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청춘 호소인은 공주가 되기로 결심했다
회기물은 아닙니다
/ 25세 청춘 호소인 /
요양병원의 노인들은 모두 하나같이 나의 젊음과 건강을 부러워하였으나, 정작 그 모든 것을 누리는 나는 아무것도 체감하지 못하였다.
그때의 나는 사회초년생이 할법한 생각에 몰두되어 있었다.
주에 5일 직장에 나간다는 것은 주에 6일이나 학교에 나가는 것보다 힘든 일이었다.
하루 24시간에서 일하는 8시간, 출퇴근하는 2시간, 출근을 준비하는 1시간, 자는 7시간을 제하면 6시간.
하루의 4분의 1만을 나를 위해 사는 이 생활을 나는 도무지 평생 지속할 자신이 없었다.
아니, 1년이나 버티는 것도 아득하고 암담하게 느껴졌다.
직장인의 몸뚱아리는 이전처럼 가볍지 않다.
팔팔 날아다닌다는 20대임에도 벌써 해마다 모래주머니가 하나씩 추가되는 기분이 들곤 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체육수업을 들으려면 시간과 자본을 소비해야 한다.
힘들게 번 자그마한 돈은 쓰기가 아깝고, 그것은 일말의 자유시간도 마찬가지였다.
이맘때쯤 자본주의에 대한 회의가 함께 몰려왔다.
누구는 일을 하지 않아도 평생을 놀고 살만한 돈을 물고 태어났다.
또 다른 누구는 놀면서도 남들이 평생 일해야 만질만한 돈을 한 번에 번다.
내 청춘이 사회에 녹아들어 갈 때 누군가는 손쉽게 온전히 제 청춘을 누릴 수 있다니,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어느새 한국 나이로 26세가 되었다.
20대보다 30대에 가까워졌다는 사실만으로도 한층 무겁게 살아야 할 것만 같은 묘한 책임감이 몰려왔다.
젊음이 너무 순식간에 지나가버리는 것만 같았다.
황금 같은 20대라더니.
내 여생을 이 보잘것없는 삶을 추억하며 살게 된다니.
/ 나의 도둑맞았던 청춘 /
1년 좀 넘게 기다린 대학병원을 비로소 완전히 포기했다.
해탈하면 편하다더니, 정말 그렇다.
사실 포기했다고 말하고 다니면서도 몇 달이나 미련을 버리지 못했었다.
해외 취업을 도전하겠다 말하면서도 국내 채용공고를 유심히 들여다보았고, 신규 간호사의 입사 추이를 주시하였다.
이는 '실패할' 가능성에 대한 공포에서 기인하였으며, 동시에 젊음을 체감하지 못했다는 것의 반증이기도 했다.
#1
근래의 채용시장은 얼어붙었다.
나의 입사 예정 시기도 내년으로 미뤄졌다.
갔다가 잘 안 되면 예정대로 기다리던 대학병원에 들어가면 되겠다는 계산을 마친 뒤엔 비로소 약간의 안도감을 얻었다.
#2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유튜브 알고리즘이 바뀌었다.
20대에 방황했던 사람의 이야기, 30대에 워킹 홀리데이를 나간 사람의 이야기, 40대에 해외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눈에 들어왔다.
영어를 한 마디도 못하던 사람이 일련의 과정 끝에 미국에서 파일럿을 하게 된 이야기를 접하였다.
그는 여전히 젊었으며, 눈빛에선 말 그대로 빛이 났다.
#3
현재로서 가장 나에게 가망있는 비자는 만 25세의 싱글에게 나이와 배우자 점수에서 최고점을 준다.
막 25세가 된 나는 마침 싱글이다.
취업비자의 문이 점점 닫히고 있다.
그러나 마침 나는 워킹 홀리데이 비자를 받을 수 있는 건장한 20대 청년이다.
더불어 나는 배우자도, 자식도 없는 홀몸이기에 이 도박에 걸린 판돈이 크지 않다.
안 맞으면 돌아오면 된다.
국내 최고의 병원에서 근무하는 친구는 내 결정에 동참하겠다면서도 쉬이 그러지 못하였다.
다른 몇 친구들도 그러했다.
이미 무언가를 가진 이들은 그것의 무게에 짓눌린 탓인지 쉬이 벗어나지 못하는 듯했다.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나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4
우리 학과에는 만학도가 많았다.
주변에 아직 취업을 못한 친구들도 많다.
이제는 평균 첫 취업연령이 30대에 접어들었다고 한다.
운 좋게 방황 없이 전공을 선택하여 순조롭게 회사 생활을 시작했다는 것만으로도 '뒤처지지' 않는 삶이었음을 깨달았으나,
더 큰 깨달음은 내가 아직 젊다는 것을 이제야 실감했다는 점이다.
요즘엔 정말 편안하다.
행정처리가 밀릴 때마다 신음하는 사람들 틈에서 나만큼은 평화롭다.
정작 나도 영어시험이 한 달이나 밀렸지만 말이다.
한 번에 붙을지, 면허 전환이 바로 될지, 비자가 바로 나올지, 취업이 바로 될지 알 수 없다.
그래도 당분간은 젊을 테니 조금은 방황해도 되지 뭐.
/ 환영합니다 공주님~ /
예전엔 에뛰드 매장에 들어서면 직원들이 '환영합니다, 공주님~!'이라는 인사를 건넸다.
훗날 알게 된 바로는, 직원들은 공주고 손님은 이웃나라 공주라는 컨셉이 존재했다고 한다.
나는 요즘 에뛰드 공주 같은 마인드로 살고 있다.
공주들 대단해, 그렇지만 나도 대단한 공주야! - 이렇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모든 것이 한결 후련해진다.
누군가는 내 나이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전재산을 바칠 것이라고 했다.
그만큼 가치로운 20대를 하마터면 자기 파괴로 얼룩지을 뻔하였다.
앞으로는 공주답게 여유롭고 긍정적인 삶을 살아가겠다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