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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헨리 데이비드 소라 Apr 03. 2022

자연, 내가 힘들 때만 찾아갔네

자연은 위안을 생산하는 공장이 아니야

집에서 일을 하는 나는 나를 둘러싼 세계가 8평 남짓한 방에서 끝나버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할 때가 있다. 3차원 세계에 사는 인간은 가로-세로-너비의 조건에 크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게 짧은 내 고시원 생활에서 얻는 교훈. 그래서 난 공간의 크기에 민감하다. 더군다나 층고가 높을수록 인간이 창의적인 해법을 더 잘 떠올린다는 어느 건축가와 뇌과학자의 주장을 신뢰한다. 


그래서 주말이면 산으로 바다로 강으로 적어도 동네 공원으로 간다. 최대한의 개방감을 느끼고 내 지친 몸에게 휴식을 주기 위해서. 산이 주는 푸르름, 바다가 주는 시원함, 햇빛과 바람이 주는 따사로움에서 평온함을 느낀다. 자연을 찾아가는 운전 시간은 충분히 감수한다. 내가 얻을 위안과 힐링을 생각하면 그 정도쯤이야.


예쁘고 아름다운 것만 봐야지. 오늘 날씨 예술이다. 하늘 좀 봐. 미세먼지 없어서 다행이다. 우와! 바다다. 너무 예뻐. 반짝이는 파도 좀 봐. 저기 해변에 카페도 있네? 커피 한잔 마시며 바다랑 하늘 보면 그게 힐링이지. 파도 소리 들어봐. 너무 평화롭다. 우리 해지는 거 보고 갈까? 이런 게 행복이지. 기록할 겸 sns에 오려볼까. 

#힐링여행 #해변카페추천 #바다뷰 #근교여행 #자연속힐링


지금까지의 루틴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나의 일상이다. 그렇게 즐거운 자연 속 힐링을 끝내고 하룻밤 묵게 될 숙소를 찾아갔다. 근처 맛집이라는 곳에서 저녁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편의점에 들러 주전부리도 샀다. 바람도 살랑살랑 불고, 기분도 최고다. 이제 씻고 깨끗한 숙소 침대에 누우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문득 티브이 옆에 덩그러니 놓은 쓰레기 통이 눈에 들어왔다. 


아까 들어올 때 먹은 빵빠* 아이스크림 포장재는 숙소에 들어와서 먹은 짜파게티 국물과 뒤섞여 처참한 모습이었다. 아직은 스스로를 초보라고 느낀 게 평소에는 잘 들고 다니던 텀블러도 잊어버리고 가져오지 않아 테이크아웃 잔에 커피를 담아 와야 했다. 플라스틱보다는 종이가 그나마 환경에 낫게다 싶어 따뜻한 음료를 골랐지만, 쓰레기 통에서 짜파게티 국물과 뒤범벅이 된 모양새를 보자니 마음이 심란했다. 내가 편하겠다고 무심코 버린 쓰레기들이 지금까지 얼마나 많았을까. 생각과 후회는 과거로까지 확장된다. 


자연으로 힐링을 떠나는 우리가 사실은 그 자연을 조금씩 파괴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제주도만 해도 그렇지 않은가. 코로나 시국이지만 최대 관광객이 입도했다는 제주도는 정말 쓰레기로 골머리를 앓는다. 즐겁고 예쁘고 맛있는 것만 공유하기로 약속한 sns 세계에는 제주도의 시름까지 드러내진 못한다. 유명 식당에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만큼 음식물 쓰레기도 넘쳐난다. 일몰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해변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몰려가고, 해가 지고 남은 바닷가엔 쓰레기만 넝그러니 남는다. 


문득 바다와 하늘, 나무와 구름이 사람의 형상이 된다면 인간들에게 이런 말을 해주지 않을까. 


"너희는 평소에는 우리한테 신경도 안 쓰다가 너네 힘들 때만 찾아오더라?"

"우리에게서 왜 여유와 평온함을 느끼려고 하니? 맡겨놨어? 게다가 우리의 평온함에는 관심도 없잖아."


얼마 전에 읽은 책 "앞으로 올 사랑"에서 작가이자 해양생물학자 레이철 카슨은 "자연을 위안을 생산하는 공장"처럼 들락날락 거리는 현대인들(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나의 )의 행태를 꼬집었다. 그녀는 '자연이 늘 변함없이 그곳에 있을 거라는 믿음'을 이제는 걷어야 한다고 충고했다. 


짜파게티 국물이 이렇게 미끈거리고 잘 안 지워지는 액체였나. 아이스크림 용기와 플라스틱 커피 컵에 묻은 국물을 씻어내고 탁자 위에 올려 두었다. 이렇게 해두는 편이 숙소 사장님께서 분리배출 하기에도 용이하겠지. 그래도 자연을 너무 좋아하는 나는 산으로 바다로 찾아가는 것을 멈출 수 없다. 그렇다면 내가 자연을 위해 할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해본다. 텀블러, 스테인리스 수저, 다회용 용기는 어딜 가나 꼭 들고 다니기. 남은 음식은 꼭 포장해서 음식물 쓰레기 줄이기. 코로나가 좀 잠잠해지면 자가용 대신에 대중교통 이용하기. 자연에게만 받기만 하는 여행자가 아니라 자연을 위할 줄도 아는 여행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스르륵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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