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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곡자매 Feb 03. 2024

이러다가는 다 죽어!

아프지마라

일주일간 남편이 앓았다. 지난주 토요일부터 오한이 있고 목이 너무 아프다고 하더니 월요일에 방문한 병원에서 결국 코로나 판정을 받았다.

네버엔딩 코로나

6살 아이와 임산부인 내가 옮지 않게 당분간은 남편이 작은 방에서 따로 지내기로 했고, 덕분에 출근 전과 퇴근 후 나누어하던 육아가 내 몫이 되었다.


하루 일과는 대략 이러했다. 아침 7시 30분에 기상. 출근 준비를 하면서 자는 아이를 깨워 등원 준비를 시킨다. 6살 아이는 뭘 시키면 바로 하는 법이 없다. 무언가를 하려다가도 눈앞에 관심 있는 것이 보이면 금세 할 일을 까먹고 빠져들었다. 옷과 양말을 신고 있으라고 하면 책을 펼쳐 보고 있고, 가방에 물통을 넣고 오라고 하면 가방 안에 있는 물건들을 꺼내어 놀고 있었다. 나는 옷을 입고 이를 닦으면서도 아이가 준비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 자꾸 들여다보고 재촉한다. 나가기 5분 전까지 입에 칫솔을 문 채 거울을 보면서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어 결국 무서운 얼굴로 한소리를 하고 나서야 겨우 집을 나선다. 8시 40분에 아이를 겨우 유치원 셔틀버스에 태워 보낸 후 9시쯤 회사에 도착해 한숨 돌린다. 이제 하루의 시작인데 몸과 마음은 하루의 마무리인 것처럼 잔뜩 지쳐있다. 식당에서 받아온 고구마와 착즙주스를 마시고 일찍 출근한 동료와 커피를 한잔 사러 나갔다 온다. 둘 다 육아를 하고 있기에 서로 오늘 아침이 얼마나 전쟁 같았는지 아냐며 내기하듯 이야기하며 깔깔 웃고 나니 에너지가 충전된 것 같다.


회사에서는 메일확인, 자료 작성, 회의와 보고 등에 참석하다 보면 9시간은 무엇을 했는지도 모르게 쏜살같이 지나가고 저녁 6시쯤 딸아이의 하원버스 시간에 맞춰 퇴근을 한다. 하루종일 떨어져 있다가 만나니 반가워서 손을 흔들고 안고 까르르 웃으며 집에 온다. 집에 도착해 저녁을 해서 먹이고 치우고, 간단히 집청소를 하고, 아이의 목욕을 시키고 나도 씻고 나면 9시가 넘는다. 아이를 재우러 같이 들어갔다가 나까지 그대로 기절해 눈을 뜨면 아침이었다.

회사에서 모성보호 대상자로 야근 없이 8시간의 근무시간을 딱 맞추어 퇴근하는데도 참 고된 일정이었다. 임신 6개월 차가 되니 항상 두 발과 배에 모래주머니를 달고 사는 것처럼 몸이 무거워 앉았다 일어서는 것도 숨이 찼다.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이 든데 회사일과 육아와 살림을 챙기려니 죽을 맛이었다.

저두요..



그래도 회사와 집에서 받는 스트레스의 종류가 완전히 다르다 보니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춰주는 효과는 있었다. 회사에 가면 육아의 힘듦을 잊고, 집에 오면 회사 일을 잊을 수 있어 머리가 환기가 된달까. 방에만 갇혀 지내는 남편은 임산부인 나를 안쓰러워하며 매일같이 미안하고 고맙다는 카톡을 보내왔다.


어떻게 갔는지도 모르게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의 시간을 보내고 금요일이 되었다. 남편의 증상이 조금 나아졌고 코로나 키트도 음성이라고 하기에 이번주 주말에는 정상적인 일과를 보낼 수 있겠구나 하던 차였다. 토요일 오전에는 아이가 졸라서 다니고 있는 뮤지컬 학원, 오후에는 아이 친구의 생일파티 일정이 있었고, 일요일에는 시어머님의 생신 식사로 주말 일정이 가득차 있었다.

금요일 외근 후 하원 시간을 맞출 수 없을 것 같아 남편에게 하원을 부탁했다. 집에 도착하기 10분 전쯤 남편의 카톡이 왔다.

[갑자기 너무 어지럽고 토할 것 같아]

부랴부랴 집에 돌아오니 화장실 안에서는 남편의 우웩우엑 하며 토하는 소리가 들렸고, 방금 하원하며 넘어졌다는 아이는 문 앞에 앉아 무릎에 피가 난다고 울고 있고 전쟁통이 따로 없었다. 우는 아이를 달래 살펴보니 상처가 심각하지는 않아 화장실에 가서 남편에게 괜찮은지 물었다. 코로나가 토하는 증상도 있었던가 아니면 또 다른 병인가 알 수가 없어 아픈 남편을 좀 챙겨주려니 아이가 쉴 틈 없이 끼어들어 자신의 이야기를 해댄다. 자기가 왜 다쳤는지, 어디에 부딪힌 건지, 부딪힌 게 그냥 돌이 아니고 회색 돌인지 바위인지, 그래서 아빠가 약을 발라줬는지 안 발라줬는지, 아빠가 아픈 자기를 돌봐주지 않고 화장실에 가서 계속 토하고 있는 거라며 너무 아프다고 엉엉 운다. 그리고는 엄마는 아픈 자기 이야기는 들어주지 않고 아빠만 챙긴다고 또다시 눈물 바람이다. 남편은 저녁도 먹지 못했고 새벽 내내 화장실에서 구토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금요일 밤이라 이미 주변 병원들은 모두 문을 닫았고 토요일 아침이 되자마자 병원에 다녀왔다. 1년 전쯤에도 갑자기 어지럽고 토하는 증상이 있어 진료를 받아보니 이석증이 심하게 왔었고 이번에 재발한 것 같다고 했다. 균형감각을 잃어 생기는 문제로 고개를 조금만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심하게 어지러워 일상생활이 어려운 정도였다.


예정된 일정은 내가 아이와 갈 테니 남편에게는 집에서 쉬며 회복하는 것이 낫겠다고 권했다. 아침 10시쯤 아이를 데리고 뮤지컬 학원에 갔다가 집에 돌아와 점심을 먹고 밀린 집안일을 했다. 오후 4시쯤 아이 친구 생일파티에 가서 시간을 보낸 후 아파트 주차장에 도착하니 밤 10시가 넘었다. 친구들과 땀을 뻘뻘 흘리며 놀던 아이는 차에서 잠이 들었고, 21킬로 아이를 주차장에서 안고 올라왔다. 웬만하면 그냥 재우고 싶었지만 온갖 먼지와 땀범벅이 된지라 아이에게 의자에 앉아있으면 엄마가 빠르게 씻겨주겠다. 괜찮겠냐 물었고다행히 잠이 조금 깬 아이는 말끔하게 씻고 머리까지 말렸다. 머리를 말릴 때 졸리다길래 딱 10초만 더 말릴 테니 열까지만 세고 가자고 하던 터, 드라이기 바람이 뜨겁다며 엉엉 운다. 겨우 달래 침대에 함께 누웠는데 한참 동안 엄마가 잠을 깨워서 이제는 잠이 안 온다며 잉잉하며 운다.

- 잠이 깨버렸어? 우리 그럼 오늘 하루 재미있었던 거 하나씩 이야기해 볼까? 기분 좋았던 거 이야기하다 보면 잠이 올 것 같은데 어때?

- 나는 다른 거 기억 안 나. 그리고 엄마가 드라이기로 뜨겁게 말린 것만 생각나. 그리고 (드라이기 바람을) 한 곳만 계속해놓고 그렇게 안 했다고 거짓말한 것도 속상해.

- 거짓말이 아니라 정말 엄마는 드라이기 움직이면서 말려줬어. 이렇게 기억도 못할 거면 엄마가 하루종일 하임이 일정 같이 다닐 필요가 없었겠네..  함께 오랜 시간 즐겁게 보낸 건 기억도 못하고 아주 잠깐 속상했던 것만 기억난다고 하니 엄마가 너무 속상하다.


정말로 몸도 마음도 지쳐 잠드는 토요일이었다. 남편의 증상이 나아지지 않아 일요일 어머님 생신 식사는 참석이 어려울 것 같다고 연락을 해두고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중간중간 잠이 깬 건지 꿈을 꾼 것인지 계속해서 몽롱한 상태에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멀리서 들려오는 피아노 소리에 잠이 깨니 밖이 아주 환했다. 시계를 보니 믿을 수 없게 일요일 오후 2시였다. 일주일간 소진한 체력을 회복하느라 기절하듯 잠을 잔 모양이다. 환하게 해가 비치는 거실에서 남편이 아이와 마주앉아 놀아주고 있었다. 아 이 얼마 만에 보는 무탈한 일상인가. 눈앞의 모습이 꿈만 같았다.

맞벌이인 우리 부부는 아이가 이렇게 자라기까지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2인 체제로 굴러왔다. 둘 중 한 명이 바빠진다거나 아프기라도 하면 남은 한 명이 두 사람의 몫을 하느라 몸도 마음도 갈아 넣어야 했고 그러다 보면 곧 일상이 무너졌다. 아무 걱정 없이 평범한 일상을 지속하는 것이 우리의 기적이고 소원이었다. 그리고 소원을 이루는 데 가장 중요한 준비물은 첫째도 체력, 둘째도 체력이다. 그래서 남편이 아픈 기색을 보이면 걱정보다도 앞으로 어떻게 생활해야 할지 막막한 마음이 앞서 오징어 게임에 나온 오일남의 대사를 외친다.

"아프면 안 돼. 나 무서워! 이러다가는 다 죽어! 다 죽는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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