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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솜숨씀 Sep 02. 2020

재수생의 '대리 절교' 해 드립니다

2화. 오래될수록 좋은 친구라는 판타지

한국 사회는 오래된 것에 유난히 관대한 듯하다. 특히 오래 알고 지낸 사이에서는 "에이, 가족끼리 왜 그래", "친구끼리 뭐 어때"라는 말로 자신의 무신경함을 어물쩍 때우는 경험도 종종 있다. 자신의 무신경함을 어물쩍 때우는 경우도 종종 있다. 가깝다는 이유로 배려와 예의는 단번에 거추장스러워진다. 궁금함과 무지함 사이를 넘나드는 질문이 오고 가는 자리에서 정색하면 사람이 변했다는 둥 까칠해졌다는 둥 예민한 사람으로 받아들여지고, 웃어주면서 일일이 대답해주자니 바보가 된 듯한 기분이 들어 꼭 뒤돌아 후회하고야 만다. 와인과 친구는 오래될수록 좋다는 말은 진짜일까? 와인을 고를 땐 오래되었는지보다 할인율이 더 중요하고, 십년지기보다 회사 동료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는 나는 그 말을 자주 의심한다. 숙성이 잘된 오래됨도 있지만 부패한 오래됨도 있기 마련이니까. 게다가 성숙하기보다 부패하기가 훨씬 더 쉬운 법이다. 고인 물 그대로 썩어버린 사람들을 뉴스뿐 아니라 주변에서도 어렵지 않게 만난다.

  



스무 살에 재수 생활을 시작했다. 가고 싶었던 대학에도 떨어지고 자존감도 떨어질 대로 떨어져서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인간은 세상에 나밖에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집과 독서실만 왔다 갔다 했다. 수능까지 백 일 정도 남았을 즈음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공부는 잘되고 있는지, 컨디션 조절은 잘하고 있는지 이런저런 메시지를 주고받다가 친구는 대뜸 돌아오는 일요일에 만나자고 했다.


"공부만 하는 것도 안 좋아. 가끔 바람도 쐬고 머릿속도 환기시켜줘야 더 집중할 힘이 생긴다? 일요일 딱 하루만 나랑 데이트하자."


재수생 주제에 돈도 없으면서 일요일에 나가 노는 게 영 부담이 되었지만 친구 말도 일리가 있는 듯했다. 아닌 게 아니라 수능 당일 마킹 실수로 답을 밀려 쓰는 악몽을 꾸는 바람에 매일 밤잠을 설치던 시기였다. 대화 상대가 간절했다. 하루에 한두 마디를 할까 말까 할 정도로 사람 마주치는 일이 드물었다. 오직 문제집만을 마주 보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실은 약속을 잡고 나서부터는 내내 일요일만 기다렸다. 대망의 일요일 아침, 친구를 보자마자 반가운 마음에 발을 동동 구르며 소리를 질렀다. "야, 너 대학교 신입생 티가 나긴 난다!", "너무 보고 싶었는데 너 공부하는 데 방해될까 봐 연락 못 한 내 맘을 알긴 하니?" 같은 대화를 나누며 친구가 나를 데리고 간 곳은 분당에 있는 어느 큰 교회였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전개였다.

무신론자인 나는 교회의 큰 스크린에 비치는 악보를 바라보며 뻐끔뻐끔 찬송가를 따라 하는 척 입만 가끔 열었다. 어리둥절한 나를 보다 못한 친구가 내 손을 부여잡더니 박수를 유도하며 소리 높여 노래를 불렀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지도 못한 채로 예배가 끝난 다음 짜장면 한 그릇에 3천 원 하는 중국집에 끌려갔다. 친구는 자기 단골집이라며 짜장면 두 그릇을 시켰다. 짜장면을 한창 먹고 있을 때쯤 친구가 외쳤다.


"사장님! 여기 이 탕수육 저희가 먹어도 되나요?" 


친구가 가리킨 것은 옆자리 손님이 떠난 테이블 위 탕수육 두세 조각이 남은 그릇이었다. 어차피 버릴 건데 우리 배 속에 들어가는 게 낫지 않겠냐며, 친구는 자신의 짜장면 그릇에 탕수육 조각을 넣어 같이 비비고는 한입 가득 밀어 넣으며 까르르 웃었다. 결국 그는 내가 남긴 짜장면은 물론 옆자리에서 가져 온 탕수육까지 남기지 않고 깨끗이 비웠다. 그러고는 남은 기간 동안 힘내서 공부하라는 말을 건넸다. 우리는 헤어져 각자 집으로 돌아왔다. 


이왕 오늘 하루 놀기로 마음먹은 거 친구랑 더 있다 오지 왜 벌써 들어오냐, 친구가 어디 좋은 데 데려갔냐, 밥은 뭐 먹었냐는 엄마의 질문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서운했다. 속상했다. 이용당한 기분이었다. (재수생이라는 고난의 길에 신이 함께하길 바라는 마음이었을지 모르지만) 찬밥 신세란 이런 걸까? 엉엉 울며 친구 유리에게 이야기했다. 김유리는 뭐 그딴 게 다 있냐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화를 냈다. 머뭇거리는 내게 당장 전화하라고 하더니 내 핸드폰을 낚아챘다. 김유리는 나 대신 전화를 걸어 그에게 절교하자고 핸드폰에 대고 빽빽 소리를 질렀다. 훗날 우린 '대리 절교'라는 말로 그때 일을 회상하며 우스갯소리를 했지만 재수생이라는 이유만으로 멘탈이 약해져 있던 나를 종교의 길로 전도하려 한 친구의 공감 부족한 배려는 지금 생각해도 황당하기 짝이 없다. 머리 끝까지 화가 났는데도 우물쭈물하는 바람에 친구가 대신 화를 내준 것도 어쩐지 스스로에게 창피한 사건이다.


오래된 친구라서 정이 뚝뚝 떨어질 때가 있다. '알고 지내온 시간만큼 내가 너를 아주 잘 파악하고 있다'는 섣부른 판단과 '내가 어떤 잘못을 하더라도 너만큼은 나를 이해해주겠지'라는 오만이 관계를 망가뜨리기도 한다.

나 또한 그런 이유로 주변 사람을 오해하고 상처를 주기도 했다. 아니, 자주 그랬다. 오래된 관계, 잘 아는 사이라는 특별함은 사람과 사람 간에 존재하는 거리를 좁히는 동시에 긴장감마저 무너뜨려 자칫 실수를 저지르게 만든다. 그래서 마음과 마음 사이의 연결선이 팽행한 상태를 유지하도록 부지런히 잡아당긴다.  동등한 마음의 힘으로 계속해서 힘겨루기를 하듯 마음의 줄다리기를 하는 것이다. 단, 이 게임에 승자와 패자는 없다. 이기고 지는 사람 없이 그저 상대 선수를 존중하며 좋은 관계 맺기라는 경기를 지속하는 거다.


적당한 긴장은 각자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우리가 서로의 차이를 발견하고 그 자체로 받아들이는 데 더 유용하다. 다른 말로 '존중'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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