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살보단 갑옷을 만드는 일

by 박성열

국장님께 하루동안 쓰는 기사의 양이 너무 적다는 꾸중을 들었다. 근래 날마다 써낸 기사는 너덧개 남짓. 옆자리의 3개월 선배 인턴께서는 많을 땐 열 여섯개까지도 써내시는 터라 비교가 됐다. 물론 절대적으로 적은 양이기도 하지만. 여덟시간에 네 개면 두 시간 당 하나를 쓴 셈이다. 기사 한 편을 써내는 데는 평균적으로 20분. 늘어보자면 정보의 원산인 1차 보도자료를 먼저 확인하고, 국내 언론사가 보도한 2차 내용과 비교해본 후 사건의 전후 맥락을 추가하거나 문장/문단 재배열 및 가공을 통해 한 편의 독자적인 글을 만든 다음, 내용과 관련되면서도 아이캐칭한 사진을 골라 첨부한 뒤 핵심내용이 드러나는 제목을 거는데 걸리는 시간이 20분. 이것이 네 개면 80분. 그렇다면 480분 근무시간 중 나머지 400분동안 무엇을 한 거냐? 가 되는데 이것은 상사 입장에서 충분히 열이 뻗치는 상황이다. 인정.

꾸중에 나는 양질의 기사를 쓰려다보니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라고 대답했는데, 국장님은 '양질'이라는 단어가 특히 거슬렸던 모양이다. 양질이 뭔데? 니가 찾아쓴 것만 양질이냐? 그럼 남이 쓴 것은 양질이 아닌 것이냐? 기사의 내용이나 구성에 대한 비판이 아니었다. 정보의 우열을 나누는 태도에 대한 이야기였다. 억울함보다는 부끄러움이 더 커서 자리로 돌아와 고개를 숙이고 숨을 작게 뱉었다. 아침 대용으로 가져온 사과도 두유도 먹지 않고 기사를 찾고 또 찾았다. 또 혼나지 않기 위해서도, 스스로에게 떳떳하기에도. 아무래도 그렇게 하는 게 기분이 가장 나아질 것 같았다.

그간 기사를 쓰기 위해 다른 수많은 기사를 훑으면서 한 일은 그 기사의 소재가 얼마나 중요한지 판단하는 것이었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당장 공론화가 필요해 보이는 사건인가? 이를테면 환경에 대한 이야기. 교육에 대한 이야기. 청년의 현실에 대한 이야기. 세계에서 벌어지는 균열에 대한 이야기.

트럼프 대통령이 LA 불법 이민자 시위를 다스리기 위해 주지사의 동의 없이 주 방위군을 투입한 일, 기후운동가 툰베리를 태운 배가 가자지구에 진입하다가 추방당한 일, 기초생활수급자 행세를 하던 노인이 알고보니 월세를 받고 에쿠스를 모는 위장자였던 사실이 폭로된 일, 레오 14세 교황이 푸틴 대통령에게 통화로 평화를 강조한 일. 5월 1인당 일자리 수가 IMF 이후 최저를 기록한 일 같은 것.

기사로 기록할만한 중요한 사건이다. 그렇다면 기사로 쓰지 않겠다고 걸러낸 정보는 중요하지 않은가? 그렇지 않다. 단지 내가 선택하지 않았을 뿐이다. 다른 정보가 덜 중요해서라기보단, 이 정보에 더 마음이 가서... 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유익하거나 무익한 정보는 없다. 단지 조금 더 눈길이 가는 정보가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해서 선택은 우열이 아니라 애정에서 비롯되어야 한다는 것이고 세상엔 좋은 것과 더 좋은 것이 있다고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쁜 것과 좋은 것보다는, 좋은 것과 더 좋은 것 사이에 결정하는 것이 반대편에 선 사람을 다치지 않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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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는 무언가를 밝힌다는 점에서 대체로 화살을 만드는 일이라고 느낀다. 우리는 미담보다 악행을 고발하는 일에 더 열광한다. 불편을 느끼고 변화를 촉구해야 할 때 목소리는 높아지므로 본디 언론은 칼의 속성을 지닌다.

맹자의 구절을 떠올려볼까. 화살을 만드는 사람이 있고 갑옷을 만드는 사람이 있다. 화살을 만드는 사람은 자신의 화살이 사람을 해하지 못할까 염려하고, 갑옷을 만드는 사람은 자신의 갑옷이 사람을 보호하지 못할까 염려한다.

나는 갑옷을 만드는 사람이고싶다. 매서운 바람보다 뜨거운 해가 더 강하다고 믿는다. 화살이 난무하는 가운데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세상을 옳고 그른 것의 대결이 아닌, 옳은 것과 지금 더 옳은 것 사이의 투쟁으로 바라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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