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 청소부 제니 브라운 씨
믿을 수 없겠지만, 내가 비밀 하나 말해줄게요.
언제였더라. 어느 나른한 오후의 일이었던가. 나는 이상한 사내 하나를 만난 적이 있다. 그의 이름은 제니 브라운. 자기를 제니라고 불러 달라 했던 노란 머리에 푸른 눈동자를 가지고 있던 사내.
그날도 나는 멍하니 공원 벤치에 앉아 있었다. 오른손에는 점심으로 먹었던 편의점 삼각김밥 포장지가 들려 있었던가. 하루에 한 번씩은 반드시 들러서 앉았던 벤치다. 저기 저 공원 입구에서 쭉 걸어 들어가다 보면 유난히 덩치 큰 버드나무 하나가 나오는데 바로 그 아래 벤치를 참 좋아했다. 그날도 어김없이 그 자리에 앉았다가 제니가 나타난 거야.
"믿을 수 없겠지만, 내가 비밀 하나 말해줄게요."
그는 뜬금없이 내게 비밀 하나를 털어 놓겠다며 옆에 앉았다. 오후 햇살도 좋고 때마침 면접을 망치고 나오기도 했고 제니의 눈동자 색이 매혹적이었고. 그래서 그의 비밀을 잠깐 들어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 아무래도. 제니는 양손에 들고 있던 아메리카노 두 잔 중에 하나를 내게 내밀었다. 마치 모종의 거래를 나누듯 한 잔을 조심스레 건네받은 뒤 조용히 한 모금 홀짝 마셨다. 나른한 오후에 들이키는 진한 카페인 효과에 나도 모르게 켁켁거리니 제니는 환하게 웃었다.
"내 얘기가 끝나기 전에, 커피를 다 마시면 안 돼요. 그럼 비밀을 다 들을 수 없을 거야."
제니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충고를 하더니, 대답을 기다렸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코끼리 청소부 제니 브라운이에요.
모두가 잠이 든 시간에 나는 일을 하기 시작하죠. 무슨 일을 하냐고요? 코끼리의 똥을 치우기도 하고, 코끼리의 몸을 수건으로 쓱싹쓱싹 닦아주기도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일은 코끼리의 콧구멍을 청소해주는 거예요.
그런데 모두가 모르는 비밀이 하나 있어요. 사람들이 잠드는 시간이 되면 온 세상이 변하기 시작하거든요. 저 밑에서부터 새까만 액체가 차오르기 시작해서 온 땅을 뒤덮는데, 우리들은 그걸 '아메리카노 기지개'라고 일컬어요. 그런데 사람들은 '밤'이라고 하더라고요.
제니는 잠시 키들키들 웃었다.
우리는 '아메리카노 기지개'가 시작되면 분주히 움직여요. 창고에서 청소도구를 꺼내기 시작하죠. 우리의 청소도구는 간단해요. 커다란 수건 한 장 그리고 보통 어른의 키만큼의 면봉 몇 개만 있으면 돼요. 이상하게도 아메리카노의 기지개가 시작되면, 사람들의 정신과 육체는 흐물흐물해지며 곧 잠에 빠져들더라고요. 그래서 우리가 일하기가 훨씬 쉬워지죠. 저 밑에서부터 시커먼 아메리카노가 차오르기 시작해서 하늘 끝까지 닿게 되면 어디선가 코끼리가 우렁차게 울부짖어요. 그 울음소리를 듣고 코끼리를 찾아가죠.
나는 먼저 수건을 따뜻한 물에 적셔서 코끼리의 거친 주름 사이사이에 있는 때들을 벗겨내요. 코끼리 기분이 좋아질 때까지 부드럽게 안마하듯이 그를 닦아요.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그의 몸뚱이가 조금씩 꿀렁이기 시작하는데, 그게 신호에요. 무슨 신호냐구요? 그의 콧구멍을 아주아주 깨끗하게 청소할 때라는 걸 알리는 신호인거죠. 나는 이 거대한 코끼리의 코로 달려가서 어른 키만한 면봉을 들고 그의 콧구멍 속에 머리를 들이밀어요. 더 이상의 이물질이 없을 때까지 닦고 닦아요. 이건 상당히 힘든 작업입니다. 코끼리의 콧바람이 엄청나거든요. 그가 숨을 들이쉴 때마다 커다란 청소기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힘이 쎄야 해요. 자칫 잘못하면 그의 속으로 빨려 들어갈 수가 있으니깐요.
그의 코를 다 청소하고 나면, 코끼리는 다시 한 번 우렁차게 울어요. 난 그의 울음소리가 참 좋습니다. 우주의 울음을 듣는 기분이에요.
그러고 나서 이 코끼리는 자신의 거대한 코를 머리 위로 들어 올려요. 얼마나 큰지, 그의 코끝이 하늘을 벗어날 것만 같더라고요. 그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울부짖어요. 눈물이 날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히죠. 그 마지막 울부짖음의 순간은 언제나 벅차오르거든요.
그의 마지막 울부짖음 끝에 콧구멍에서 뭔가가 쑤욱! 빠져나옵니다. 힘차게. 그게 뭐일 것 같으세요? 예상도 못하시겠죠. 네, 아가예요. 아가. 이제 새 삶을 시작할 아가요. 코끼리의 마지막 울부짖음 끝에는 생명이 있어요. 그의 콧구멍에서 빠져나온 아가들은 온 세상에 가득 찬 아메리카노의 표면 밖으로 힘차게 헤엄쳐 나갑니다. 그 뽀얀 아가들이 깊은 밤을 힘차게 빠져나가며 코끼리의 울음소리를 닮은 소리를 내죠. 탄생의 순간이에요. 삶의 첫 순간. 나는 그 순간마다 서럽게 웁니다. 서럽더라고요. 삶의 시작은 서러워요.
제니는 빙긋 웃으며 나의 눈을 들여다본다.
당신도, 코끼리처럼 울부짖었답니다. 나는 당신과 함께 울었어요. '밤'의 표면을 부드럽게 유영하며 울부짖던 당신은 참 아름다웠어요.
나는 이 파란 눈의 남자의 말도 안 되는 이야기에 너무도 당황하여 제니의 푸른 눈동자를 빤히 쳐다보다가 내 왼손의 아메리카노로 시선을 돌렸다. 커피가 얼마 남지 않은 컵 밖으로 금방이라도 하얀 아가들이 퐁! 하고 샘솟아 오를 것만 같았다. 궁금한 게 하나 있어 제니를 향해 고개를 돌리니,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제니, 나는 아직도 아름답습니까? 울부짖어도 될까요?
안녕. 나의 코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