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춤 버튼, 눌렀다

첫 사업 그만둔 날

by vonbrillo
그냥, 내 이야기


"이거 작성해 주세요."


세무서 직원이 내게 한 장의 종이를 건네며 말했다. 말없이 받고선 그걸 눈으로 읽었다. 제목부터 눈에 들어왔다. 폐업신고서. 그 아래로는 상호, 사업자등록번호, 대표자 이름 순이었다. 하나씩 써 내려가다 폐업 사유란 앞에서 잠시 멈췄던 거 같다. 몰라서 묻는 건가? 작은 한숨이 나왔다. 마음속으로 이 불필요한 질문을 여기 배치한 분께 따끔하게 따져봤다. 세무서를 나오며 얼마나 많은 창업자들이 이곳에서 폐업신고서를 제출해 온 건지 문득 궁금했다. 속상하거나 우울한 기분은 아니었다. 그냥, 허전했다.


부우우우-


진동이 울렸고, 전화를 받았다. 군 복무 시절 선임이자 친구였다. 꽤나 친했기에 녀석의 어머님이 편찮으시단 건 알고 있었다. 그래도 의외였다. 나에게 자신의 어머님을 보러 병원에 찾아와 줄 수 있냐는 거다. 안될 거야 없으니,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언제 올 수 있냐고 묻길래, 지금이라 말했다. 얼추 2시간쯤 걸리는 거리였다. 그 친구의 어머님이 뭘 좋아하시는지 몰라서, 천호역 부근에 이르러 친구에게 전화했다. 의외였다. 엄마는 외계인 by 배스킨라빈스.


아산병원에 도착. 병실 안에서 친구와 동생 성우에게 인사를 했다. 어머님은 둘에게 나가보라는 듯 손짓을 했다. 병실에는 나와 친구의 어머님, 둘이 남았다. 창문을 통해 햇살이 잔잔하게 어머님의 왼쪽 얼굴을 비추었고, 그 시점이 되어서야 어머님이 백혈병이라는 걸, 그리고 삶의 끝 지점에 계신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어머님은 나에게 잠시 앉아보라시며 말을 건넸다.


"사업 이제 그만뒀다면서?"

"아.. 네 폐업신고 했습니다 오늘."

"아 그래? 어때, 한숨 나오지?"

"뭐 한숨으로만 숨쉽니다."

"오 그래? 꼭꼭 씹어 먹어."

"네...?"


온화한 미소와 함께 툭- 던져 주신 어머님의 한마디, 꼭꼭 싶어 먹어. 나는 순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눈썹을 추켜올리며 어머님을 바라봐야 했다.


"지금의 생각, 기분, 느낌 모두 어느 하나도 회피하지 말고 천천히 자글자글 단물이 나올 정도로 오래오래 꼭꼭 씹어서 넘겨. 나중에 너 그걸 다 소화하잖아? 그럼 너 그만큼 성장하는 거다?"

".. 소화하기 전에.. 기절하면요?"


어머님은 크게 웃으셨다.

덕분에 따라 웃을 수 있었다.


"너, 잘- 이겨내겠다."


...


몇 달 뒤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어머님이 돌아가셨다.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어야 했다. 처음 나눈 그 대화가 우리의 마지막 대화가 되었다.


그 다음 해 대학교로 돌아가서 공과대학을 졸업했다. 다행히 가장 원했던 회사에 입사했고, 어느덧 9년 차. 힘들 때면, 자조적인 감정이 저를 위협하면 항상 그날의 대화를 떠올렸습니다. 뭐 지금도 매일매일 그리 쉽진 않지만, 요즘 들어 그날의 대화를 제법 잊고 산 거 같아요. 어떻게, 이 정도면 저 제법 잘 소화한 거 같아요.


"그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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