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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드롱 Sep 15. 2023

쇳덩이가 가볍게 날아오른다

쇠가 그린 그림, 베르네르 브네

다섯 살 무렵 우리집은 서울을 떠나 경상남도 소도시로 이사를 갔습니다. 그 곳은 바다를 우묵하게 담은 모양이었고, 조용하다 못해 적막했습니다. 기차가 지날 때만 빼고요. 소도시를 가로지르는 철도길이 있었는데 그곳으로 화물열차가 다녔습니다. 역이 없었기 때문에 열차는 콰광콰광 소리를 내며 거침없이 지나갔습니다. 나는 벛꽃과 해군들과 철길이 있는 그 조용한 마을에서 10년을 살았는데, 좀 커서는 가끔 답답했습니다. 토하듯 공기를 뚫고 지나는 열차는 미련이 없어보였지만 항상 두 개의 철로가 자국처럼 남았습니다. 테세우스의 빨간 실 처럼 바깥세상과 이어져 있었지요. 


어릴 땐 철로가 놀이터였습니다. 위험하다는 어른들의 호통이 떨어지기 전까지 나는 철길 위에서 자주 소꿉놀이를 했습니다. 그러다 심심해지면 쪼그려 앉아 가만히 철로에 귀를 대보았습니다. 쉬이이익, 신기하게 철로 속에서는 항상 바람소리가 크게 들렸습니다. 웅웅, 덜컥, 슈우욱, 지잉…. 그건 나만 아는 비밀이었습니다. 종이컵 전화의 실처럼 끊임없이 이어진 길이 서로 교신하고 있었습니다. 귀를 대고 엳듣는 동안 뺨에 닿는 쇳덩이는 뜨겁거나 차가웠습니다. 나는 소리의 정체가 궁금했지만 아무에게도 물어보지는 않았습니다.






오랫동안 잊고 있던 철길이 떠오른건 어느 겨울의 미술관에서 였습니다. 어른 키보다 큰 지름의 무거운 쇳덩어리들이 하얀 벽면에 가볍다는 듯 붙어 있었습니다. 그 때가 브네의 작품을 처음 만났을 때죠. 나이테 같기도, 액체의 얼룩같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 작품을 보자마자 못견디게 갖고 싶었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우리집에 걸어놓고 싶었어요. 그것을 만든 작가는 베르네르 브네(Bernar Venet)입니다.  


서울시 용산구 한남동 일신빌딩 1층에 설치 된 브네의 작품


제가 느낀 베르네르 브네의 작품의 매력은 이중성입니다. 강철은 단단하고 차가운 금속입니다. 그런데 그 강철 조각은 굉장히 유연해 보입니다. 마치 가볍게 가위로 오리거나 슥슥 그린 것 같습니다. 미술관에서 만난 이 작품, ‘비 결정적인 선들’은 이런 이중성을 매우 잘 드러내는 시리즈중 하나입니다. 처음에 브네는 미술이 단순한 ‘아름다움’보다 ‘지식’을 담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작품이 다중적 의미보다는 수학공식처럼 명확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작가의 주관적인 의도가 작품에서 드러나지 않기를 바랐죠. 작품에서 자신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수학책을 아무데나 펼친 다음 공식이 잔뜩 그려진 이미지를 그대로 담거나, 검고 끈끈한 타르가 제멋대로 흘러내리도록 내버려 두기도 했습니다. 증시 상황판을 사진으로 찍은 다음 다른 사람이 이미지를 고르게 해서 전시하기도 했고요.


강박적으로 작품 속 자신의 흔적을 없애려고 했던 브네는 결국 막다른 벽에 부딪칩니다. 자신의 의도를 하나씩 지우다 보니 1971년부터는 아예 더 이상 작업을 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한남동 일신빌딩에 있는 ‘비결정적인 선들’는 브네가 5년 간의 공백을 깨고 나와 만들기 시작한 작품 시리즈 중 하나입니다. 생각해보세요. 아티스트는 필연적으로 '표현'을 해야 하는 운명입니다. 그런데 작가는 작품에서 자신의 의도가 보여선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모순적 상황을 브네는 어떻게 해결했을까요?


추측하건대 브네는 자신의 의도가 작품과 부딪치는 것 자체가 피할 수 없는 현상이라고 받아들인 것 같습니다. 작품명에서 알쏭달쏭하게 느껴지는 ‘비결정적’이라는 단어가 실마리입니다. ‘비결정적’이란 단어는 20세기 초 물리학에서 불확정성의 원리가 나오면서 등장했습니다. 그동안 ‘결정’되어 있다고 믿던 것이 사실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전자는 입자일까요, 파동일까요. 양자역학에 따르면 전자는 입자이자 동시에 파동입니다. 한쪽으로 결정할 수 없다는 말이죠. 브네는 양자역학에서 아티스트로서의 정체성과 작품의 정체성이 한 작품 안에서 같이 있을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결국 ‘비결정적인 세 개의 선들’은 브네의 가치관 변화에서 탄생했습니다. 모두가 알듯이 강철은 무지하게 무겁고 단단합니다. 하지만 특정 온도에서는 물처럼 유연해지기도 합니다. 결국 이 작품은 구부려지지 않으려는 철의 성질과, 그것을 구부리려고 하는 작가의 의지가 투쟁하면서 얻어진 결과입니다. 그러니까 만들어 놓고 보니 ‘비결정적인 선들’이 된 거죠. 작품을 만든 자가 작가인지, 강철인지, 신인지 분명히 결정할 수 없습니다.다. 딜레마를 벗어난 브네의 작품은 날개를 단 듯 더욱 가벼워졌습니다.






양면성을 가진 존재들이 가진 매력이 있습니다. 차가운데 따뜻한, 강하고도 섬세한 연인에게 빠져드는 것처럼요. 도시 한 켠에서 마주친 브네의 조각은, 강철이 가진 자유로운 영혼 같습니다. 그리고 저절로 나는 어릴적 끝없이 이어졌던 철로를 떠올립니다. 비밀을 가진, 무겁고 차가웠던 직선이 지금은 마치 날아오를 듯 가볍게 동그라미들을 그리고 있네요. 

물리학 이론에 따르면 이 세상 그 무엇도 '결정적'일 순 없다고 합니다. 어쩌면 우리가 굳게 믿는 현실도 깃털처럼 가볍고 유연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둥글고 조용했던 소도시를 떠나 직선의 도시인간이 된지 수 십년이 지났습니다. 철강과 시멘트와 유리로 만들어진 도시. 많이 춥고 바다도 없는 서울에 적응해서 그럭저럭 살아갑니다. 알게 모르게 상처받긴 해도 어느덧 굳세고 딱딱한 직선의 벽이 편하기도 합니다. 맺고 끊고 적당히 나를 숨기기도 하면서요. 그러다 문득 만난 이 작품이 내 발길을 유난히 오래 붙잡는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아마 잊고있던 추억 때문이겠지요. 무뚝뚝한 듯 나를 묵묵히 지켜주던, 옛 친구를 다시 마주친 기분 탓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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