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라 비둘기

by 솜숨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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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이는 평범한 아이었죠. 우리끼리는 에구구라고 불렀는데 특별한 의미는 없어요. 저희 별명이 다 거기서 거기거든요. 구구, 구구팔십일, 구구콘, 에구구구… 뭐 그런 것들이었어요. 네? 저는 민이랑 어릴 때부터 친했는데요. 언제부턴가 걔가 좀 이상해져서 최근에는 거의 만난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민이가 자주 가는 곳이요? 글쎄요. 피씨방?”


“아, 걔는 괜히 관심 좀 끌고 싶은 건지 어릴 때부터 민이랑 친했었다고 여기저기 소문 내고 다니더라고요. 요즘 민이가 이슈잖아요. 그래서 근거 없는 이야기를 퍼뜨리고 다니는 것 같아요. 말이야 바로 해야지, 제가 민이 절친이에요. 맞팔이요? 아니, 뭐, 현실 친구가 무조건 온라인에서도 친구여야 할 필요는 없잖아요. 피씨방이요? 이 근처 피씨방은 제가 전부 꿰차고 있는데 왜요? 민이요? 아니요, 한 번도 본 적 없어요.”


“이렇게 생긴 친구가 여기서 한두 번 정도 1인 방송하는 걸 목격한 적이 있습죠. 그런데 말이에요. 기자 양반. 카메라 들고 다니면서 방송하는 애새끼들이 거기서 거기예요. 아니, 근데 내가 당신 보고 한 얘기도 아닌데 왜 정색을 하고 그래요? 뭐 찔리는 거 있수? 거 참, 예민하시네. 어쨌든 다 비슷하게 생겨가지고 이렇게 사진만 봐서는 이 친구가 그 친구인지 좀 헷갈리네요. 그런데 말이에요. 솔직히 이런 공공장소에서 1인 방송인지 뭔지 하는 거, 그거 법적으로 제재를 가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초상권 침해 그런 거 있잖습니까. 아니 제가 말이죠, 여기저기에서 방송하는 애새끼들 때문에 최근에 난감한 상황을 좀 겪었습니다. 네? 자세히 말하기는 좀 곤란한데. 네네. 뭐 그런 비슷한 거예요. 치정 문제 뭐 그런 거요. 제가 그 카메라에 제가 잡힐 줄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초상권 침해에다가 명예 훼손에 인격 모독이라고요. 제가 바람 피운 게 잘했다는 건 아닌데요, 뭔튜브든 뭐든 간에 싹 다 불싸질러버려야 한다니까요! 아니 근데 기자님. 이거 익명으로 나가는 거 맞죠? 확실하죠?”


"안녕하세요. 자기소개요? 저는 에구구 님 브이로그 팬이고요. 뭐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서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방송에서 구님이 자주 말씀하시던 게 있어요. 아, 네. 맞아요. 저희 팬들 사이에서 에구구 님 애칭이 구님이에요. 구님은 신촌 로데오 거리의 가로등 불빛 하나 없는 허름한 골목에서 태어났다고 버릇처럼 이야기하셨어요. 태어나자마자 신촌 뒷골목 어딘가에서 누군가 토해 놓은 음식 찌꺼기를 먹었다고도요. 그 비참했던 어린 시절이 지금의 구님을 있게 만든 원동력이라고 하셨어요. 구님에게 은총과 행운이 함께하길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저는 에구구 님 팬은 아니고 그냥 얘가 기자 만난다고 같이 가자고 해서 왔어요. 네. 저도 가끔 브이로그 볼 때마다 에구구 님이 하는 말 자주 들었어요. 신촌은 특히 3월 한 달 동안은 유독 더 심하죠. 기자님도 잘 아시잖아요. 인간의 토사물을 먹고 자란 비둘기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를요."


“네, 맞아요. 나는 법을 점점 잊어버린 새들이요. 우리 구님이 여러 번 이야기했어요. 한때 상징이란 단어로 명명되던 저희들의 존재에 대해서요. 물론 도시에서 살아본 사람이라면 코웃음치겠지만, 어쨌거나 모두가 아다시피 구님도 저도 기자님도 평화의 상징이었으니까요. 뭐 그것도 옛말이긴 한데 좀 웃기지 않나요? 평화의 상징이라고 한 것도, 인간의 토사물을 먹게끔 방치한 것도, 다 저희가 원한 게 아니었잖아요."


"88올림픽 개막식 때 그 유명한 사건을 벌써 잊은 건 아니시죠? 성화대에 불을 붙이는 순간 미처 피하지 못한 녀석들이 단체로 불타버려 누군가는 단체 통구이라고 하고 누군가는 화형식이라고도 하고 몇몇은 전설의 코믹쇼라고도 했죠. 먹을 거라곤 쓰레기뿐인 이 도시에서 평화가 웬 말인가요. 평화의 상징이 무슨 소용이 있나요. 저희는 구님이 다시 곧 나타날 거라고 믿어요. 그러니까 인간의 토사물을 먹고 자란 비둘기가 어떻게 괴물이 되었는지 같은 유언비어는 더 이상 퍼뜨리지 마세요. 막말로 기자님도 뒤가 깨끗하고 투명한 거 아니잖아요. 본인은 다르게 살아온 것처럼 코스프레하지 마시죠. 꼴사납거든요."




어스름한 새벽빛이 저 멀리 물러나면서 일찍이 출근을 서두르는 사람들이 거리에 한두 명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신촌 로데오 거리. 24시간 연중무휴 순댓국 집 앞에서 앞치마를 한 아주머니가 비질을 하며 한껏 짜증을 낸다.


“술 처먹었으면 곱게 집에 갈 것이지, 남의 집 장사하는 문 앞에다가 이따위로 토해놓고 가면 어쩌자는 거야, 정말! 한두 번도 아니고. 지긋지긋해 죽겠네!”


새벽녘 누군가 게워낸 음식물이 말라서 눌러붙은 흔적 위에 구구구구 부리를 쪼던 비둘기 무리들이 아주머니의 매서운 비질에 어우 약간 놀라 건너편으로 뒤뚱뒤뚱 도망간다.


저 닭둘기들 진짜 어휴!

길 건너에서 외마디비명이 들리더니 푸드덕하고는 비둘기들이 떼지어 날아간다. 에구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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