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솜숨씀 Sep 10. 2020

루틴왕들이 조직에서 살아남는 법

5화. 정교한 제품일수록 유연하다

십 년 넘게 좋아하고 있는 뮤지션이 있다. 어느 쇼 프로그램에서 진행자가 뮤지션에게 물었다. 콘서트 끝나면 기분이 어때요? 그는 대답했다. 공허해요. 공연장을 가득 채운 팬들의 함성 소리에 힘입어 노래 부르고 춤추고 난 뒤 아무도 없는 집에 돌아오면 너무 조용하죠. 불과 두세 시간 전까지만 해도 에너지와 열기가 가득한 무대 위에 있었던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진행자는 팔자 눈썹을 하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짐짓 공감하는 듯 되물었다. 속이 텅 빈 기분일 것 같네요. 공연 마치면 바로 집에 가는 걸로 유명하다 들었는데 집에 가서는 뭐하세요? 다음날 오후까지 계속 잔다거나 취할 때까지 술을 마신다거나... 그러자 별거 있겠냐는 듯 그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날 입은 옷을 빨래하고, 다 마른 옷은 개어서 서럽장에 정리해요.


고요한 공간에서 정갈한 자세로 새하얀 티셔츠를 개키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마음이 안정된다. 내가 생각한 장소에 내가 생각한 대로 가지런히 놓여 있는 물건들은 나의 일상을 온전히 내 힘으로 통제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누군가는 강박이라 말하지만 나는 일관성이라고 말하는 것. 작가, 음악가, 운동선수 등 오랜 시간에 걸쳐 자신에게 꼭 맞는 루틴을 찾고 몸으로 익혀 마침내 최고의 성과를 내고야 마는 사람들이 있다. 비가 오든, 눈이 오든, 기분이 좋든 나쁘든, 영감이 떠오르든 떠오르지 않든 상황에 구애받지 않고 늘 똑같은 패턴을 유지하는 이들은 언제나 멋있다.


대체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한결같을 수 있는지 천방지축 어리둥절 엉망진창 돌아가는 하루를 보내는 나로서는 앞으로도 영원히 이해하기 어려울 일이다.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오늘만큼은 먹고 싶은 거 실컷 먹고 자고 싶을 때 맘껏 자면서 충만하게 살고 싶다고 버릇처럼 말하던 나지만 실은 루틴이 있는 삶이 가져다주는 안정감을 간절히 원한 적도 있다. 언뜻 보면 평범한 하루처럼 보이는데 자세히 보면 작고 소소한 습관들을 여러 겹으로 층층이 쌓아 올린 일상이 단단하게 자리 잡고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정교한 제품일수록 잘 망가지고 사소한 충격에도 쉽게 오류가 날까? 예민할수록 금방 지치고 단숨에 무너질까? 글쎄. 내가 아는 루틴왕들은 수시로 오류가 나고 종종 넘어지긴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평정심을 회복한 뒤 원래 패턴으로 돌아가 끝끝내 해내고야 만다. 말하자면 일정한 루틴을 가지고 매일 꾸준히 자기 할 일을 하는 사람이 돌발 상황에도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이다.

흔히들 성공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고 보통 사람들은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의지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진짜 필요한 건 일관성이었다. 작지만 숙달된 습관 체인들이 맞물려 쉬지 않고 움직이며 슬럼프 따위 거뜬히 넘기기도 한다. 강하다는 건 이런 것 같다.


언젠가 창의적인 사람들은 매일 새벽 네 시에 일어나 아침 일기를 쓴다는 말을 듣고 솔깃하여 한 달 동안 혼자서 아침 일기 쓰기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새벽 네 시에 일어나려면 일찍 자야겠지 싶어 매일 저녁 아홉 시만 되면 침대에 누워 잘 준비를 했다. 저녁 아홉 시에 잠든 나는 평소 일어나던 아침 여섯 시 반에 눈을 떴다. 한 달 내내 그랬다. 결국 피부가 고와지고 컨디션만 왕창 좋아졌다는 웃기고 슬픈 전설.




뭐든지 오래 하다 보면 알게 되는 사실이 하나 있다. '할 수 있다'라는 것. 내 안에서 끓어오르는 열정을 제대로 다룰 줄 몰라 욕심만 잔뜩 내다가 페이스 조절에 실패하는 건 별로다. 내가 몸담고 있는 조직에서 정교한 제품으로 오래 남고 싶다.

교보문고, 알라딘, 예스24, 인터파크, 영풍문고, 반디앤루니스 등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구입 가능하고요, 온라인 서점에서는 호구마 스티커 이벤트도 진행 중이니 하세요!


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ejkGb=KOR&mallGb=KOR&barcode=9788901244839&orderClick=LEa&Kc=


작가의 이전글 진짜 홈런은 무조건 롱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