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런 말이 있지 않는가. 어린 나이에 갑자기 큰돈을 벌게 된다거나, 갑자기 큰돈을 만지게 된다면 그것이 오히려 독이 되어 사람을 망칠 수도 있다는 뉘앙스의 말들. 나는 변변찮은 경력도 없이 젊은 나이에 헤드를 달게 된 그녀를 보며 그러한 말들을 떠올렸다. 보통 수 간호사는 10년 이상의 경력자를 뽑는다. 그렇다면 수 간호사가 된다는 것은, 재수 없이, 휴학 없이, 공백기 없이 살아왔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30대 후반은 되어야 가능한 일이라는 것이다. (물론 병원에 따라 다를 수는 있겠다.) 그러나 내가 있던 한방병원에서의 헤드는 20대였다. 오픈 병원의 특수였다고는 하지만 너무 빨리 왕좌(?)에 올라버린 그 자는 썩 좋은 관리자가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보며 때때로 '우리' 수 선생님을 그리워하곤 했다.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하고. 못할 것 같은 건 내버려 둬요. 내일 제가 처리할게요.
나는 정말이지 말을 잘 듣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수 쌤은 저 한 마디 덕분에 퇴근 후, 혹은 비번인 날에도 지독하게 연락을 받아야 했다. 그때의 나는 자그마한 응급(?) 상황에도 중심을 잡지 못한 채 여기저기 연락을 해댔다. 큰 병원에서는 조리돌림을 당할만한 일들일 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다른 병동에 도움을 청할 때에도, 주치의에게 연락할 때에도 거리낌이 없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이 모든 것은 나의 무지로 인한 불안감이 원흉이었으나, 다시 겪는다 해도 같은 선택을 했을 것 같기도 하다. 애먼 사람 골로 보내는 것보다 상급자들을 괴롭히는 것이 좀 더 낫다는 가치판단의 결과였다. 사실 내가 입사하던 당시에는 다른 수 선생님이 계셨다. 그런데 정말 갑자기 관두셨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근무 여건에 대해 총대매고 항의하다가 결국 이직하셨다고 했다. 우리의 대장은 갑작스러운 공석 덕에 강제로 감투를 쓰게 되었는데, 그때의 상황은 그야말로 최악이었다고 표현할 수 있겠다. 당시, 잠시 잠깐이기는 했으나 데이와 이브가 단 세 명으로 굴러가야 했던 시기가 있었다. 게다가 나이트 킵(나이트만 전담으로 하는 사람)도 단 한 명밖에 남지 않아 데이와 이브닝을 그 세 명이 나이트까지 나눠 가져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제 막 감투를 쓴 관리자와 이제 막 임상에 발을 들인 병아리 간호사, 그리고 그보다 고작 1년 더 빨리 면허를 딴 또 다른 신규였다.
혹시나 듀티를 짜본 사람이 있다면 알겠지만, 저딴 상황에서 좋은 듀티가 나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나는 나이트 하나, 더블 둘만을 가져가며 꽤나 선방한 듀티를 차지하였는데 이러한 배경에는 수 선생님의 희생과 동기의 배려가 있었다. 내 동기는 나이트 킵도 아니면서 나이트를 13개나 수행했다. 나이트만 전담으로 하는 사람도 15개-16개가 고작인데, 쉬는 것은 주간근무자처럼 쉬면서 야간 근무를 저 다지도 많이 한다는 것은 몇 년의 여생을 희생한 것이나 다름없다. (나이트 킵은 30일인 달을 기준으로 했을 때 15일 근무, 15일 휴무이다. 3교대의 간호사가 법정 공휴일 수만큼(보통 8개) 쉰다는 점을 고려하였을 때 오프 수가 많은 편에 속한다.)
수 선생님은 이런 시간표를 줘서 미안하다고 하면서도 정작 본인 근무표는 신경 쓰지 않아서 한 달에 단 4번만 쉬는 극악의 스캐쥴을 가져갔다. 그리고 근무의 상당수가 더블(16시간 근무)이었다. 근무자가 죄다 신규뿐이라 모든 뒤처리를 해야 했으며, 심지어는 인증이 다가오고 있어 온갖 서류를 뒤집어엎어야 했다. 나였으면 당장 사표 쓰고 나와버렸을 것만 같은 극악의 상황 속에서 그녀는 책임감 하나로 병동을 이끌어 갔다.
그런데 그 고작 4번 있는 오프 날에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병원 연락을 받아야 했으니, 이 얼마나 파괴적인 생활인지. '우리' 수 선생님은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화 한 번 내지 않고 오히려 고생이 많다는 소리를 건네는 사람이었다. 이러한 사람 밑에서 근무하던 내가 대체 어떤 헤드를 만나야 만족을 했겠냐만은, 적어도 저 젊은 처자는 부족해도 한참 부족한 관리자 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