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거리를 발굴하기위해 정치 경제 사회/문화 국제 IT 과학을 막론하고 두루 읽으면서 세상에 뉴스가 너무 많다는 생각을 했다. 하루가 멀다하고 이렇게 많은 소식이 쏟아지니 기자는 박봉일지언정 굶어죽지는 않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지면과 전력을 낭비하지 않기위해 무슨 소식을 어떻게 전달해야할지 고민하게된다. 신변잡기적 정보를 (물론 그것은 그 자체로 고유한 의미를 가지지만) 찍어내는 기사는 아무래도 트래픽만 잡아먹는 휘발성 작업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기자로서 가장 마지막에 시도해야 할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자극적인 정보로 독자의 유입을 유도하고 채널 경쟁력을 높여주는 기자님도 계신다. 대의를 위해 희생을 감수한 다크나이트의 기상을 이은, 일명 '어그로 나이트'. 그분이 실로 그 행위를 원하는지 원치 않는지 알 수 없지만 최소한 처음 펜을 잡았을 때의 마음가짐은 아니었을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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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와 식사를 하다가 어떤 마음으로 글을 쓰는지 여쭈었다. 대중에게 알려져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을 쓴다고 했다. 알려져야 할 가치는 누가 판단할까. 글을 쓰는 기자다. 수백만의 소식이 쏟아지는 와중에 하나를 본다. 그것이 시의적이어서 담론을 만들어야 할 필요성이 있거나, 유용해서 삶의 질을 높여주거나,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 우선적으로 토론해야하는 화두를 찾는다. 그 시의성과 유용성과 시급성은 기자가 정한다. 그래서 본디 기사의 속성은 객관적일 수 없다. 형식은 중립적이지만 내용은 정치적이다. 그러므로 더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가뜩이나 뉴스가 범람하는 세상에 혼란을 더하는 글을 흩뿌리지 말자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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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7월 일본에 큰 지진이 있을 것이라는 예언이 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을 예언한 만화가가 2025년 7월에 또다른 재해가 덮칠 것이라는 예언을 내놓았단다. 실제로 최근 훗카이도 해안에서 지진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예언에 살이 붙고 있고, 국내 언론에서도 이 소식을 담은 기사를 여럿 내보냈다.
그 기사를 읽으면서, 그것은 과연 어떤 가치를 가졌을지 생각해봤다. 만에 하나 예언이 맞아떨어져서 지진이 발생한다면, 누군가는 그 기사 덕분에 일본행을 취소해 삶을 이어갈 수 있다. 유용한 정보를 전달해 생명까지 건져올린 유의미한 기사가 되겠다. 한편, 만에 9999 예언이 보기 좋게 빗나가면 일본 여행을 계획하던 어떤 이는 추억을 쌓을 기회를 잃게 된다. 음모론에 바람을 불어 넣어 혹자의 추억을 빼앗은 성급한 기사가 되겠다.
하나를 위해 성급함을 무릅쓸 수 있는 단단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 건지, 9999에게 혼란을 주지 않기 위해 잘 걸러낼 수 있어야 하는 건지. 소수만 대변해서도, 다수를 당연시해도 안되는 것. 기자의 자격과 기사의 속성에서 벗어나 그냥 있는 그대로의 어떤 것을 그 자체로 드러낼 순 없는걸까.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모호하게 읽히는 작품을 만든 감독들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진다. 홍상수의 영화들. 데이비드 린치의 <멀홀랜드 드라이브>. 구스 반 산트의 <엘리펀트>. 관객을 유도하지 않고 그냥 느끼게 만드는 재주.
어쩌면 모든 것에는 답이 있다는 닫힌 생각에서 비롯된 번뇌일지도. 저 사람들도 답이 있다고 생각하고 만든 건 아닐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