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일상 콩트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드롱 Nov 30. 2023

구름사냥꾼

상상의 직업을 인터뷰하다.



나는 구름사냥꾼입니다.


아, 쉽게 말씀드리면 저는 사진작가로, 30여 년간을 구름만 바라보며 살았답니다.

그야말로 뜬구름 잡는 세월을 보내온 거죠. 하하.



모르겠어요, 구름의 어떤 모습이 저를 이렇게 매혹시키는지.

그저 뭉게구름을 보고 있으면 그 몽글몽글한 털뭉치 같은 품에 안겨 잠들고만 싶어지고

낮에는 길동무, 저녁에는 햇빛에 말려 보송해진 솜이불같이 다정하거든요.

게다가 새벽의 하늘은 얼마나 다채로운 색깔들인지 아십니까? 모두들 아직 잠에 취해있을 무렵 운이 좋으면

그런 장관을 목격할 수 있죠. 인상파 그림을 거대화면, 3D입체로 보는 것 이상이라고요.



어떨 땐 구름이 거꾸로 우리를 지켜보고 있단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저희들끼리 그림을 그리죠.

강아지모양, 사람모양, 열쇠모양... 우연히 그것을 발견하는 사람들은 운이 좋은 사람들입니다.

대부분은 눈길조차 주지 않아요. 세상의 중요한 건 스스로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그래서 전 검은 구름이 비를 몰고 올 때 쥐 죽은 듯 긴장된 분위기도 좋아합니다.

보라, 이 자연의 위엄을! 그땐 세상이 다 인정하는 것 같거든요.  아, 예. 이해하기 어렵다는 건 알아요.

근데 오히려 저에겐 세상사가 맨날 그 나물에 그 밥처럼 심심하니 어쩝니까. 하하.





저도 알아요.

구름들이 실제로는 물방울들에 불과하고, 저렇게 흰 솜뭉치처럼 보이는 것도 착시일 뿐 만질 수 없다는 것을요. 하지만 보세요. 저렇게 생생하지 않습니까?

실제처럼 보이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 보이지 않지만 진짜로 있는 것.

그걸 우리가 정말로 분별할 수 있을까요?


우리도 그저 시각에 의존하는 존재들일뿐 진실을 알기는 어렵지 않습니까.

구름을 쫒는 저나, 회사를 다니는 당신이나 허상을 쫒는 건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죠.

기왕에 허상을 따라다닐 수밖에 없는 게 인간이라면 저는 기왕이면 하늘을 택한 겁니다.

적어도 제가 지구라는 별 표면에 살고 있다는 진실을 매 순간 잊지 않을 수 있으니까요.


그것은 나를 무력하고도 자유롭게 만듭니다.

개미같이 작은 나 하나쯤은, 뜬구름같이 둥실 거리며 살아도 뭐 괜찮지 않겠어요?

어디서 읽었는데, 너무나 거대한 것 앞에서 느끼는 그런 감정을 숭고미라고 한답니다.


그래요. 나는 사로잡혀서 행복한 사람입니다.




저는 구름을 볼 때마다 그들이 어떤 진실을 알려주려고 한다는 느낌이 듭니다.

뭔지는 모르지만 그건 인간이 잃어버리면 안 되는 중요한 이야기일 거예요.

그것이 땅 위의 저를 일으켜 매일 하늘을 바라보게 만듭니다.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냐고요? 모르겠어요. 제가 그렇게 머리가 좋진 않아서요.


그래도 어쨌건 노력하고 있으니까요.

성실이 저의 최선이니까,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글쎄요. 앞으로의 계획이라, 전 아무래도 앞으로도 이 생활을 계속하게 될 것 같습니다.

제가 모은 구름의 단서로 한 번쯤 전시회도 열어볼까도 생각해요. 저보다 나은 분들이 보고 뭔가를 발견해 낼 수도 있으니까요.

네, 그렇게 되면 꼭 초대할게요.


소식없이 제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면 그땐 아마, 쉬고 있을 거예요. 특별히 하얗고 푹신한 구름 속에서 뒹굴거리면서요.

거기서 저는 더 이상 헤매고 있지 않겠죠. 세상 어떤 조바심도 불안도 질문도 없이 느긋하게요.

아주 행복할 거예요.


그러다 우연인 듯 하늘을 올려다보는 사람들에겐 비밀스러운 신호를 보낼지도 모릅니다.

그때 저를 보게 된다면 손 한번 흔들어주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