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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을 쏘다 Feb 06. 2023

의사로서, 도무지 익숙해질 수 없는 것들

존 밴빌 [바다] #1

세상에는 도무지 익숙해질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어머니의 죽음이나 배우자의 암선고 같은 것들.


내과 의사 사이에서는 100명 정도는 죽여 보아야 의사 노릇을 할 수 있다는 말이 농담처럼 전해져 내려온다. 때로는 후배를 위한 따끔한 충고로, 때로는 지친 동기를 위한 따듯한 격려로 쓰이는 말이다. 남들보다 유독 환자 운이 없는 내 이름 아래에서 백 명 정도는 돌아가신 것 같은데, 이제 나는 어지간한 환자 앞에서는 쫄지 않고 전문가처럼 대응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p. 23

 토드 씨는 설득력 있는 강연을 시작했다. 자주 사용해서 윤이 나는 듯한 강연이었다. 가능성 있는 치료법, 신약, 자신이 구사할 수 있는 화학무기들이 들어찬 막강한 병기고 등. 마법의 묘약, 연금술사의 약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애나는 계속 얼굴을 찌푸리고 자기 손만 보았다. 듣고 있지 않았다. 마침내 토드 씨가 말을 멈추고 전처럼 필사적인 토끼 같은 표정으로 애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숨소리가 들렸다. 마치 추파를 던지듯이 입술이 위로 말려 올라가고, 그 바람에 다시 치아가 드러났다. 



이는 죽음 앞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처음 싸늘하게 식은 환자의 주검을 보았을 때 느꼈던 당혹감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 이상하기도 하다. 첫 사망선고도 내리지 못해 머뭇거리는 나를 보고 선배가 사망 정리를 도와주었다. 그 이후로 나는 말하자면 직업인의 관점에서 죽음을 대하게 되었고, 매 순간 점차 달라졌다는 것을 깨닫는다. 


퍼져있는 속설에 따르면 청각 기관이 다른 기관에 비해 늦게 기능을 상실하기 때문에 마지막 순간에 귀에 전하는 말들은 망자에게 닿는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죽은 사람, 혹은 죽어가는 사람 옆에서 그동안 전하지 못한 사랑의 말을 하며 애도기간을 보낸다. 당황스러웠던 것은, 한 보호자가 이 말의 진위를 나에게 물어온 적이 있다. 그는 이 말이 진실인지를 나에게 물었고, 이 말이 진실이라면 환자가 사망한 뒤에도 귀는 몇 시간이나 살아 있기 때문에, 자신들은 시신이 있는 병실 내에서 꼼짝하지 않을 것이고 몇 시간 뒤에, 그러니까 망자의 청각활동이 완전히 멈춘 뒤에 영안실로 향하기를 원한다는 것이었다. 인간 애도활동의 과학적 진위여부를 떠나서 어떻게 하면 내가 더 프로답게 이 일을 처리할 수 있을지 참으로 난감했다. 그 사람에게 저산소성 신경 손상이나 순환부전과 같은 말들이 무슨 의미를 가질까. 사망 선언을 내린 의사 앞에서 소문과 같은 이야기를 당당하게 말할 수밖에 없는 사람에게 진정 중요했던 것은 무엇일까.



p. 23

 "고맙습니다." 애나가 이제는 아주 먼 곳에서 들리는 듯한 목소리로 정중하게 말했다. 그녀는 자신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더 멀어진 것 같았다. "고맙습니다."

 그 말에 마치 해방이라도 된 듯 토드 씨는 두 손바닥으로 빠르게 자기 무릎을 치더니 벌떡 일어나 상당히 부산스럽게 우리를 문까지 안내했다. 애나가 문을 나가자 토드 씨는 나를 돌아보더니 남자 대 남자로서 불굴의 웃음을 지어 보이며 악수를 했다. 메마르고, 활기차고, 단호한 악수였다. 분명히 이런 순간에 배우자를 위해 준비해둔 악수다.

 양탄자가 깔린 복도는 우리 발소리를 빨아들였다.

 엘리베이터는 위에서 주사기를 누른 듯 밑으로 쑥 내려갔다.

 우리는 햇빛 속으로 걸어나갔다. 새로운 행성에 발을 내딛는 느낌이었다. 우리 말고는 아무도 살지 않는 행성에. 



남의 죽음에 익숙해질 수록 커다란 공포로 자리하고 있는 것은 나의 죽음이다. 나의 짧은 생에 합당한 운을 영위하여 오래 살아남는다고 하자. 나는 결국 심뇌혈관질환 아니면 암으로 죽게 될텐데, 암이라고 친다면 다음과 같은 상황이 일어날 것이 뻔하다. 아무것도 모르는 풋내기 의사가, 그러니까 지금의 나와 같은 처지의 젊은 의사가 나에게 내 질병은 치료가 어렵고, 나는 죽음을 피하기 어렵고, 자기는 최선을 다할 것이나 내가 잘못되는 것에 대해서 자신도 어쩔 도리가 없음을 합리적인 것처럼 설명하려 들텐데, 나는 그를 쥐어박지 않을 자신이 없다. 이런 악몽은 시간과 모습을 달리하여 나를 매번 공격한다. 파도처럼, 거대한 파도가 나에게 밀려와 그 속에 휘말려 숨조차 쉬지 못하다가 마침 내 뭍에 밀려 나온 듯이 거친 호흡을 하며 새벽에 눈을 뜬다. 



p. 24

그 울적한 여름 내내 갈매기들은 하루종일 우리 지붕 꼭대기를 맴돌며, 모든 게 괜찮은 척, 잘못된 것이 없는 척, 세상이 계속되는 척하려는 우리의 시도를 조롱하는 듯했다. 사실 그것이 그녀의 허벅지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불룩 튀어나온 것. 디애스라는 커다란 아기. 그것이 그녀 안에서 자라며, 자기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존 밴빌이 쓴 『바다』와 같은 이야기를 읽는 일이다. 슬픔만이 슬픔을 해독할 수 있고, 나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남겨놓은 글만이 나를 이해하고 보듬어줄 수 있다는 것이 역설처럼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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