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1억 원이 예전 같지 않은 세상이 됐지만, 여전히 차값 1억 원은 상징하는 바가 크다. 마력이 얼마고, 가진 편의장비가 무엇인지 주절주절 설명할 필요 없이 고급 차라는 걸 단번에 드러낼 수 있으니까.
볼보 XC90 B6의 가격은 트림에 따라 8,720만~9,650만 원이다. 엄밀히 말해 1억 원은 넘지 않지만 그 가치는 ‘1억짜리 차’라는 표현을 쓰기에 무리가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만족스럽기 그지없었던 XC90 B6 얼티밋 브라이트의 기억을 전한다.
“아빠, 이 차 되게 크다.” 등굣길에 지하주차장에 내려간 아이가 XC90을 마주하고는 대뜸 말했다. 볼보에서 제일 큰 차라고 말해주었더니 시트에 벌렁 드러눕는다. 얼른 안전벨트 매라고 해도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다. 이러다 늦는다고 재차 말해도 “커튼도 있네?”라며 2열까지 쭉 잡아당긴다. 차가 커서 좋으냐고 물으니 안이 환하고 시트도 부드러워서 마음에 든단다. 편하게 집에 있는 것 같다나.
장난삼아 이 차 안에 거미가 숨어있다고 했더니 난리가 났다. 안팎을 쥐잡듯 뒤지고 3열까지 숨겨진 거미 그림을 기어이 찾아내고는 꺅꺅거리며 좋아한다. 애를 학교에 내려주고 돌아오는데 ‘집 같다’라는 말이 계속 머리에 남았다. 단지 넓고 큰 차라고만 생각했는데 집처럼 밝고 따뜻하다니…생각해보면 볼보가 추구하는 ‘스칸디나비안 디자인’의 지향점이 딱 이런 부분 아닌가? 차에 탄 이들에게 거실 같은 편안함을 선사하는 것 말이다. 그렇게 XC90은 ‘스쿨버스’의 역할을 훌륭하게 마쳤다.
내친김에 XC90을 타고 멀리 가고 싶어 찾아보니 강원도 인제 자작나무 숲이 떠올랐다. 숲 앞에 차를 세워두면 꽤 그럴싸한 그림이 나올 것 같아 두 시간 동안 쉬지 않고 달렸다. 인상적인 부분은 연비였다. XC90 B6의 공인연비인 9.1km/L를 뛰어넘는, 11km/L이상의 연비가 트립 컴퓨터에 계속 찍혔다. 운전을 얌전하게 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XC90 B6 주행 중 마음에 들었던 또다른 부분은 쾌적한 가속성능이다. 2톤을 훌쩍 넘는 대형 SUV에 2L 가솔린 터보 엔진을 얹어 날쌘 움직임을 기대할 수 없을 것 같지만 웬걸. 더해진 모터가 출발할 때마다 힘을 보태 스트레스가 없다. 그뿐만 아니라 이 엔진은 어지간해선 숨이 죽질 않는다. 화수분처럼 끝없는 힘이 솟아 나온다. 볼보의 가장 큰 SUV를 운전하며 호쾌하다는 표현을 쓸 줄 몰랐다.
얼마나 달렸을까? 새삼스레 ‘XC90이 이렇게 주행 질감이 고급스러웠나?’싶다. 정숙성은 물론이고 노면을 굴러가는 바퀴에서 전해지는 진동과 소음이 없다시피 할 정도다. 한없이 부드럽다. 게다가 운전 재미까지 있는 차라니.
원대리 자작나무숲에 도착했는데 아뿔싸. 차가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아쉬운 마음에 등산이라도 할 생각에 차를 주차장에 세워놓고 트렁크 해치를 열었다. 넓다. 여기에 캠핑 장비며 등산 장비며 실으면 한없이 들어갈 것 같다. 자작나무숲에 들어가 보니 XC90과 너무 잘 어울릴 것 같아 더없이 아쉽다.
돌아오는 길, 그동안 시승했던 다양한 SUV들이 떠올랐다. 정통 오프로더부터 럭셔리 SUV까지 수많은 SUV가 있지만 다목적성과 고급스러운 승차감, 그리고 편의성까지 두루 갖춘 차는 많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동안 XC90 역시 B6부터 T8 그리고 T8 R 디자인 모델까지 두루 경험했다. 그리고 모델 상관없이 시승을 마칠 때가 되면 마음속에 한 가지 문장이 떠올랐다. ‘집에 들일 차를 한 대만 고르라고 한다면 딱 XC90이겠구나’. 브랜드, 공간, 성능, 편의장비, 정숙성, 고급스러움 어느 것 하나 패밀리카로 쓰기에 부족한 게 없기 때문이다.
돌아와 다시 아이를 태우러 학교에 갔다. 가는 길에 아내를 뒤에 앉혔는데 대뜸 물어본다. “이 차는 1억 넘지?” 와, 정말 비싼 차는 가격을 말하지 않아도 그렇게 보이는구나. 이러니 주저하지 않고 주변에 추천할 수밖에. 아니, 나도 사고 싶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글 ㅣ 이재림(스튜디오 카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