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알려진 볼보의 여러 광고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은 무엇일까요? 아마도 많은 분들이 전기차 회사로의 전환을 알린 볼보 'The ultimate safety test' 영상을 떠올리실 것 같습니다. 북극이라는 극한의 상황에서 극한의 자동차 안전 테스트가 이루어지려는 순간, 빙하가 무너져 내리며 보는 이의 예상을 뒤엎는 인상 깊은 내용이죠. 볼보는 이 영상을 통해 기후 변화 문제를 지적하고 전기자동차 회사로의 전환을 선언했습니다. 보는 이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한 이 광고는 조회수 974만 회를 기록하며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그런데 조금 옛날 사람인 저는 아주 오래전에 봤던 사진이 떠오릅니다. 볼보 중에서, 아니 모든 자동차 광고를 통틀어 큰 영향을 주었던 7-UP 테스트입니다. 지금 S60의 먼 조상이 되는, 140 시리즈에서도 4도어 144 모델 7대를 차곡차곡 쌓아 올렸던 광고입니다. 1971년에 지면(잡지 등)에 나간 이 광고는 동영상으로도 제작되어 지금도 볼 수 있지요.
광고 내용은 이렇습니다. 한 배우가 볼보 144의 운전석에 앉아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작년에 미국에서 팔린 하드탑 차가 거의 500만 대가 된다며, 사람들이 참 좋아하는 것 같다고 합니다. 하지만 볼보는 그렇지 않은데, 하드탑이 버틸 수 없기 때문이라네요. 그리고 모든 볼보는 6개의 철로 만든 기둥(필러)이 있다고 하며 두들겨 보여줍니다. 그 덕분에 튼튼하다고 말하면서 6대의 차가 올라간, 가장 아래의 차에서 내립니다. 그렇게 7대의 차가 차곡차곡 쌓여 있음에도 맨 아래의 차가 멀쩡한 상태를 보여주며 볼보의 안전을 강조합니다.
당시 미국에서는 차의 지붕과 차체를 잇는 기둥을 4개만 넣는, 그러니까 앞 유리 좌우와 뒤 유리 좌우에만 필러를 넣고 가운데에는 없는 하드탑 방식이 유행했습니다. 옆 창문을 모두 내리면 오픈카를 탄 듯 탁 트인 시야를 즐길 수 있었거든요. 하지만 차가 뒤집어지는 전복 사고가 났을 때는, 무게를 견뎌야 할 기둥이 부족해 안전에는 취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볼보는, 새로운 박스형 디자인을 입고 만들어진 140 시리즈를 내놓으며 다른 회사들이 멋 부림을 신경 쓰느라 소홀하게 여긴 안전을 전면에 내세우게 됩니다. 그 결과가 동영상에 나온 7대를 쌓아 올리는 광고, 바로 세븐 업(7-Up) 타워였습니다.
당연하게도 이 광고는 많은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1980년대 들어 다시 한번 7대의 차를 쌓았습니다. 이미 240 시리즈가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고 그 후속으로 나온 740과 760 중에서 세단과 스테이션왜건을 섞어서 타워를 올립니다.
이 때는 우리나라도 수입차 시장이 개방되어 본격적으로 판매를 시작한 이후였는데요, 국내에 막 진출했던 볼보가 국내 광고에서도 이 사진이 나옵니다. 당시 판매하던 740과 760 모델과 함께 ‘안전도 1위’를 크게 강조하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제 머릿속에 ‘볼보=안전’이 자리 잡은 것은 그때가 아닐까 싶네요.
물론 지금의 볼보도 자동차의 뼈대를 이루는 섀시를 튼튼히 만들기 위해 큰 노력을 기울입니다. 볼보의 모든 차를 구성하는 두 개의 플랫폼 SPA와 CMA을 만들면서 가장 우선으로 생각한 것이 바로 튼튼한 섀시입니다.
물론 같은 플랫폼이라도 차 형상에 따라 구조적으로도 차이가 생깁니다. 만약 같은 플랫폼으로 길이가 같은 세단과 왜건, SUV가 있다면, 구조적으로 볼 때 비틀림 강성이 가장 높은 것은 무엇일까요? 일반적으로 자동차의 뼈대는 길이가 같다면 높이가 낮을수록 강성이 좋아집니다. 두께가 같은 종이를 사용해 만든 박스가 있는데, 같은 길이와 너비를 가지고 높이가 올라갈수록 비틀었을 때 더 쉽게 찌그러집니다. 때문에 SUV를 만드는 것은 세단이나 왜건보다 더 여러 곳을 보강해야 합니다. 더욱이나 비포장도로나 험로를 달릴 때 차체가 비틀어질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에, 필러의 형상은 물론 바닥을 가로지르는 멤버와 트렁크 주변 등 열려 있는 공간 주변을 단단하게 만드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볼보에는 흔히 초고장력 강이라는, 매우 높은 강도의 철이 사용됩니다. 세계 철강 협회의 구분에 따르면 인장강도(Tensile Strength)를 기준으로 하는데 단위는 메가 파스칼(MPa)입니다. 270 MPa 이하를 일반 강판(Mild Steel), 270 MPa 이상 700 MPa까지를 고장도 강판(High Strength Steel), 700 Mpa 이상을 첨단 고강도 강판(Advanced High Strength Steel)으로 부르고 이중에서도 1000 MPa 이상을 따로 나누어 초고강도 강판(Ultra-High Strength Steel)이라 따로 부르기도 합니다. 1000 MPa가 1기가 파스칼(GPa)이기 때문에 기가 스틸이라고도 합니다. 물론 이는 일반적인 구분으로 자동차 회사마다 혹은 철강 회사마다 조금씩 기준이 다릅니다. 볼보에서는 일반 강판을 최대 270~390 Mpa까지, HSS는 최소 340 MPa 이상을 가리킵니다. AHSS 또는 EHSS(Extra High Strength Steel)는 최소 600 Mpa 이상이고 UHSS는 최소 800 MPa 이상의 강도를 가진 것을 의미합니다.
차의 뼈대에 인장강도가 높은 재질을 쓸수록 당연히 자동차 섀시의 강성도 함께 올라갑니다. 특히나 사람이 타는 공간을 둘러싼 부분에는 가장 튼튼한 초고강도 강판으로 만든 부품이 쓰입니다. 그래서 사고가 났을 때 실내 공간을 감싼 A 필러와 B 필러가 단단히 버티면서 새장처럼 사람을 보호하게 됩니다.
이런 초고강도 강판은 만드는 방법도 다릅니다. 대부분의 철강은 철과 탄소를 섞어 비율을 조절하는데, 초고강도 강판은 여기에 미량의 붕소를 넣어 일단 평평한 강판을 만듭니다. 이를 필요한 부품 형상으로 만드는 과정을 스탬핑이라고 합니다. 철판을 부품 형태의 틀에 얹고 위에서 엄청난 압력으로 눌러 모양을 잡습니다. 그리고 불필요한 부분을 잘라내거나 접고 구멍을 뚫어 부품을 완성합니다.
이를 상온에서 하면 냉간 성형으로 일반적인 철판들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900도 정도로 붕소강 강판을 가열하고 고압으로 찍어내는, 열간 성형을 하게 되면 바로 초고강도 강판이 만들어집니다. 너무 단단하기 때문에 이후 부품으로 만드는 가공에도 특수 공구를 사용하는 등 제작비가 많이 듭니다.
그러면 모든 부분에 초고강도 강판을 사용해야 할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차가 달리는 동안을 생각해 보면, 섀시에 가해지는 충격도 나뉩니다. 달리는 동안 요철 등을 바퀴가 밟아 ‘쿵’하고 강하게 오는 충격이 있습니다. 또 연속된 코너를 빠르게 달릴 때는 도로의 굴곡에 따라 좌우로 섀시가 비틀리는 힘을 받게 됩니다. 즉 짧은 충격과 지그시 누르는 힘이 모두 작용합니다.
만약 섀시의 모든 부분에 초고강도 강판을 사용하게 되면, 너무 단단한 섀시 때문에 노면의 충격이 그대로 차 전체에 퍼지게 됩니다. 아무리 서스펜션과 타이어가 열심히 일을 해도 짧고 굵은 충격은 섀시의 부드러운 부분이 흡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섀시가 유연해야 할 이유는 또 있습니다. 바로 충돌 안전성입니다. 달릴 때는 단단해야 하지만 만약의 사고가 났을 때, 부딪힌 부분이 찌그러지면서 차의 운동 에너지를 흡수해야 합니다. 만약 단단하게 버티기만 한다면? 차 안에 타고 있는 사람에게 그 충격이 고스란히 전달되기 때문에 더 위험합니다. 때문에 엔진룸과 트렁크 공간 등 사람이 차고 있지 않은 앞뒤 부분은, 평소에는 적당한 강성을 유지하며 탄탄한 달리기를 위한 틀 역할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사고가 났을 때는 휘어지고 구부러지면서 충격을 받아들입니다. 때문에 자동차 섀시를 구성하면서 어느 부분에 일반강을 쓰고 어디에는 초고강도 강을 사용할 것인지는 그 브랜드의 기술력과 노하우가 담겨 있습니다.
현재 볼보 모델은 SPA와 CMA 두 개의 플랫폼에서 가지치기를 했습니다. 가장 먼저 나온 XC90은, 다양한 섀시 재질과 구성을 사용한 좋은 예입니다. 차의 앞뒤 부분에는 잘 찌그러지고 사고가 났을 때 교환이 쉬운 일반 강판(회색)을 사용했고, 충격에 버티기 위해서 엔진룸 아래쪽이나 트렁크 좌우에는 고강도 강판과 첨단 고강도 강판을 넣어 보강했습니다. 그리고 세이프티 케이지를 이루는 필러들은 물론이고 A 필러 아래를 좌우로 잇는, 기본 플랫폼은 당연하게도 UHSS를 사용했습니다.
더욱이나 B 필러는, 측면 추돌 사고에서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큰 충격을 받는 부분이기 때문에 바깥에는 초고강도 강판을 쓰고 안쪽에 다시 고강도 강판을 덧대는 이중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덕분에 XC90은 섀시 무게의 40%가 초고강도 강판으로 동급은 물론 어느 자동차와 비교해도 가장 높은 비율을 자랑합니다.
물론 이런 뼈대에서 철이 아닌 부분도 있습니다. 앞 서스펜션의 댐퍼가 고정되는 마운트 부분과 이를 좌우로 이어준 타워 브레이스로 여기는 알루미늄입니다. 철은 강성이 좋은 대신 진동을 전달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때문에 노면 진동을 운전자에게 가장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앞바퀴가 달려 있는 서스펜션 마운트는 알루미늄으로 만드는 것이 유리합니다. 또 차의 가장 앞부분도 찌그러질 때 충격 흡수력이 좋은 알루미늄을 사용했습니다. 목적과 필요에 따라 재질을 골라서 사용하는 것도 충분한 노하우를 갖고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사실 이런 자동차 섀시의 재질에서 중요하게 볼 부분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무게가 가벼워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비용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유럽에서는 자동차를 만드는 과정뿐만 아니라 사용이 끝난 후 재활용을 어떻게 얼마나 하는지도 매우 중요합니다. 오랫동안 안전한 차를 만들며 쌓인 노하우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다양한 재질을 적재적소에 사용해 최선의 결과물을 만들어낸 것. 글로는 쉽게 요약할 수 있는 일이지만 볼보가 가장 잘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글 = 이동희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