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후반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넘어가는 격동의 시대였다. IMF 외환위기로 경제는 힘들었지만, 젊은 세대는 PC 통신과 스타크래프트, 휴대폰과 MP3 플레이어 등 새로운 문화와 문명을 쭉쭉 흡수했다. 비디오와 카세트테이프의 자리는 크고 작은 디스크들이 대체하며 그렇게 디지털 시대로 거침없이 흘러 넘어갔다.
1998년에는 사이버 가수 아담도 나왔다(이보다 2년 앞서 일본에서 다테 쿄코라는 사이버 아이돌이 등장했었다). 당시 벤처기업의 활성화를 위해 파격적으로 등장한 아담은 ‘세상엔 없는 사랑’이란 노래로 흥행에 성공하며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1집은 20만 장 이상 팔릴 정도로 성공을 거뒀고, 이후 류시아, 사이다(CYDA) 등의 후속 사이버 가수가 탄생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하지만 오래가지는 못했다. 당시 기술력 부족으로 CG 비용이 어마어마하게 많이 들었고, 사이버 가수는 앨범 발매 이외에 예능 프로그램 출연이나 사인회, 행사 등의 활동을 하지 못해 채산성이 좋지 않았다. 연달아 혜성처럼 등장했던 사이버 가수들은 결국 반짝 빛나고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시기상조였다. 하지만, 후세에 태어날 가상 캐릭터의 가능성과 영향력은 충분히 가늠해볼 수 있는 시도였다.
그 뒤로 20년이 넘은 지금, 아담의 자식(?)들이 화려하게 등장했다. 그래픽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은 실제 인간과 가상 인물의 경계를 허물었다. 오히려 우리는 과한 보정으로 소셜 네트워크 계정에서 점점 안드로이드에 가깝게 가고 있지 않은가! 사실에 가까운 그래픽과 모션 캡처 등의 기술이 더해져 ‘불쾌한 골짜기 현상(로봇이나 캐릭터가 인간과 어설프게 닮으면 이질적인 불편함이 증가한다는 심리학 현상)’도 덜었다. 사이버 캐릭터를 받아들이기에 이제서야 만반의 준비가 된 것이다.
최근 떠오르고 있는 버추얼 인플루언서 로지는 음반과 광고 등 다양한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실제 아이돌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며 영향력을 떨치고 있다. 이어서 등장한 호곤해일(HOGONHEIL, #hogonheil)은 버추얼 삼 남매 캐릭터로 지구를 이루는 하늘(호, 昊), 땅(곤, 坤), 해일(바다 위에 돋는 해, 海日)을 뜻한다. 이들은 셀럽으로 화려한 삶을 사는 로지와 달리 환경과 사회에 대한 이슈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이를 올바른 행동으로 옮기는 MZ세대의 모습을 상징한다.
지속가능성을 고민하는 기업이라면 호곤해일과 같은 캐릭터는 훌륭한 메시지 전달자가 될 수 있다. 눈치는 볼보자동차코리아가 가장 빨랐다. 볼보자동차코리아는 최근 브랜드 최초의 쿠페형 전기차 SUV, C40 리차지를 출시하면서 호곤해일과 함께 광고를 제작했다. 볼보자동차가 추구하는 ‘도로 위 안전을 넘어, 지구의 안전’이라는 지속가능성의 가치관을 보여주기에 현재 호곤해일만 한 남매는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Cka8PnOMZOQ
광고에서 호곤해일은 그들의 일상을 쓱 드러낸다. 호는 TV를 보며 대기오염과 지구온난화에 대한 경각심을 간접적으로 전달하며, 곤은 플로깅을 한 뒤 C40 리차지에 올라탄다. 해일은 스케이트보드를 DIY해 의자로 만드는 모습을 보여준다. 볼보자동차코리아는 이 짧은 30초 안에 C40 리차지와 함께 MZ세대의 ‘컨셔스 라이프(Conscious life) 트렌드’를 압축해 제시한다. 컨셔스 라이프란 스스로 원하는 바를 정확히 알고 추구하며, 그것을 위해 노력하고 실천하는 삶의 방식을 뜻한다. 또한, 볼보자동차는 운전자에게 가치 있고 트렌디한 소비와 함께 일상을 살짝 바꾸길 제안한다. 그리고 그걸 자신들이 도와주겠다고 넌지시 속삭인다.
볼보자동차는 2040년까지 탄소 중립을 달성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를 위한 의지를 다지기 위해 볼보자동차코리아 역시 국내에서도 다양한 환경 보호 캠페인을 지속해서 벌이고 있다. 가장 최근에는 글로벌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한 지구촌 전등 끄기 캠페인인 ‘어스 아워(Earth Hour)’에 참여했다. 세계자연기금(WWF)이 2007년부터 주관해온 이 캠페인은 1시간 동안 건물에 있는 전등을 모두 끄고 기후변화에 따른 위기의식을 함께 공유하는 한편, 환경 보호에 대한 생각을 고취하자는 운동이다.
이에 앞서 2019년에는 업계 최초로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 제한’을 선언했다. 모든 사업장과 행사장에서 일회용 플라스틱 대신 자연적으로 분해되는 친환경 소재를 사용 중이다. 또한 모든 인쇄물을 디지털 플랫폼으로 전환해 종이 사용에 따른 불필요한 쓰레기 발생을 줄였고, 달리면서 쓰레기를 줍는 친환경 러닝 캠페인 ‘헤이, 플로깅(Hej, Plogging)’을 펼치고 있다.
이처럼 지구를 배려한 볼보자동차의 가치관은 이미 제품에도 투영돼 있다. 볼보의 순수 전기차 C40 리차지는 최고출력 408마력을 내는 고성능 차지만, 배출가스는 전혀 내뿜지 않는다. 글로브박스 위에는 지형에서 영감을 얻은, 마치 등고선 같은 반투명 백 라이트 장식을 담았다. 엄청난 배출가스와 함께 으르렁거리는 배기음을 뽐내고 실내를 고급 소가죽으로 휘두르며 부를 뽐내는 럭셔리는 이제 촌스럽다. 미래의 럭셔리는 우리가 발로 딛고 차로 달리는 이 지구가 더 이상 상처받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이다.
글_조두현(오토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