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니워커 블랙, Cigarettes After Sex

잔상노트 002

by vonbrillo
한 잔의 위스키와 떠오르는 생각을 담은 노트


밤, 안개, 도시의 야경.

Johnnie Walker Black Label을 마실 때, Cigarettes After Sex의 노래를 들을 때면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들이다.


모처럼 칼퇴를 성공한 금요일, 게다가 약속도 없다. 조금은 공허한 또 조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천천히 집으로 돌아왔다. 얼마 전 마트에서 할인가로 구입한 조니워커 블랙을 맛보려 한다. 패키지로 구입한 세트에는 꽤 마음에 드는 유리컵이 함께 있었다. 부드러운 그립감, 도톰한 밑면, 묵직한 무게감까지 역시 위스키와 잘 어울린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 2049]에서 조니워커 블랙이 등장한다.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이 반영된 영화에서 2049년 지구는 꽤나 황폐하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이 영화에선 잔재처럼 존재한다. 우리의 물건들이 마치 레트로 소품처럼 보인다. 주인공 K역으로 나오는 라이언 고슬링이 어느 건물 안을 걷고 있을 때, 모퉁이에 Bar 형태의 공간이 있다. 그 Bar 테이블 뒤 노인이 말한다. 여기 위스키가 끝도 없이 쌓여있다네. 인공생명체와 인간 사이의 경계가 모호한 그 영화에서. 현대 사회의 모든 것이 역사로 남은 그 세상에서도. 위스키는 그저 위스키였다. 감독은 인간다움을 상징하는 무언가가 필요했고, 현재의 시간을 '온전히' 미래로 보낼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해서, 그래서 그걸 위스키로 표현한 게 아닐까? 조니워커 블랙은 이 영화의 느낌과 어울린다. 낮보다는 밤, 맑은 날씨 보다는 안개 자욱한- 뿌연- 어두운 공간이 더 어울린다.


조니워커 블랙이 Cigarettes After Sex의 음악과 비슷한 느낌을 주는 이유를 생각해 본다. 뿌연 맛- 스모키 한 줌- 안개가 낀 밤의 거리- 조용하지만 충분히 강렬한- 달콤한 듯 그런데 담배처럼 거칠어서- 아닐까? 라고 대답해본다. Cigarettes Affer Sex를 팬들은 CAS로 줄여 부르고, 이 특별한 무드와 감성과 유사한 것을 보면, 씨-에이-에스 감성인데? 라며 표현하기도 하는데, 이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현상이라고 한다. 자극적인 단어 조합도 매력이지만, 사실 스팰링이 꽤 길어서 타이핑하는 게- 귀찮기도 하다. 그래서 나도, 지금부터는 CAS로 말한다. 워낙 하나같이 명곡들이어서 사실 CAS는 앨범 전체나 Youtube에 1~2시간짜리 뭉치로 올라온 플레이리스트에 재생 버튼을 누르면, 바로 그 공간이 씨-에이-에스 감성으로 가득 차 버리기도 한다. K., Cry, Apocalypse, Sweet, Sunsetz 정도가 먼저 떠오르긴 하지만, 딱히 명곡을 이렇게 한정하고 싶진 않다. 최근 내가 젤 자주 듣는 노래는 The Crystal Ship이다.


그래도 우리, 오늘도 제법 수고했지 아니한가?

조니워커 블랙 한잔과 CAS 노래를 권한다.



Johnnie Walker Black Label

Cigarettes After Sex, The Crystal Ship


Nose

부드러운 스모키향에 가깝다. 뿌연 스모키 함, 그리 강하진 않다. 그리고는 달콤한 향이 난다. 내 경우 과일의 단향보단 바닐라, 캐러멜에 가깝게 느껴진다. 그리고 잔에 있을 때보단, 바틀 채로 향을 맡으면, 왠지 다르다. 그냥 향수처럼 느껴진다.


Palate

스모키, 젖은 나무, 견과류, 바닐라, 꿀 등 향기보다 맛이 더 다양하다고 느껴졌다. 약간 떨떠름? 한 맛도 있다. 입천장과 목을 살짝 건조하게 만드는 느낌이 있다. 씨-에이-에스 감성이다.


Finish

개인적으로 그렇게 긴 여운까진 없다 느낀다. 그래도 몸 안에 닿고 올라오는 위스키의 향은 충분한 무게감과 향수처럼 되올라오는 향기가 깔끔하고 정직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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