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운 것. 얻은 것. 버린 것.

by 박성열

인턴 생활 6개월. 종료를 2주일 앞두고. 뭘 배웠나, 뭘 얻었나, 뭘 버렸나.

배운 것: 근속연수가 길다는 것은 강하다는 것. 아빠 존경합니다. 분야를 막론하고 한 분야의 일을 계속 해나간다는 것은 정말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이구나. 그것이 적성과 맞지 않는 일이라면 더더욱. 가족을 지탱한다는 이유로 취향을 애써 내놓은 어른들께 경의를 표한다. 그분들은 매일 상념과 싸우면서 하루하루를 버텨냈을까? 사직서를 가슴 한 켠에 품은 채로? 아니면 '죽기만큼 싫은 게 아니면 그냥 좋아해버려.' 같은 걸까? 자기 자신까지 속이면서 살아낸걸까? 모든 가장은 대단한 것이구나. 포기는 선택보다 더 용감한 것이구나.

사회생활을 '아주' 열심히 할 필요는 없다는 것. 중요한 것은 매너. 눈을 바라보며 소통할 수 있고 식사 예절을 지킬 수 있고 타인의 말을 경청할 수 있다면 이외의 특질은 개성으로 여기는 듯 하다. 내향인이라서 손해를 보지도 외향인이라서 떡고물이 더 떨어지지도 않는다. 맡은 바에 책임을 다하고 겸손하고 질서를 존중할 수 있으면 탈()을 줄일 수 있다.

솔직함은 변수.(다만 여전히 의문이 남아있다.) 선배들과, 동료 인턴분과 식사 자리가 있을 때면 궁극적으론 영화를 하고 싶단 이야기를 했다. 돌아오는 건 대체로 '오호~' 하는 눈빛과 함께 신기하다는 반응. '새로 온 인턴, 영화에 관심있대' 시간이 흘러 내 바람이 부서 안에 널리 퍼질 때쯤 동료 인턴으로부터 '딴 주머니 차고 있는 거 소문내고 다니지 마세요' 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른 일 하고 싶어하는 거(= 기자에 관심 없는 거) 티 내고 다니지 말라는 뜻인 듯 했다. '내가 하고 싶은 거 마음대로 말도 못하나' 발끈하다가, 곰곰히 곱씹어보니 누군가에겐 포부가 아니라 건방으로 들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인턴이 금턴인 요즘 같은 때, 기자라는 직업을, 내가 영화를 사랑하는만큼 열렬히 바라는 이에겐 내가 누리는 경험이 아주 큰 기회일 수 있을텐데. 돈을 번다는 이유로, 공백기를 메운다는 이유로, 색다른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이유로 그들의 기회를 빼앗아 깔고 앉아있는 건 아닌가 싶어서. 어줍잖은 청년애()라기보단, 매 출근 때마다 일에 회의를 느끼면서도 월급날이면 '이번 달도 다행이다' 안도를 느끼는 스스로의 위선이 괴로웠다. 주변에 흘리고 다녔던 이야기들을 주워담을 수 없으므로, 이 죄책감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방법은 뱉은 말을 지키는 것이다. 만들면 되고, 찍으면 된다.

기사의 출발은 '사실'이 아니라 '왜'에서 시작한다. 과감하게 말해서 사람들은 사실에 큰 관심이 없다. 사실은 해석을 뒷받침하는 근거일 뿐이다. 그러므로 유의미한 기사는 '얼마나 문제의식을 잘 설정했는가'로 정의된다. 예컨대 AI의 발전으로 사회초년생들의 일자리는 줄어든 반면, 팀장급 이상의 일자리는 늘어났다는 통계가 있을 때 그 수치를 그대로 열거한 스트레이트 기사는 설명문에 지나지 않는다. 기사는 사실을 근거해서 의미를 창출해야 한다. '지금 이 사실이 왜 필요한가?'를 파악하고

비판적인 기사일수록 트래픽이 높다는 것을 확인한 이래로, 기사를 (잘) 쓰는 일은 화살을 만드는 일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기울어진 프레임을 재생산하고 강자의 스피커 노릇을 하는 게 아닌, 소수자의 목소리를 확성하고 권력을 견제하고 위계를 재편하는 일에 뉴스가 쓰인다면. 기사를 쓰는 일도 갑옷을 만드는 일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게 됐다.


얻은 것: 살면서 한 번도 만나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의 명함. 예컨대 자산운용사 홍보팀장님. 금융의 금자도 모르는 내가 어떻게. 또 다른 건 어른에 대한 너른 이해. 자리가 주는 위압감을 걷어내면 다 똑같은 아저씨 아줌마군 하는 생각. 면접(과 같은 형식의)자리가 조금은 더 편해지지 않을까. 직장인의 마음은 비슷하구나. 일상을 지키기 위해 욕을 하는구나. 내 아내를 위해서. 남편을 위해서. 부모님을 위해서. 아이를 위해서. 돈이라는 것은 (적어도 나에게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지만, (아쉬운 소리를 하기 싫어서라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꽤 중요한 것이므로 그 앞에서 고개를 숙여야할 때도 있구나. 그러니 일이 너무 힘들고 고되서 욕지거리라도 하지 않으면 돈이고 뭐고 다 때려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될 것 같으니, 사랑하는 사람의 입에 고기 한 점이라도 더 먹이려고 버티는 이가 씨발씨발하는 것쯤이야 우렁찬 포효라고 생각하자. 그 살풀이 앞에서 잘잘못을 논하는 건 고리타분한 일이다. 한 잔 따라주거나 한 마디 얹어주거나. "그새끼가병신이네"

살면서 한 번도 들어가보지 못했을 공간의 분위기.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장은 이런 분위기구나. 정치인들의 미끄러운 언어는 이렇게 나오는구나. 국회방송 카메라에 얼굴이 잡히면 참 납작하게 나오는구나. 연예인들은 정말 예쁘고 잘생긴 것이겠구나.


버린 것(걷어낸 것): 영화와 관련된 것이 아니라면 내게 무용하다는 생각. 목표에 매몰되어 세상 모든 것을 수단으로 대했다는 생각을 했다. 연성 기사를 쓰는 일에 늘 회의를 가지고, 선배들과 두터운 맥을 쌓지 못한 건 내 마음이 미래에 가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시간이 나중에 어떤 양분이 될 지 여전히 믿지 못했기 때문이다.

뒤돌아보면 현재에 대한 의심은 몰입을 방해하는 가장 큰 적이었다. 목표를 갖는 것은 희망을 품는 일이자, 동시에 벽을 세우는 것이었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야겠다고 목표를 가졌을 때. 나의 모든 가치판단은 공부에 도움이 되는가와 그렇지 않은가로 이루어졌다. 공부를 도와주는 친구는 좋은 친구였고, 그렇지 않은 친구는 나쁜 친구였다. 영화를 찍고 싶다는 목표를 가졌을 떄. 영화를 찍는 데 양분이 되는 모든 활동은 유의미한 것이었고, 그렇지 않은 것은 무용한 것이었다.

그것이 중증으로 도졌을 땐,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를 찍는 행위가 아닌 모든 것들은 부수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 매일 개운하게 잠들기 어려웠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건 돈을 벌기 위함이고, 돈을 버는 건 영화를 찍는 데 필요한 경비를 마련하는 일이다. 꾸준히 운동을 하는 건 (영화를 찍지 못해) 속에 고여있는 에너지를 발산하기 위함이고, 체력을 키워서 언제가 있을지 모르는 철야 촬영을 버틸 수 있게 도와줄 것이다. 같은 식의 기승전-영화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지냈다. 느리지만 원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최면을 걸었다.

몸과 마음의 시차가 맞지 않으니 늘 이방인이었다. 사무실에서 기사를 쓰면서는 카페에 앉아 시나리오를 쓰는 상상을 했고, 카페에 앉아 시나리오를 쓰면서는 어딘가로 출근해 돈 버는 상상을 했다. 돈이 있을 때는 마음의 소리를 들었고 돈이 없을 때는 꼬르륵 소리를 들었다. 어디에도 마음을 붙이질 못하니 일에도 사람에도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나는 자기중독자라서, 늘 스스로를 강하게 만드는 일에 몰두해왔는데. 진정 강하다는 건 바라는 목표를 이루는 그 순간이 도래하기까지 불확실의 연속에서도 휩쓸리지 않고 땅에 발을 붙이고 있는 것임을 알았다. 카르페 디엠. 역시 클래식. 짧은 한 마디를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참 많은 길을 돌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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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의 머리채를 잡고 지금으로 끌고 오는 것은 솔이다. 그녀는 늘 부족한 내게 용기를 준다. 멋모르고 시작해도 괜찮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참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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