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중장년층이 하나쯤은 품고 있는 질환 삼 형제다. 그런데 혹시, 이렇게나 흔한 질환마저 대처할 수 없는 병원이 있다고 하면 믿겠는가? 내가 다니던 한방병원에는 D/W(포도당 수액)도 없고 사탕도 없었다. 과장 좀 섞어서 환자의 반이 당뇨 유병자인 병원 세상에서 아무런 대비 없이 누구 하나라도 저혈당이라도 오면 어쩌려나 싶지만 그에 대한 걱정을 할 만큼 똑 부러지는 의료진이 그 병원엔 없었다.
**저혈당 쇼크의 경우 심한 경우 의식을 잃고 사망할 수 있다.
한 번은 systolic*이 200까지 뛰는 환자가 있었다. **systolic : 수축기 혈압( 혈압계에서 위에 있는 숫자). 혈압의 정상치는 120/80으로 보통 150-160 이상부터는 고혈압으로 본다. 200이면 당장 뭐라도 처치를 해야 하는 높은 수치다. 그런데 열심히 노티(notify, 보고) 해도 돌아오는 답은 '1시간마다 옵져(observation, 관찰/주시) 하세요'가 고작이었다.
머리 올리고 쉬고 계세요. 1시간 뒤에 다시 올게요.
내 입에서 저 말이 10번째쯤 나왔을 때였다. 그러니까, 환자는 2일 내내 밤낮없이 약도 없이 혈압만 주구장창 재고 있는 상태였다. 그토록 담배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하루종일 어디 가지도 말고 앉아있으라고 시켰으니 불만이 어지간히 쌓인 것이 아니었다. 증상도 없으니 그만 재자는 사람을 붙잡아두고 '위험하다'는 말만 반복하는 우리가 얼마나 답답하게 보였을까.
계속 혈압만 재면 뭐가 달라져요?
환자가 어이없다는 듯 물었다. 당연하게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어제 쟀던 혈압도, 아까 쟀던 혈압도 지금과 같았다. 그런데 뭐 어쩌겠는가? 우린 멋대로 약을 줄 수 없다. 특히나 뭣도 모르는 신규 간호사는 더더욱.
저 응급실 좀 다녀올게요.
그는 참다못해 일어나 나갈 채비를 하였다. 결국 입원한 덕을 하나도 보지 못한 채 스스로 응급실 문을 두드렸다.
과민성대장증후군으로 인한 잦은 설사, 그로 인한 탈수가 원인이었다고 한다. 인근 응급실에서 hydration 후 약 하나를 받아온 뒤로는 언제 혈압이 높았냐는 듯 안정적인 수치를 자랑했다. 반나절도 안 되어 해결될 것을 이틀 동안 질질 끌어온 셈이다. 전날 이브닝부터 보고를 받은 수많은 의사와 한의사도, 인계를 넘긴 간호사들도 다 멍청했던 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