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은 어떻게 생명을 얻는가, instagr.ai
연필 끝이 무겁게 닿은 종이 위에 상식과 어울리지 않는 선들이 비틀거리며 걷는다. 목이 다리에서 자라난 거북이, 뽀송하고 동글납작한 몸통의 오리, 나풀거리는 다리를 가진 말이 탄생한다. 모두 엉성하고, 서툴고, 기이하다. 하지만 이 모든 어긋남이야말로 아이들의 그림이 지닌 가장 큰 자유이자 가능성일 터다.
이 그림들은 세상의 기준을 아직 모른다. 대칭도 모르고, 해부학도 모르며, (미안하지만)‘이상하다’는 평가도 모른다. 그래서 더 자유롭고, 더 용감하다. 이렇게 탄생한 생명체들은 ‘잘 그린 그림’의 것들보다 훨씬 더 생생하게 살아 숨쉰다. 납작한 오리는 물 위에서 미끄러지고, 넙데데한 말은 엉거주춤 들판을 걷는다. 거북이는 다리가 세 개인 것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 사자는 줄무늬와 수염이 뒤섞인 얼굴로도 당당하게 산을 오른다.
instagr.ai는 이 기묘한 선들에 AI로 심장을 달아주는 프로젝트다. 기술이 하는 일은 단 하나, 그림을 그대로 살아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마치 “지금 모습으로도 충분해”라고 말해주는 것처럼. 그래서 이 프로젝트는 애니메이션이라기보다 일종의 추억 복원 장치에 가깝다. 화면 속에서 뒤뚱거리며 걷고 있는 말을 보고 있자면 묘한 감정이 마음속에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나도 예전에 직사각형의 젖소를 그렸었지” 같은.
우리는 오래도록 ‘더 잘’ 그리는 법을 배워왔다. 선이 삐뚤면 고쳐야 한다고 배웠고, 비례가 어긋나면 다시 그려야 한다고 배웠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그 모든 ‘교정’을 거부한다. 대신 상상력을 감각 그대로 꺼내어 심장을 달아주고 움직이게 한다.
놀랍게도 이러한 ‘기술적 감동’은 꽤 묵직하게 다가온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 생물들이 단순한 상상력의 결과물이 아니라 누군가로부터 충분히 사랑받으며 탄생한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크레용의 덜 마른 자국이나 지우개로 뭉개진 얼룩, 삐져나온 색연필 경계선과 같은 모든 미완성의 흔적들이, 이질적인 동시에 이상하리만큼 정겹다.
중요한 것은, 이 프로젝트가 기술을 통해 우리가 ‘상상’이라는 단어를 얼마나 잊고 살았는지를 일깨워준다는 점이다. 우리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이 영상 앞에서 입꼬리를 올리고, 생각하고, 문득 위로를 받는다. 아이의 시선이 창조해낸 새로운 생명체가 살아나는 그 순간, 우리는 추억하고 조금 너그러워진다.
세상은 늘 논리와 완성을 요구하지만, 우리의 상상은 그보다 훨씬 거칠고, 서툴다. 그리고 바로 그 불완전함에서 위로는 시작된다.
잊지 말자.
“상상은 정답보다 멋지다.”
조사해보니 instagr.ai는 익명의 크리에이티브 그룹으로 추정된다. 인스타그램과 유튜브를 통해 AI 기반 애니메이션을 공개하고 있다. 아이들의 손글씨, 크레용 자국, 지우개 자국까지 그대로 살아 있는 이 영상들은 단순한 기술 시연이 아니라 감성적 예술 실험에 가깝다.
이들이 만들어낸 더욱 흥미진진한 세계를 보고 싶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