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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onnievo Mar 31. 2024

혜화, 대학로, 동숭동

내가 사랑하는 그 동네


중학교 때부터 대학교 때까지 밴드를 했다.
중학교 때의 대일밴드, 고등학교 때의 딩가딩가, 대학교 때의 씨알.
모두 직관적인 이름들 뿐이라 확실히 기억에는 잘 남지만 어쩐지 촌스럽게 느껴진다.

나는 쉬이 유추되지 않는 이름들을 좋아한다.
예를 들어, 타니말라 같은.
아마도, 인디언 부족장 이름이라고 했었나.
뜻도 멋있었는데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아무튼, 그러한 맥락에서 나는 마로니에 공원을 처음 접한 순간 단번에 그곳이 마음에 들었다.
청자켓을 입은 젊은 날의 나의 아버지가 통기타를 연습하던 낭만의 공간이자, 수많은 예술가들이 청춘을 노래하는 젊음의 무대.
내가 어떻게 이곳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3년 내내 장래희망 칸에 작곡가를 적어냈던 중학생의 나는 동생을 끌고 종종 대학로를 찾았다.
음악인을 꿈꾸던 나에겐 홍대가 좀 더 적절한 선택이었을지도 모르겠으나, 나는 히피 같은 홍대보다는 순수한 열정의 공간처럼 그려지는 대학로가 조금 더 끌렸다.

흔히 예술가는 배고프다고 하지 않나.
그러나 홍대는 방송국과 너무 가까워서, 열정이 배고픔을 이길 것만 같은 대학로의 이미지와는 다른 철저한 야망인의 공간처럼 느껴졌다.

이같이 느낀 데에는 마로니에 공원 근처의 벽돌 건물들도 한몫했다.
붉은 벽돌의 건물은 콘크리트 건물에 비해 세월을 가늠하기 어렵다.
그래서 대학로는 피터팬의 네버랜드같이 느껴지곤 한다.
영원히 늙지 않는 젊은 열정의 공간.

아버지를 따라갔던 마로니에 공원에서, 통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아저씨를 보았다.
아버지는 그를 보며 '저 아저씨 아직도 저기에서 노래하네'라며 신기해했다.
누군가의 젊은 시절부터 그 딸이 꽤나 커버린 시점까지 저만의 예술을 이어가는 그가 나는 참 멋있다고 생각했다.
아마 그날의 기억이 지금까지 혜화를 진정한 예술인의 곳이라고 여기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하루는 거리에서 행사를 했다.
신촌의 차 없는 거리처럼 차량이 통제되어 뚜벅이들이 모든 땅을 밟을 수 있는 그런 날이었다.

날이 맑았고, 잔디밭 같은 초록 카펫이 늘어져 있었다.
누군가는 그 위에 자유로이 놓인 피아노와 드럼을 연주하였고, 누군가는 그 옆에서 본격적인 무대를 선보였다.
아이들을 위한 소규모의 연극과 비눗방울을 불고 있는 어른들까지, 거리엔 온통 행복하게 웃으며 여유로움을 만끽하는 사람들뿐이었다.

나는 그날을 감히 혜화의 정체성이라 부르고 싶다.
소박한 행복을 선사하는 자유로움의 장, 예술로서 모두가 하나 되는 평화의 공간.
나는 아마 오래도록 이곳을 사랑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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