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남동 골목, 그림책이 속삭이는 곳

by 재미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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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남동의 골목은 늘 새롭다. 경의선 숲길의 북적이는 사람들을 지나, 좁은 골목으로 한 발짝 들어서면 세상이 한 톤 낮아진다. 발걸음 소리가 골목 벽에 부딪히며 메아리치고, 어디선가 새어 나오는 커피 향이 코끝을 스친다. 오늘은 그 골목 깊숙이 숨은 보물 같은 곳, ‘그림책방 곰곰’을 찾아가는 길이다.

홍대입구역에서 마포 06번 마을버스를 타고 연남동에 내리자, 익숙한 풍경 속 낯선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고양이 캐릭터가 살짝 웃고 있는 듯한 ‘곰곰’의 간판. 그 소박한 손글씨는 마치 동화책의 첫 페이지를 여는 초대장 같았다. 문을 열자, 종이 냄새와 함께 나무 책장에서 새어 나오는 따뜻한 빛이 나를 맞는다. 서점 안은 작지만, 그 안엔 아이와 어른 모두를 위한 이야기가 가득하다.

책장마다 색색의 그림책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빨간색, 파란색, 노란색 표지들이 저마다 다른 세계를 약속하듯 빛난다. 책장 사이엔 고양이 모양의 책갈피와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특히, 곰곰의 시그니처인 ‘고양이 똥꼬 가방’이 눈에 띈다. 귀여운 고양이 얼굴에 장난스러운 똥꼬 모양이 그려진 가방은, 이곳이 단순한 책방이 아니라 동심의 놀이터임을 말해준다. “고양이 좋아하시면 이거 꼭 보세요!” 주인장의 밝은 목소리가 공간을 채운다. 그 웃음소리는 서점의 따뜻한 공기를 한층 더 부드럽게 만든다.

나는 책장 사이를 천천히 거닐다 우연히 한 권의 그림책을 집어 들었다. 오싹오싹 해골 치약 젤리. 제목부터 입꼬리가 올라간다. 책을 펼치자, 해골 모양의 젤리가 깡충깡충 뛰어다니며 웃는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한 장을 넘길 때마다 어린 시절, 어머니와 함께 동화책을 읽던 저녁이 떠올랐다. 그때의 나는 매일 밤 책 속 세상으로 여행을 떠났다. 공기놀이를 하다 넘어져 무릎이 까진 날, 어머니가 읽어주던 곰돌이 푸의 한 구절이 내 눈물을 멈추게 했던 기억. 곰곰의 그림책은 그런 순간들을 다시 꺼내어 내 앞에 펼쳐놓았다.

서점 구석에 놓인 작은 나무 테이블에 앉아 책을 읽다 보니, 창밖으로 연남동 골목이 보인다. 골목을 오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느리고 여유롭다. 경의선 숲길의 활기찬 분위기와 달리, 이곳은 고요하다.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책장 위를 비추고, 그 빛은 그림책의 색깔과 어우러져 작은 무지개를 만든다. 곰곰은 단순히 책을 파는 곳이 아니다. 이곳은 잊고 있던 동심을 깨우고,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멈춰 숨을 고를 수 있는 비밀의 정원이다.

주인장이 다가와 말을 건다. “다음 주에 그림책 북토크가 있어요. 같이 읽고 이야기 나누실래요?” 그 말에, 곰곰이 책과 사람을 잇는 사랑방임을 새삼 느낀다. 그녀는 책을 소개하며 그림책이 어른에게도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이야기한다. “그림책은 단순해 보이지만, 그 안에 담긴 이야기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어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나는 다시 책을 펼친다. 오싹오싹 해골 치약 젤리의 마지막 페이지, 해골 젤리가 친구들과 함께 웃으며 춤추는 장면이 내 입꼬리를 다시 올린다.

연남동의 다른 책방들과 곰곰은 닮은 듯 다르다. 얼마 전 방문했던 헬로인디북스에서는 독립출판 시집이 내 마음을 어루만졌다면, 곰곰에서는 그림책이 동심을 깨웠다. 여행책방 사이에에서는 낯선 도시로의 설렘을, 라이너 노트에서는 재즈와 함께 흐르는 깊은 여운을 만났다. 하지만 곰곰은 그 모든 것과는 또 다른, 순수함 그 자체를 선물한다. 이곳에서 나는 다시 아이가 되고, 세상은 조금 더 따뜻해진다.

서점을 나서며 골목을 다시 걷는다. 연남동의 좁은 골목은 여전히 고요하고, 그 끝에는 또 다른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을 것 같다. 곰곰에서 보낸 오후는 내 마음에 색연필로 그린 그림 한 장을 남겼다. 해골 젤리가 춤추는 그 그림처럼, 내 하루도 가볍게 깡충거린다.

당신에게 특별한 그림책은 무엇인가요? 그 책이 당신에게 어떤 추억을 속삭였나요? 그리고 연남동의 어느 골목에서 당신만의 이야기를 발견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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