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앞에서 작아진 나, 이제는 나답게 서는 중입니다

툭하면 내 잘못이었네

by 쏘꽁

허구한 날, 일이 잘못되면 나는 나를 탓했다.

‘내가 또 일을 망쳤구나.’

주눅 들고, 작아지고를 반복하며
나는 나를 계속 잃어갔다.



상대방은 그런 나를 보면 답답해한다.
"너는 왜 그래?"

나는 왜 그럴까?



엄마는 어린 시절부터 늘 같은 말을 했다.
“어딜 가서도 사랑받게 행동하렴.”

‘사랑받게 행동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상처받아도 안 받은 척.
울고 싶어도 안 우는 척.
안 웃고 싶어도 웃는 척.
안 괜찮아도 괜찮은 척.

엄마의 그 말은,
어딜 가든 나를 족쇄처럼 옭아맸다.

그렇게 나는 나를 잃어갔다.
잃어가는지도 모른 채.
그저 점점 더 작아져만 갔다.



첫사랑이 시작되면서,
그 말은 진짜 족쇄가 되었다.

첫사랑은 참 무섭다.
말은 아름다운데, 그 이면은 참 아픈 단어다.

사랑이라는 단어에 ‘첫’ 하나만 붙었을 뿐인데
모든 것이 아프고, 아릿해졌다.

서툴고,
상처받고,
단단한 사람마저 무너지게 만드는 것.

그래서 첫사랑은
아팠지만, 지나고 나면 아름다웠다고들 말하는 걸까.



내게도 그랬다.

‘첫’이 붙은 사랑,
그리고 엄마의 말.
그 둘은 늘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내 자아와 충돌했다.



‘사랑받게 행동하는 것’은
첫사랑 앞에서 무색해졌고,
나는 점점 무력해졌다.

사랑이란 항상 행복한 것만은 아니니까.

하지만 역설적으로,
나는 사랑을 하며 진짜 내 모습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나는 어떤 생각을 하는 사람이고,
무엇을 좋아하고, 또 싫어하는지.



그럼에도 그 ‘족쇄’는 여전했다.

사소한 다툼에도
나는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은 감각에 휩싸였다.

‘아, 내가 또 뭔가 잘못했구나. 어떡하지?’

종종거리고, 동동거리고,
불안해했다.

상대방도 불안해했고,
나는 그 불안을 보고 또 불안해했다.

그게 나를 더 아프고 힘들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말한다.
“거절하는 연습을 해봐.”

하지만 나는 말하고 싶다.
“선택하는 연습이 먼저야.”

사랑받게 행동하려는 마음은
결국 나를 선택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내가 이걸 선택해도 괜찮을까?’
‘이게 맞는 걸까?’

끝없이 고민하고,
생각은 커지고,
선택은 점점 사라졌다.



그래서 나는
사소한 것부터 선택하는 연습을 시작했다.

"나는 이걸로 할게."
"나는 이게 좋아."
"이건 어때?"

내가 주도적으로 선택하자,
삶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게 맞았다.

선택하는 삶은
타인에게도 이렇게 말하는 것과 같다.
‘이 사람은 함부로 대해선 안 되는 사람이다.’



사랑받게 행동하는 것.
지금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사랑받게 행동하는 것 = 나답게 행동하는 것.

나는 나로 온전히 설 수 있을 때
자신 있게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다.

나는 지금,
‘나로서 서는 법’을 배우고 있다.

누구에게도 상처받지 않으며,
매일 나를 치유하고 성장시키며
내 삶의 주인으로 살고 있다.



우리는 매 순간,
관계 속에서 너무 많은 감정의 교류를 한다.
가끔은 지치고, 번아웃되고, 다 타버리기도 한다.

그럴수록 우리는
적절히 귀를 열고, 또 닫을 줄 아는 법을 배워야 한다.

적당히 듣고,
적당히 웃고,
적당히 털어내자.

스스로를 잘 지켜내는 것.
그게 결국,
진짜 사랑받게 행동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