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쩍 찾아왔던 봄이 벌써 끝날 채비를 하고 있다. 이제 안다. 여름이 코 앞에 와있다는 걸. 소소하게 골목을 걸으며 계절을 즐기기에는 시간이 별로 없다. 밤새 전기차 배터리를 가득 채웠다면 조금 더 과감하게, 서울 광화문에서 약 217km. 전라북도 전주의 한옥마을로 떠나보자.
/ 풍부한 곡식의 고장, 전주
전주라는 지명이 등장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무려 1265년 전인 서기 757년이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고 전주라는 이름을 붙였다. 우리에게는 조선왕조의 발상지. 조선왕조실록을 지킨 곳. 곡창지대가 풍부한 고장으로 알려졌다. 지금도 막걸리, 비빔밥, 콩나물국밥 등이 유명한 것은 곡식이 풍부한 곳이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출발하면 경부고속도로와 논산천안고속도로를 거쳐 약 3시간이 걸린다. 그렇게 멀다고 할 수 없는 거리지만 고속도로 곳곳에 상습정체 구간이 있어서 서울을 빠져나가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 오산, 평택, 천안, 공주, 논산을 지나가는 길이라 오며 가며 들를 곳도 많다. 전기차를 타고 간다면 조금 더 여유를 갖고 아산이나 공주를 들러 충전과 함께 식사를 하는 것도 좋다.
일단 전주에 들어서면 모두가 찾아가는 곳. 전주한옥마을이다. 마을 입구에 공영주차장 두 곳을 운영하고 있지만 주말에는 일찍 만차가 되니 약 2km정도 떨어진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셔틀버스를 타라고 권하고 있다. 만약 한옥마을 내에 숙소를 예약했다면 공영주차장 할인 제도가 있다. 숙박기간 동안은 하루 6000원이면 된다.
전주 여행이 처음이라면 한옥마을에서만 이틀 정도 둘러보길 추천한다. 조선 태조 이성계의 영정을 모신 경기전을 중심으로 한옥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물론 10년 전을 상상하면 크게 어긋난다. 최근의 전주, 경주 등의 한옥마을 주변은 마치 서울 인사동 골목처럼 유행을 따라가는 가게와 한복을 빌려주는 가게로 번쩍거린다. 집 모양은 한옥인데 음식은 피자와 파스타. 간식은 탕후루와 튀긴 오징어 같은 것이 늘어섰다.
/ 김태리가 뛰어다니던 그곳,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 촬영지
전주한옥마을의 한 켠에는 오목대가 있다. 한옥마을 중심에서 걸어서 5분 거리인 오목대는 고려 말 삼도순찰사 이성계 장군이 남원에서 왜구를 물리치고 개경으로 돌아갈 때 들른 곳이다. 당시 이곳에서 연회를 베풀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으로 지금은 오목대를 둘러싼 나지막한 산이 산책 코스로 꾸며졌다.
오목대의 남쪽 길. 성심여자고등학교에서 직선으로 마주본 곳에 작은 언덕이 있다. 그리고 그 위를 살펴보면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에 나희도 (김태리 분)의 집이 있다. 언덕 위의 집에서 신문 배달을 하던 남자 주인공 백이진 (남주혁 분)과 만나는 장면의 바로 그곳이다. 집 앞에는 작은 전망대가 있어서 역시나 전주한옥마을의 전경을 볼 수 있고 해질 무렵에는 석양과 함께 한옥의 고즈넉함을 느낄 수 있다.
전주한옥마을은 길이가 불과 1km 남짓. 보통 걸음으로 10분이면 끝에서 끝을 갈 수 있다. 경기전과 오목대를 양쪽에 두고 네모난 한옥마을의 주요 명소는 한나절이면 둘러볼 수 있지만 골목골목을 누비려면 이틀, 사흘도 모자란다. 하지만 역시 한옥마을의 백미는 체험활동이다.
가장 추천하는 체험은 한옥 숙박이다. 특히, 아이들과 함께 라면 쉽게 경험하지 못할 특별함이 있다. ‘ㅁ’자로 이어지는 한옥에 마당과 마루에서 경험하는 집은 요즘의 아파트와는 전혀 다르다. 창호지를 바른 문에 자물쇠 대신 숟가락을 끼운 모습은 옛날 어디선가 봤던 기억이 떠오른다.
의외로 한옥 숙박에는 에어컨과 화장실, 샤워실에 냉장고까지 편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방에 앉아서 창호 문을 열어 두고 마당의 꽃과 나무 그리고 살짝 누우면 보이는 네모난 하늘은 별미다. 펜션, 호텔, 리조트만 다녔던 아이들이라면 완전히 새로운 여행일 듯.
/ 무엇을 먹어도 중간 이상…유명한 모든 곳은 한옥마을에
전주를 맛의 고장이라고 기억한다면 여행에서 맛집을 찾는 매력 역시 빠질 수 없다. 전주한옥마을은 전주 제일의 번화가다. 상업적 번화가가 아닌 관광지의 번화가다. 그래서 전주에서 유명하다는 모든 것은 이곳에 분점을 두고 있다. 초코파이로 유명한 풍년제과는 과장해서 골목마다 분점이 있다. 콩나물 국밥으로 유명하다는 현대옥 역시 분점을 두고 있으나 최근에는 시장의 삼백집을 더 찾는다는 현지인의 추천도 있었다.
전주하면 떠오르는 음식은 바로 비빔밥이다. 가족회관, 성미당, 한국집을 주로 꼽지만 경기전을 마주보며 먹을 수 있는 종로회관이나 갑기회관, 중앙회관도 40년을 훌쩍 넘어선 오래된 가게로 꼽힌다.
길거리 음식도 전주한옥마을의 별미로 떠오르고 있다. 한복을 빌려 입고 남녀노소 과거로 돌아가 장날 구경 나온 도련님과 아가씨의 마음으로 길거리 맛집을 찾는다. 의외로 메뉴는 우리나라의 전통과 관련 없다. 아이들은 계속 걸어 다니는 일정에 지치는지 스무디를 찾는다. 이어서는 알록달록 과일에 설탕 코팅을 한 탕후루. 그리고 부채만한 오징어를 통으로 기름에 튀겨주는 간식도 인기다.
모두들 하루 종일 걸어서 그런지 곳곳에는 족욕, 마사지 같은 간판도 눈에 띈다. 저녁이면 막걸리, 모주가 눈에 들어오고 고소한 부침개 냄새가 행인들의 코를 자극한다.
/ 돌아오는 길, 충전과 유람을 한 번에
전주 일정을 마쳐간다면 전기차를 공영주차장에서 미리 충전해두는 것을 추천한다. 한옥마을 끝자락에 딱 붙어있으니 일정 중에 잠시 들러 미리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다. 만약 충전이 충분치 않다면 서울로 돌아가는 길 식사시간을 이용하는 것도 좋겠다.
주말 상행선 고속도로 휴게소의 충전기는 경쟁이 치열하다. 휴게소 진입로에서 전기차를 만났다면 십중팔구 충전기로 향한다. 한 발 늦어서 30분을 기다리는 상황도 벌어질 수 있다.
전주에서 서울로 오는 길에는 공주가 있다. 어차피 주말 오후 막히는 고속도로라면 공주를 향해 국도로 달려보자. 충청남도 공주에는 천년이 넘은 고찰 마곡사가 있다. 고속도로에서 나와 산길을 꽤 돌아가야 하지만 산책과 충전, 식사를 모두 해결할 수 있다. 마곡사 주차장에는 급속충전기 1대가 있는데 그리 사용 빈도가 높은 편은 아닌 듯했다. 이곳에서 식사를 하면서 잠시 충전하기에는 딱 적당하다.
충전을 마쳤으면 잠시 마곡사 산책을 다녀오는 것을 추천한다. 주차장에서 걸어서 20분 거리의 마곡사는 가는 길이 계곡을 끼고 있어 산책하기 좋다. 차도와 붙은 편한 길도 있지만 숲으로 들어가는 산책로도 있어서 피톤치드 듬뿍 마시며 걸어 다니기 좋다.
마곡사에 잠시 들러 쉬었다면 서울로 가는 길은 고속도로를 타지 않는다. 일요일 오후라면 티맵(TMAP)은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부분 지방도와 국도를 따라 아산, 평택, 오산을 거쳐 서울로 올라가는 길을 추천한다.
/ TIP. 아이들과 함께라면 전기차로 장거리 여행은 부담일 수 있다. 대기시간, 주행시간 모두 지루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차에서 태블릿 등으로 화면을 보여주는 것도 그리 좋은 방법은 아니다. 아이들은 오히려 음악보다 구연동화 같은 이야기가 있는 콘텐츠에 관심을 갖는다. 플로(FLO)의 ‘라인프렌즈’ 등의 콘텐츠는 유치원에서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아이들의 관심사에 맞춘 콘텐츠를 제공한다. 또, 뒷좌석에서 아이들이 직접 “아리아. 라인프렌즈 틀어줘” 같은 음성명령으로 오디오를 조작할 수 있다.
글_오토캐스트 이다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