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을 하려고 앉았는데 왜인지 잘 써지지가 않아서(어쩌면 쓰기가 싫어서) 적는다. 문장을 찾을 힘은 없어서 그냥 쓴다.
쓴다와 적는다의 차이를 곰곰이 생각해보자면 '의지'의 여부랄까. 쓰는 것은 머릿속으로 떠올린 어떤 심상 같은 것을 자발적으로 (힘들게) 끄집어 내는 행위. 적는 것은 누군가가 읊어준 단어 혹은 문장을 그대로 옮기는 행위. 그러니까 이 글은 최소한 내가 떠올린 것을 적는 일이므로 쓴다는 표현이 조금 더 정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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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 3일차. 적응이 어느정도 완료됐다. 사람도 일도. 편안하면서도 우습지 않은, 유쾌하려 우스갯소리를 던지지만 자기만 재미있는 유머감각을 가진 국장님과 면담을 할 때부터 사람들이 친근하겠거니 예상했는데 역시나. 적극적으로 반기지는 않지만 은근하게 주변을 얼쩡거리며 한 두마디 던지려는 모습들이 웃기다. 무엇보다 개인주의적이면서도 자유로운 분위기라 이따금씩 산보를 나가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 환경이 좋다. 키보드직의 가장 큰 결함인 찌뿌둥함이 어느정도 해소된다.
업무 내용은 어렵지 않다. 어렵지 않은 것이 조금 싫기도 하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괴롭지 않은 일이라서 아쉽다. 괴로운만큼 배우는 것이 있다고 믿는데, 몸도 마음도 그다지 고되지 않다. 디지털 뉴스 특성 상 취재를 직접 하는 경우는 드물어서 내 새끼라고 말할만큼 자랑스러운 기사를 쓰기 어렵다. 그러므로 주된 것은 아무래도 우라까이. 우라까이 - 다듬기 - 우라까이 - 비교의 반복. 집에서 디지털 매거진을 만들어보면서 뉴스를 적는 일엔 피로를 느낄만큼 느꼈는데... 젠장. 그럼에도 깨우쳐가는 점이 있다면 많은 사람에게 소구될 수 있는 포인트를 잡는 법. 나쁘게 말하면 어그로 좋게 말하면 셀링 포인트. 여전히 거북하지만 필요한 덕목은 맞으니까. 극단적으로 실험성을 추구하는 것은 클리셰에 매몰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점을 상기하면서 중용을 찾는다. 참신하면서도 유익한.
기쁠 때는 외신의 재밌는 기사를 국내에 가장 먼저 들여왔을 때. 그 기사가 다른 언론사에 우라까이되었을 때. 영국 성범죄자에게 화학적 거세 의무화를 검토한다는 기사를 BBC에서 따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네이버 뉴스에 하나 둘 씩 걸리는 것을 지켜봤을 때 즐거웠다. 나만 알던 가수의 숨은 명곡이 메인스트림에 올라갔을 때의 짜릿함 같은 것이랄까.
만연스러운 문장을 쓰는 나로서 기사는 너무 건조하다. 가장 마음을 붙이기 어려운 지점은, 기사엔 사실 뿐이라는 것. 사실은 누구나 찾으면 알 수 있으니까. 나는 진실을 건네고 싶다. 모두에게 정확한 사실보다는 몇몇에만 가닿을지언정 강력한 진실을. 우라까이 기사가 아니라 발로 뛰고 문장을 찾아서 쓰는 기사엔 진실이 담길 것이라 믿는다. 사수 인턴께서 외근 인터뷰를 다녀오시고는 끓어오르는 무언가를 느낀 것처럼 이야기하던데. 흠, 진실을 찾은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