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을 뚫지 않고, 우산 위에 앉은 비를 보며

by vonbrillo

비 오는 날이면 가끔, 학부 시절 박노길 교수님이 해주신 이야기가 떠오른다.


"사실 비가 내리는 건 놀라운 일입니다. 지금 창밖의 비처럼 방울의 형태로, 우산에 닿아 떨어지기 위해선 정말로 정교한 균형이 필요해요. 중력이 너무 강하고 공기저항이 없다면, 저 비는 우리 몸을 일부 뚫을 수도 있고, 중력이 조금만 더 약하고 공기저항이 컸다면, 우린 '비'라는 것을 알지도, 보지도 못했을 겁니다."


교수님이 왜 그 이야기를 해주셨는지는 잘 모르겠다. 졸다가 잠시 깬 찰나였기에. 꽤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비 오는 날이면 가끔 그 말이 떠오른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이, 사실은 아슬아슬한 균형 위에 잠시 머물 수 있도록 허락된 기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작가의 이전글4초간의 정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