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찬가게 용기 내 에피소드 2
우리 모두 짐작을 한다. 지금껏 살아온 경험과 자기만의 가치관을 바탕으로. 운이 좋게 주변에 좋은 사람이 많았다면 당신은 사람은 신뢰하는 경향이 있을 것이다. 반면 한 번이라도 사기를 당하거나 지인으로부터 뒤통수를 맞은 적이 있다면 당신은 친절하게 접근하는 사람을 의심부터 할 것이다. ‘이 사람 뭔데 나한테 잘해줘?’
남편과 나는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다. 뭔가를 제안하면 함께 해주었던 친구들과 동료들이 많았던 유년 시절과 직장 생활 덕분일까. 나는 기본적으로 사람들은 협력적이라고 믿는다. 거절을 하더라도 그럴 만한 합리적인 사정이 있다고 믿고, 그 사정이 해결되기만 하면 나를 도와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러나 비교적 일찍 사업을 시작한 남편은 세상 다양한 고객들을 접하면서 자기가 빈틈을 보이면 언제든지 당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돈이 얽히고 욕망이 설킨 비즈니스 세계에서 뒤통수도 여러 번 당하고 돈도 수차례 떼 먹힌 남편의 믿음에도 수긍이 간다. 우리는 모두는 각자 자신이 처한 상황에 맞게 변화하니까.
이것이 우리가 종종 부딪히는 이유다. 나는 사람들에게 부탁을 하기도 하고, 들어주기도 한다. 그것이 무리한 부탁인지 아닌지를 고민한 뒤 답이 안 나올 때는 직접 물어본다. 내가 이런저런 상황이 있는데, 도와줄 수 있어? 이런 식으로. 상대가 들어주어도 좋고, 거절을 해도 좋다. (살짝 서운할 때도 있지만, 뒤끝은 없다.)
하지만 남편은 애초에 남에게 부탁하는 것 자체를 민폐라고 생각한다. 남에게 빚지지 않고 스스로 해결하는 것이 그에게는 가장 큰 미덕이다. 같은 시공간에서 누구보다도 더 가깝게 일상을 보내야 하는 우리 둘.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려는 내 발걸음에 ‘태클’을 걸 때마다 서운하고 답답해서 울컥해지기도 했다.
지난 반찬가게 용기 내 에피소드 이후 우리는 다시 한번 더 같은 반찬가게를 방문했다. 그날은 우리 모두 너무 바빠 용기 자체를 준비할 수 없는 날이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는 용기 째로 구입하기로 한 합의대로 콩나무 무침, 연근 조림, 멸치조림 하나씩을 구입했다. 플라스틱 용기가 나온다는 죄책감에 얼굴이 붉어졌지만 오늘 점심과 저녁에 먹을거리가 하나도 없었다. 계산을 하며 사장님께 먼저 인사말을 건넸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지난번에 반찬 용기를 가져와서 담아 달랐고 했었는데요, 저 기억하세요? 혹시 그때 제 요구 때문에 번거롭거나 불편하셨으면 말씀해주세요. 플라스틱 사용을 최대한 줄이려고 하는데, 사장님께서 일을 두 번 하셔야 하거나 장소가 협소하여 보관하기가 어려운 건 아닌지 걱정이 되어서요.”
아, 뭐라고 말씀하실까.
지난주 반찬통 논쟁 이후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려왔는가. 반찬 가게 사장님의 진짜 마음을 알지 못했던 우리는 각자의 짐작과 경험들을 바탕으로 추측하고 제 주장이 맞다면 목소리 높이지 않았나.
“사장님은 분명 번거로운데 네가 손님이라 어쩔 수 없이 수락하신 거야.”
vs
“사장님이 해줄 수 있다고 말했으면 해 줄 수 있는 게 진심인 거야.”
마음을 졸이며 사장님의 눈과 입을 보고 있던 그 순간 울려 퍼지는 천상의 목소리.
“하나도 안 불편해요. 요리를 플라스틱 용기에 옮겨 담기 전에만 용기 가져다주시면 식혀서 잘 담아드릴게요. 괜찮으니 오전 10시와 11시 사이에 꼭 용기 가져오세요.”
나는 재차 물었다.
“정말 괜찮으세요? 괜히 하시는 말씀 아니시죠?”
“담기만 하면 되는걸요. 정말 괜찮아요.”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봐봐 내 말이 맞지?’ 하지만 겉으로 티 내지는 않았다. 남편은 이미 당혹스러운 표정이었다. 반찬 가게를 나서며 횡단보도로 발걸음을 옮길 때까지 묵묵부답. 횡단보도 신호가 파란불로 바뀌어 발걸음을 뗄 즈음 남편이 입을 뗐다.
“저렇게 흔쾌히 허락하실 줄 정말 몰랐어. 괜찮다고 하니 앞으로 우리 집 반찬 용기 가져가자. 자기가 오전에 용기 가져다주면, 오후에 내가 찾아서 올게.”
이것이야말로 코페르니쿠스적 전회의 순간이 아닐까. 남편의 예전 말들이 내 뇌리를 스쳐갔다.
“사장님은 불편하신 게 뻔해. 사람들은 플라스틱 쓰는 걸 더 편하다고 생각해. 그건 쉽게 변하지 않을 거야.”
이렇게 말했던 사람이 이렇게 변할 수 있다니! 나는 또 티를 내지 않고 감동했다. 사람들은 자신의 변화를 부끄러워하기 마련이니까. 남편은 그렇게 내 발목을 잡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같은 방향을 걸어가는 사람이 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