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11일
언젠가 아이들과 잠자리에 누워 책을 읽어주던 밤이었다.
그날은 유난히 빨리 재우고 싶은 마음에 책에 꽂는 작은 독서등 하나만 켜 두었다. 방은 어둡고, 불빛은 낮았고, 그 안에서 우리는 아주 오붓했다. 책장을 넘기는 소리와 아이들의 숨결이 섞인, 잠으로 넘어가기 직전의 시간이었다.
하지만 책이 끝나도 아이들의 눈은 좀처럼 감기지 않았다. 말똥말똥한 눈으로 서로를 보며 웃고, 이불속에서 꼼지락거리며 장난을 시작했다. 작은 독서등의 불빛은 잠을 부르기엔 너무 밝았고, 어느새 방은 다시 환해졌다. 그래서 나는 그 불빛을 이용해 벽에 손 그림자를 만들었다. 순식간에 방은 어두운 그림자 놀이터가 되었고, 말도 안 되는 동물들이 하나둘 등장했다. (여우, 코끼리, 호랑이, 강아지, 기린 등등...)
그중에서도 양손으로 만든 새는 유독 사실적이었고, 아이들이 가장 좋아했다. 새가 날아가다 아이들 위로 툭 떨어지는 흉내를 내면, 아이들은 킥킥 웃으며 자기에게 온 새를 가슴에 폭싹 내려앉은 새를 꼭 안았다. 마치 정말 살아 있는 무언가를 품에 안은 것처럼.
그때 빈이가 말했다.
“내 나비야.”
새였던 그림자는 그 순간 나비가 되었다. 빈이는 ‘내 나비야’라고 말하며 두 팔로 꼭 끌어안고는 좀처럼 놓아주지 않았다. 나는 양손이 잡힌 채 꼼짝도 못 하고, 그 상태로 한참을 꼼짝 못 했다. 아이의 말 한마디가 사물을 바꾸고, 이름을 붙이고, 세계를 새로 만드는 순간이 무해한 세계에 온 것만 같았다.
그렇게 아이들끼리 지쳐 잠이 들면, 나는 마지막으로 불을 끄고 아이들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그제야 하루가 끝난다. 큰일을 해낸 것도, 특별한 추억을 만든 것도 아니지만, 아이의 품에 안긴 ‘내 나비야’라는 말 하나가 오래 남는다.
아마 이 시간들은 아이에게는 기억나지 않겠지만 나는 안다.
오늘 밤도, 아주 작고 조용한 사랑이 분명히 지나갔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