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작가 ‘김성용’
<위로하는 빛 100x100cm, Digital C-print, 2006>
예전에 한창 인기 있던 TV 프로그램 '나는 가수다'에서 가수 임재범이 윤복희의 '여러분'을 불렀던 게 생각난다.
“나는 당신의 친구다. 네가 외로울 때 내가 함께하리라”라는 가사를 부르는 대목에서 많은 청중들이 눈물 콧물을 닦았다. 나도 괜히 눈물이 났다.
왜 우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변함없는 친구가 필요하니까. 그게 의외로 얼마나 어려운 건지 살아보니 알겠더라고.
내가 아무 것도 가진 것 없고 외롭고 슬프고 괴로울 때 나를 위로해주는 단 한 명의 존재가 사실 참으로 고마운 거더라고.
“엄마, 달이 나를 자꾸 따라와.”
내 앞을 지나는 아이를 보았다.
짧은 발걸음에 넘어질 듯 엄마를 쫒아가면서도 구름을 보고, 돌멩이를 보고, 벌레도 보느라 바쁘다. 그래, 행복하려면 가끔 하늘을 보라는데. 그런 여유 부려본지 꽤나 오래됐다. 언제 마지막으로 달을 봤더라. 고개를 들면 빌딩과 빌딩, 시끄러운 간판들, 내일 할 일과 어제의 후회스러운 일들이 복잡한 전신주 선들 마냥 얽혔다. 뭐 달은 항상 거기 있을 테니 굳이 바라보지 않는 건지도 모른다.
그럴 리가 없는데 문득 사진 속 달이 살아서 일렁일렁하는 것 같다. 눈을 깜박여 본다.
퇴근길,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는 당신을 떠올린다. 집으로 가는 길은 너무 멀다. 긴 숨은 무겁고 높은 건물들은 너무 단단하고 냉혹하다. 하나도 새로울 것이 없는 보도블록을 밟는 구두는 어느새 밑창이 닳아있다. 중력이 평소보다 두 배는 무겁게 느껴져 저절로 고개는 땅으로 처박히고 마음은 자꾸 눈이 감긴다. 저 멋대가리 없는 수많은 간판들. 최진아헤어, 복사워드인쇄, 우동, 클릭인터넷플라자, 아프리카커피숍, 핸드폰싸게팔아요, 비쥬, 준오헤어 그리고 그 사이에 달 하나. 멀다 멀어 집으로 가는 길. 툴툴거리거나 말거나 달은 당신을 졸졸 따라온다. 어릴 때처럼. 행여 귀찮을까 좀 간격을 두고 곰살 맞은 얼굴로 둥그러니 하얗게 그렇게.
<위로하는 빛 100x100cm, Digital C-print, 2006>
작가는 달을 찍는다. 작품명은 '위로하는 빛' 시리즈다. 김성용 작가는 무거운 가방을 메고 지하철을 타는 박모 씨와 강변북로 정체 속 매연과 담배연기로 허탈한 폐를 채우는 이웃 김모 씨의 마음을 위로하고 싶다. 사는 게 도무지 맘에 안 들고 징글징글해 집으로 오는 골목에서 그만 어린애처럼 울고 싶었던 맘도 안다고. 그런데 작가에겐 그 순간이 먼 달에게서 위로를 받은 순간이었다고 한다. 누구나 천애 고아 같은 심정이 될 때가 있다. 초라한 골목에 혼자 남겨진 줄 알았을 때 나를 지켜보던 말갛게 씻은 얼굴의 그 달. 그것이 달 사진 담기의 시작이었다. 그 순간 그가 받은 소박한 위로는 진짜배기여서, 그저 그것을 당신과 나누고 싶었다고. 거기엔 어떤 복잡한 인문학적 지식도 설명도 필요 없다. 그래서 작가는 오늘도 산을 오른다. 달동네를 오른다. 달을 따라가고 싶어서. 달을 더 가까이 보고 싶어서. 빈 하늘에 가까워질수록 등 뒤로 얽히고설켜 진저리가 나던 세상은 작아진다. 어쩌면 달은 그렇게 높은 곳에서 복작대는 고민과 짐이 이렇게 작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졸졸 따라다니며. 환한 얼굴로 내 뒤통수를 쓰다듬으며. 그렇게 우리들 위로 달이 뜬다. 잠든 네 얼굴위로, 잠들지 못한 내 얼굴 위로도.
작가를 만난 작업실은 성북구 예술창작센터였다. 그는 거기서 자폐아와 행동발달증후군을 앓는 아이들에게 사진을 통한 대화를 시도한다. 김 작가는 “어제는 이런 메시지를 받았어요”하며 핸드폰을 내민다. 가르치는 꼬마가 보내온 문자다.
‘찍은 사진을 아버지께 보여드렸더니 잘 찍었다고 디카 사서 가치(같이) 찍자고 하시네요ㅋ 우리 다음 주에 또 보는 거 아시죠? 난 셋째 주 토요일이 젤 좋은 하루ㅋ’
싱글싱글 웃는 작가얼굴을 보니 조카 자랑하는 삼촌 같다.
“요즘 일어난 일 중에서 제일 행복했어요.”
상당 시간을 봉사활동에 할애하는 김 작가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요즘 재능기부라고 매스컴에서도 많이들 얘기하던데요. 근데 그건 좀 거창한 거 같아요. 다들 나누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시작할 방법을 몰라서 아닐까요?” 봉사활동을 하느라 작업에 방해가 되지 않냐는 질문에 그는 속 깊은 답변을 내놓았다.
“저도 작업만으로 유명해지고 싶은 욕심이 물론 있죠. 그런데 예술이라는 게요. 어쩌면 그냥 자기배설, 자기만족, 자위행위처럼 끝날 수도 있단 생각을 했어요. 이해도 어려운 작품 터무니없이 비싸게 내놓으면서 ‘소통’해야 한다고 얘기하는데 전 그게 좀 웃기는 소리 같아요.”
오히려 그는 다른 통로로도 자신의 예술과 세상이 소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저는 달 사진을 놓고 제가 받은 위안을 나누고 싶었어요. 누군가 ‘아, 나도 그런 기분 느낀 적 있어요’라고 말해준다면 그게 바로 소통이죠. 작품을 만들어 전시하는 것이 일종의 대화의 시도라면, 더 적극적으로 나눌 수 있다면 그것도 예술이잖아요. ‘봉사’라고 하는 말도 적당치는 않아요. 그냥 아이들과 놀아주는 것이 바로 작업이에요. 재밌어요.”
<생의 한가운데서 40x40cm, Digital C-print, 2008>
작가는 오늘 제주를 산책한다. 구석구석. 세상의 지면들을 꾹꾹 밟으며 혼자서 세상과 만난다. 촉촉이 젖은 클로버들, 떨어지는 비에 젖은 아스팔트 도로위에 낱낱이 흩어진 꽃잎들을 기록한다. 그의 또 다른 사진 작품 '생의 한가운데' 시리즈다. 그 사진들은 물기 어린 생명의 마지막을 담고 있기에 처연하고도 아름답다. 찬란한 생의 순환을 떠올리면 죽음이 곧 탄생이기도 하니까.
여린 꽃잎들이 아스팔트 바닥에 산산이 흩어진 장면들은 우리에게 주어진 한정된 시간을 환기시킨다.
냉정한 리얼리즘인데 추상화처럼 아득해진다.
작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산책하는 건 선천적 기술이 필요하다. 그것은 우리를 살아있게 하는 생명의 샘물”이라고 했다.
떨어진 사과 하나에서도 백가지 이야기들을 발견해내는 소로만큼은 아니더라도 누구나 산책의 기술 하나쯤은 숙련해야겠다는 생각이 스친다.
작가는 그런 친구가 되어주는 것들이 바로 당신 근처에서 빛나고 있다고 나직이 말한다.
이런 다정한 마음을 담은 작품들을 보고 있자니 문득 그처럼 순수하고 발그레한 낯빛이 되어보고 싶다. 오늘 밤은 소년의 마음으로 걸어볼까 싶다. 달과 함께. 그러면 외롭지 않을 것 같다.
그럼 요새 뭘 제일 하고 싶으냐는 질문에 그가 외치듯 대답한다.
“연애요!”
“다리 예쁜 여자와 연애요”라고 조금 작게 덧붙인다.
이어 “사실 여태껏 나이 먹도록 짝사랑만 주구장창”이라며 고개를 떨군다.
캠핑카를 몰고 아름다운 곳 찾아다니며 살아볼까 하는 로맨티스트다.
머리 하얀 할아버지 할머니 되어도 둘이서 손 꼬옥 잡고 서로만 바라보고 사랑하고 싶다는, 다정함이 병인 이 남자, 어디 모셔갈 다리 예쁜 여자분 없으신지?
작가 김성용은 누구?
성균관대 섬유공학과를 졸업하고 홍익대 대학원 사진과를 졸업했다. 2006년 갤러리 나우에서 '위로하는 빛', 2008년 대안공간 씬에서 '생의 한가운데서'를 주제로 개인전을 개최했다. 코엑스의 서울포토페어와 제비울미술관, 스페이스 함, 백상기념관 등에서 기획전과 단체전을 꾸준히 열었다. 갤러리 나우에서 CEO를 대상으로 하는 사진 수업과 성북창작예술센터 삼분의이에서 ADHD, 자폐아, 농아들을 대상으로 한 사진 수업을 진행했으며, 현재는 제주도와 서울을 오가며 사진작가로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