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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곡자매 Sep 04. 2023

내 생애 가장 오래 한 고민(2) - 둘째 낳아도 될까

맞벌이 부부의 육아 5년 기록

내 생애 가장 오래 한 고민(1) - 둘째 낳아도 될까내 생애 가장 오래 한 고민(1) - 둘째 낳아도 될까

    그리고 테스트 결과는 단호박 한 줄. 그럼 그렇지.

재택 중인 남편에게 테스트기를 넘기며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이따 한번 다시 봐줘"하고 나는 다시 회사로 돌아갔다. 1시간쯤 지났을 즈음 남편이 아주 희미하게 한 줄이 더 보이는 거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며 카톡으로 테스트기 사진을 보낸다. 회의 중에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게 휴대폰을 가린 채로 사진을 최대한 확대하고 아무리 들여다 보아도 내 눈에는 두줄이 안 보인다.

 

    3시간쯤 지나고 다시 남편에게 온 전화.

"아까는 한 줄이 있는지 없는지 헷갈릴 정도로 보였는데, 지금은 엄청 희미하지만 두줄이 보여. 그럼 임신된 거야?"

남편이 보낸 사진을 보면 정말 잘. 아주 자아아아아아알 보면 매직아이처럼 한 줄이 더 보이는 것도 같았지만 기분 탓이지 여전히 내 눈에는 여전히 한 줄인 것 같았다. 그리고 왠지 한 줄이어야만 할 것 같았다.

'이렇게 쉽게 임신이 될 리가 있나... 우리가 둘째 고민을 얼마나 오래 했는데..'

 



    둘째 고민을 시작한 지 2년이 넘었다. 육아 휴직으로 1년 6개월, 복직해서 아이의 어린이집과 회사생활에 적응하다 보니 또 1년이 훌쩍 지났고, 진급년차에 임신을 하는 바람에 미뤄야 했던 진급 준비를 하다 보니 또 2년이 훌쩍. 그 사이 아이는 어느새 5살이 되고 6살이 되었다.


    우리 부부는 맞벌이를 하고 있어 아이가 이렇게 자라기까지 철저한 2인 체제로 굴러왔다. 그 말인즉슨 유치원을 제외한 시간은 나와 남편이 100프로 커버해야 한다는 소리였다. 양가 부모님들은 차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살고 계시기도 하고, 아빠들이 아직도 일을 하시기 때문에 비상시 비정기적으로 도움을 요청하기는 하지만 꾸준히 도움을 받기는 어려웠다.

 육아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단 한순간의 공백도 허용되지 않는 "지속성"이다. 하루라도 아이가 혼자 유치원에 걸어가서 등원을 한다거나, 혼자 집에 있으며 밥을 차려먹고 잠을 자는 일 따위는 있을 수 없다. 빈틈없이 아이 옆에는 보호자가 있어야 하고, 우리 애는 어린이집에 들어간 18개월부터 9시에 등원해 6시 이후에나 하원을 할 수 있었다.

 

    누군가는 그래도 6시, 7시까지 봐주는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회사 어린이집이 있으니 얼마나 행운이냐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나도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육아휴직을 사용하고 이후에는 어린이집을 보낼 수 있으니 아이 키우는 사람들에게는 이만큼 안정적이고 감사한 환경은 없겠다 하고 생각했으니.


 사람은 살아가면서 경험한 만큼 세상을 본다고 한다. 경험하기 전에는 보이지 않던 워킹맘, 워킹대디들의 세상이 나에게도 보이기 시작했다. 아침 7시에 기상해 등원 및 출근 준비, 8시쯤 차를 타고 함께 출근해 9시에 어린이집에 아이를 데려다 주고 출근, 저녁 6시 이후 퇴근해 어린이집 하원. 회사 식당으로 이동해 식사를 한 후 다시 집에 도착하면 저녁 8시 30분이 넘었다. 나는 쉬고 싶고 놀고 싶은 아이를 달래 씻기고 재우고, 남편은 개들 산책을 하고 씻는 기본 일정만 소화해도 밤 11시가 훌쩍 넘었다. 나와 남편은 그래도 어른이라고 해도 18개월 아이에게는 가혹한 일정이었다. 하루에 1시간 반 이상을 차에서 보내고, 어린이집에서 9시간을 보내며 언제 올지 모르는 엄마아빠를 기다렸다.


회사 게이트에 사원증을 찍고 퇴근을 하는 순간부터 어린이집까지 쉬지 않고 뛰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도록 뛰어가도 아이는 반에서 꼴찌 혹은 꼴찌에서 2등으로 하원할 수 있었다. 정원이 100명은 되는 만 1세 반 신발장에 남아있는 신발은 채 다섯 켤레가 되지 않았고, 그중 하나는 내 아이의 신발이었다.


항상 끝까지 남아있던 아이의 신발

 통합반 교실 앞에 가서 유리창을 톡톡 두드리면 아직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아이는 못 볼 것을 본 것 마냥 허겁지겁 뛰어나왔고, 나는 그 모습에 매일 눈시울이 붉어진 채로 아이 하원을 했다. 아직 시계를 볼 줄 모르는 아이들은 엄마아빠가 언제 올지 모르니 누군가 문 앞에 데리러 오면 다 같이 창문을 바라보며 자기 엄마아빠, 할머니 할아버지가 왔는지 살핀다고 했다. 우리 아이는 친구들이 엄마아빠 손을 잡고 한 명 한 명 떠나는 동안 몇 번이나 엄마아빠를 찾아 창문을 훑었을까.


    이 빠듯한 일정도 둘 다 대부분을 정시에 퇴근을 해야 겨우 굴러갔다. 둘 중 한 명이 조금이라도 바빠지면 2인 체제로 굴러가는 일정을 한 명이 소화해야 했다. 나는 복직 후 회사에 적응하며 바쁜 업무와 육아를 해내야했고, 남편은 1시간 거리에 있는 회사에 왔다갔다 하며 육아를 하느라 시간도, 체력도, 잠도, 모든것이 모자라던 시절이었다. 하루하루 더할 수 없이 열심히 살고 있는데도 회사에서는 또 다른 압박감과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생기고, 내가 야근을 하는 동안 남편이 혼자 고군분투하고 있을때에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9시, 10시까지 야근을 할 때면 엄마가 보고 싶다며 전화너머 들려오는 딸의 울음소리, 따라주지 않는 체력, 미안한 마음과는 별개로 지칠 때 아이의 징징거림을 받아 주지 못하는 나의 인내심, 이렇게 한다고 크게 성과도 나지 않는 일. 집에 돌아와 겨우 씻고 침대에 누울 때면 무엇을 위해 이렇게 살아야 하나 라는 생각뿐인 시절이었다.


이런 시간을 보내며 애 하나까지는 시간의 힘을 빌려 어떻게든 키워보겠지만 그 이상은 무리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고 남편도 같은 마음이 든다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엄마와 엄청난 애착이 형성된 아기는 뭘 좀 알게 되는 나이가 되니 더 애틋해지고 짠함을 더한 엄마껌딱지가 되어 어린이집에서 밥 먹다가도 엄마 생각에 울고, 아침에도 헤어지기 싫어 울고, 아빠가 하원해하는 날에도 엄마가 보고싶어 울고, 내가 조금만 늦게 퇴근하면 말은 못하고 품에 안겨 한참을 울었다.

아빠와 있지만 엄마가 보고싶어요(1)
아빠와 있지만 엄마가 보고싶어요(2)



이렇게 하루하루 버티며 지내고 있는 상황에 누군가 둘째는 왜 안 낳냐, 낳을거면 빨리 낳는게 좋다는 둥 속도 모르는 이야기를 하면 가슴 저 깊은 곳에서부터 천불이 났다.



어린이집에서 자주 전화가 왔다. 수족구, 구내염, 중이염, 후두염, 유행하는 병이 그렇게도 많은지 처음 알았다. 기본적으로는 열이 오르면서 시작되고, 추가로 콧물이 나거나, 목이나 입 안이 헐거나, 손발에 두드러기가 나거나, 목에서 쇳소리가 나는 등의 옵션이 붙었다. 회복하는 데에는 짧으면 4~5일, 길면 2주까지도 걸렸고, 열이 정상체온이 될때까지는 새벽에 한시간에 한번 꼴로 깨서 열을 재고 해열제를 먹이고 물수건으로 몸을 닦아야했다. 이렇게 아픈 아이를 돌보는 날이 3일쯤 지나면 내가 병이 났다.


그리고 아이가 어린이집에 나간지 1년이 다되어가는 시점, 코로나19가 터졌다.


코로나로 힘든 상황도 많았지만 한편으로는 코로나 사태가 심각해지면서 회사에서는 재택근무 제도가 신설된 덕에 무너지지 않고 여기까지 왔다. 재택 하는 사람이 아이의 등하원을 맡아주니 사무실로 출근하는 사람이 시간에 쫓기지 않고 일을 하고 오는 것이 가능해졌다.

 다음 해 회사 앞으로 이사를 하면서 출퇴근 시간만큼의 여유가 생겼고, 코로나로 아이를 긴급하게 하원하는 잦은 상황에도 대처가 가능했다. 코로나가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컸지만 재택이 없어지면 겨우 안정적으로 자리 잡은 2인 체제가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만 같아 솔직한 마음으로는 두렵기도 했다.

 그리고 아이가 7살이 된 올해 5월, 3년 3개월간 지속된 코로나의 종식 선언과 함께 재택근무도 끝이 났다.


그리고 내 뱃속에는 둘째가 꼬물꼬물 자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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