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잡곡자매 Sep 03. 2023

내 생애 가장 오래 한 고민(1) - 둘째 낳아도 될까

나의 출산 이야기

    군대를 다녀온 남자들에게 마르지 않는 샘물 같은 군대이야기가 있다면, 아이를 낳은 여자들에게는 각각 그들만의 고유한 출산 스토리가 있다.


    출산예정일이 지났거나 아이가 너무 커서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는 경우 일부러 진통이 오게 하는 유도분만을 한 여자들에게는 양수를 터뜨리던 순간의 퍽 하는 소리가 잊을 수 없다고 했고, 간호사가 몸 위에 올라와 배를 누르는 게 진통보다도 더 아팠는데 출산 후 배를 보니 멍이 가득했다거나 하는..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지 않고는 듣기 힘든 경우들은 다반사다. 긴 시간의 진통을 겪고도 결국에는 애 머리가 끼어 안 나오는 바람에 진통은 진통대로 하고 제왕절개를 했다는 가장 나쁜 케이스의 이야기. 무통 주사라는 현대의학의 힘을 빌려 별다른 고통 없이 대변 누듯 몇 번 힘을 줬더니 애가 나왔다던 세상에서 가장 부러운 출산 썰도 있다.


    출산이 너무 빠르게 진행되는 바람에 출혈이 멈추지 않아 응급상황이었던 동생, 경부가 짧아 임신 기간 내내 병원 침대에서 누워 지내야 해 머리 감는 것조차 일주일에 겨우 한번 남편이 해주었다는 친구, 22주부터 조산기로 병원생활을 하다가 갑자스러운 하혈로 30주에 아기를 낳은 친구. 정말 모두의 다이내믹한 출산 이야기를 듣다 보면 영화가 따로 없다.


    나 같은 경우는  별다른 이벤트 없이 임신기간을 잘 보냈고,  밤 12시에 시작해 9시간의 진통을 겪었다. 일찍 병원에 가봤자 진진통이 올 때까지는 다시 집으로 돌려보내거나 병원에서 대기하는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주워들은 터라 처음 4시간 정도는 집에서 버텼다. 가진통은 생리통 정도의 통증이었기 때문에 까무룩 기절했다가 점점 강해지는 아픔에 잠이 깼다가를 하다 보니 이제 병원에 가야겠다는 느낌이 왔다. 그리고 적절한 시점에 병원에 가서 무통주사까지는 잘 맞았는데.. 막상 무통의 은총이 끝난 시간에 진짜 진통이 파도같이 몰려오는 바람에 2시간의 지옥을 맛보았다. 진통의 느낌을 굳이 비유하자면 1톤 트럭이 내 배를 깔아뭉개고 그 무게를 온전히 내 배로만 받아내고 있는 기분이랄까. 분만 침대에 누워서 양쪽 다리를 다리걸이에 올려놓은 자세에서 진통이 올 때에  윗몸일으키기를 하듯 상체를 들어 올리며 힘을 주라고 했다. 겨우 몸을 일으켜 힘을 주고 나면 트럭의 바퀴가 쇳덩이로 변한 것처럼 배 전체를 쥐어짜는 아픔이 몰려왔다.

 두려웠다. 진통이라는 존재는 지날수록 더 세졌고 잠도 자지 못하고 힘없이 끌려온 근육 0의 만삭 임산부는 점점 지쳐갔다. 하지만 싸울 수 있는 선수는 나 혼자 뿐, 이 경기의 끝이 언제까지인지, 나는 언제까지 두드려 맞아야 끝이 나는지 몰라 무서웠다.


    그래도 다행히 끝이 있는 경기였다. 병원에 도착한지 5시간쯤 지난 오전 9시 9분, 아기가 태어났다.

나의 출산은 미디어에서 학습된 것처럼 감격도, 경이로움도 아니었다. 오히려 충격에 가까웠다. 얼굴에 핏줄이 다 터져 눈도 못 뜬 얼굴로 남편을 안고 울었고, 끝났다는 안도감뿐이었다.


 "여보, 내가 다시 애를 낳으면 변태야."

"(지금도 이렇게 힘든데) 더 나이 들고는 애 절대 못 낳겠다. 고로 둘째는 진짜 없다."

* 당시 내 나이는 만 나이 31세


    부모님이나 친구들에게 출산 소식을 전하며 9시간 진통하고 낳았다고 말하면 다들 "와. 순산했네. 초산인데 빨리 진행됐네." 하며 축하해 주었고, 그 순간 내 출산은 너무나도 순조롭고 평화로운 순간으로 아름답게 둔갑했다. 그날 이후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다면 [순산]이라는 단어는 당사자 말고는 그 누구도 먼저 꺼내서는 안 되는 단어라는 것이다.



    그리고 5년이 지난 어느 날, 남편과 점심을 먹다가 약국에 가서 임신테스트기를 샀고, 바로 앞에 있는 화장실에  테스트를 하러 들어와 있는 거울 속에 비친 나의 모습을 보며 출산하던 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아. 정말 사람의 하찮고도 부질없는 맹세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