 덕분이었다. 틀려도 부끄럽지 않았고, 오해도 웃음으로 넘겼다. 그 시행착오가 내 영어를 살찌웠다. 지금은 “You’d better”를 거의 안 쓴다. 대신 부드럽게 말한다.

“Hope you can make it!”나 “Would love to see you there.” 더 따뜻하고 안전한 표현들이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엔, 부채춤 부채를 휘두르며 “You’d better come on time!”을 외치던 그 씩씩한 스무 살이 여전히 살고 있다. 그 오해와 웃음은 내 유학 시절의 가장 빛나는 흔적이다.

그리고 그때 협박에 벌벌 떨면서 내 촌스러운 부채춤을 보러와준 친구들이 무척 그립다.


화, 목, 일 연재
이전 13화그는 나에게 뭔가를 했다…? 영어 한 마디의 오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