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때가 있다. 기술이 발전해 어느 순간 신선함을 넘어 유용해질 때. 그 분기점은 명확하다. 실제로 쓸 때 불편하지 않느냐다. 단지 새롭기에 신기한 것과 삶을 윤택하게 하는 건 다를 수밖에 없다. 수많은 신기술이 이 분기점을 넘어 세상에 퍼졌다. 그만큼 탐스러운 무언가로 거듭났다는 뜻이다. 신형 S90 리차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이하 S90 T8)를 보고 그 분기점이 떠올랐다. 그래,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이제야 탐스러워졌구나.
S90 T8은 기존에도 있었다. 있었는데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라는 점을 인식하게 한 정도였다. 아무래도 전기모드로 주행할 수 있는 거리가 짧았으니까. 오히려 엔진과 전기모터가 합심해 발휘하는 두둑한 출력이 더 주목받았다. 충전도 할 수 있으면서 출력도 넉넉한, 다재다능한 최상위 트림으로서 역할이 컸다. 그러니까 아직 분기점을 넘어서기 전이었다.
신형은 다르다. 확실히 기술 발전의 분기점을 넘었다. 배터리를 키워 전기로만 주행할 수 있는 거리가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비약적이라는 말이 과장이 아니다. 기존 모델 대비 전기모드 주행거리가 약 80% 늘었다. 그렇게 도달한 전기모드 주행거리는 57km. 이 정도 거리면 어지간한 출퇴근은 전기모드로만 달릴 수 있다는 뜻이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가 처음 나왔을 때 혹하게 한 개념을 실제 생활에서 유용한 수준으로 끌어올린 셈이다.
자꾸 전기차도 아닌데 전기모드 주행거리에 집중하는 이유가 있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자동차의 최대 가치를 완성하는 요소는 전기모드 주행거리인 까닭이다. 평일 출퇴근은 전기차처럼, 주말 장거리는 내연기관처럼.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의 존재 목적이다. 친환경이 화두가 된 지금 딱 필요한 형태지만, 그동안 유용하진 못했다. 이제 신형은 50km가 넘는 전기 주행거리를 확보해 달라졌다. 처음 솔깃해하던 용도를 온전하게 수행한다. 존재가 또렷해졌다.
신형 S90 T8은 그 변화 하나만으로도 완전히 다시 보게 한다. 안팎 디자인이 바뀌지 않았는데도 더 탐스러워 보일 정도로. 사람 마음이 그렇다. 능력을 알게 되면 또 달리 보인다. 여전히 다부진 선과 면은 백자 같은 차분함을 풍긴다. 특히 S90은 차체가 낮고 길기에 지평선 같은 감흥이 있다. 어지럽지 않은 그 선을 단지 바라만 보아도 마음이 편해지는 그런. 매번 느끼지만 처음 봤을 때도, 다시 볼 때도 디자인 신선도가 좋다. 어느새 볼보자동차가 지금 디자인을 들고 온 지도 몇 년이 지났다. 처음 느낀 단아함이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한다.
실내 디자인 역시 그대로다. 잘 꾸민 거실을 굳이 바꿀 이유가 없는 것처럼. 대신 내실이 더 알차게 변했다. 신통방통한 ‘T-map 인포테인먼트’를 적용한 덕분이다. 차량에 음성인식 누구(NUGU) 서비스, 티맵(Tmap) 내비게이션, 음악 스트리밍 플로(FLO)가 잘 녹아들면서 차량 인포테인먼트의 새 전기를 열었다. 이 정도로 깔끔하게 연동하는 시스템은, 현재 볼보자동차가 유일하다. 신형 S90 T8은 잘 꾸민 인테리어를 유지하며 첨단 연결성을 높인 셈이다. 전기모드 주행거리로 진정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가 된 것처럼, T-map 인포테인먼트로 보다 첨단 자동차로 거듭났다. 잘 빚은 안팎을 유지하며 첨단 기술로 내실을 채우는 전략이랄까.
주행 부분 내실을 확인할 시간이다. 전기차처럼 달리는 S90을 운전하는 기분이라니. 긴 휠베이스가 담보하는 진중한 거동을 한층 정숙해진 실내에서 음미할 수 있다. 시내, 특히 교통량이 많은 구간에선 전기모드로 달리는 쾌감이 크다. 가다 서다 반복할수록 주행거리는 더 두둑해지고, 실내가 정숙할수록 B&W 오디오 시스템이 연주하는 소리는 더욱 풍성해지니까. 차분한 실내와 섬세한 음악의 조합. 볼보자동차가 전하고자 하는 매력이 전기모드에선 더욱 도드라지는 셈이다. 자동차 안에서 또 다른 쉼의 순간이 되도록.
교통량이 줄어들어 조금 속도를 낼 여지가 생겼다. 이때도 전기모드만으로도 충분하다. 부드럽게 교통 흐름 속에서 유영할 만한 출력은 내준다. 기분을 전환하고 싶으면 엔진까지 깨우면 그만이다. 하이브리드모드에서 S90 T8은 최고출력 455마력을 뿜어낸다. 풍성한 출력이 일순 등이 시트에 착 붙게 하는 가속력을 선사한다. S90 T8은 볼보자동차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라인업에서 가장 펀치력이 좋다.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4.8초에 도달한다.
맞다. S90은 도로에서 밀어붙이며 재미를 느낄 자동차는 아니다. 편안한 상태를 음미하며 달리는 편이 S90의 매력을 더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그렇게 탈수록 볼보자동차는 진가를 발휘한다. 그럼에도 가끔 쾌속정처럼 긴 차체를 밀어붙이고 싶을 때가 있다. 풍성한 출력을 마음껏 흩날리며 달리는 별미 같은 쾌감이랄까. 그럴 수 있느냐와 없느냐 차이는 자동차를 바라보는 시선을 달리 한다. 고급 자동차의 경계다. S90 T8은 그 영역까지 품는다. 엔진과 전기모터가 맹렬히 돌아가면 고성능 세단의 면모를 발휘한다.
두 얼굴의 자동차. S90 T8을 타고 나서 머릿속에 머문 문장이다. 평일에는 전기차처럼, 주말에는 내연기관 자동차처럼 쓸 수 있으니까. 더불어 전기차처럼 알뜰살뜰하게 달리다가 고성능 세단처럼 호쾌하게 즐길 수 있으니까. 전기모드 주행거리와 최고출력 모두 늘어나면서 성격이 더 분명해졌다. 이제야 오랫동안 곁에 둘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세단으로서 탐스러워졌다. 확실히 분기점을 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