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Book 리뷰
이따금 다시 꺼내어 읽어줘야 하는 책이 있다.
나에겐 이 책이 그런 책이다.
하루키, 위스키, 여행. 좋은 것들만 담은 책이니 좋을 만도 하다.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니다. 이 책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은 '재질'이 다르다. 소설에서와는 사뭇 다른, 한 사람으로서의 하루키의 설렘과 평안함을 볼 수 있다. 피식 웃게 만드는 하루키만의 유머가 여러 번 등장하고, 표면 아래의 깊은 생각을 소탈하게 건네기도 한다.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나는 그에게 친밀감을 느꼈다. 이 책은 글 반 사진 반이다. 글은 하루키의, 사진은 그의 아내인 무라카미 요오코가의 작품이란 것도 이 책만의 특별함이다.
책은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 두 개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유심히 읽어본 독자라면 알 수 있는 것은, 무라카미 하루키는 스코틀랜드의 작은 섬인 아일레이 섬에 가장 큰 애정이 있다. 하루키에게 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고 한다면, 그 언어의 이름은 뭐냐고 묻는다면, 그는 “Islay(아일레이)”라고 답할 거 같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피트(Peat)에 대한 깊은 애정은 이 책 곳곳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피트로 분류되는 위스키는 사실 처음 위스키를 접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다소 불편한 존재이다. 피트(Peat)의 향과 맛을 직관적으로 표현하면 바다, 해조류, 불씨, 바위 이끼, 소독약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위스키를 꾸준히 천천히 알아가다 보면 결국엔 도달하게 될 소중한 존재이기도 하다.
한국 위스키 바 대부분의 바텐더가 '라프로익(Laphroiaig)'을 무라카미 하루키가 사랑하는 술이라 소개하는 데, 그 소개의 근거가 바로 이 책의 문장들이다. 나도 수년 전 이 페이지를 읽은 후 동네 위스키바에서 처음으로 라프로익을 주문했던 기억이 있다.
68 pages
분명 라프로익에는 라프로익만의 맛이 있었다. 10년 된 위스키에는 그것만이 가지는 완고한 맛이 있었고, 15년 된 위스키에는 15년 동안 숙성된 완고한 맛이 있었다. 모두 나름대로 개성이 있고, 사람들의 입맛에 맞추려는 경박한 알람거림 따위 느껴지지 않는다. 문장으로 치자면,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초기작에서 볼 수 있는, 예리하고 절제된 문체와도 같다. 화려한 문체도 아니고 어려운 단어를 사용하지도 않지만, 진실의 한 측면을 제대로 포착하고 있다. 누구의 흉내도 내지 않는다.
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고 한다면, 이 책의 일본어 원제는 もし僕らのことばが ウイスキー だったなら으로 그 의미가 1:1 수준에 가까운 동일한 의미라 한다. 그래서 나는 가끔 하루키가 왜 이 책의 제목을 이렇게 지었을까를 생각해 본다.
마시지(말하지) 않고, 향기만으로(표정만으로) 충분히 상대를 이해할 수 있기를. 조금만으로도 많은 의미를 담을 수 있기를. 천천히 잘 마신다면(들어준다면) 더 많은 의미와 감정을 나눌 수 있기를. 좋은 위스키는 마신 후에도 길고 풍부한 잔향을 남기듯 우리의 언어와 대화도 그렇기를. 오랜 시간 진중한 노력과 정성으로 더 좋은 위스키가 만들어지고, 영원히 기억되는 거처럼, 우리의 언어, 대화도 그렇게 기억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