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웅

by 박성열

퇴사 후 평일. 개운하게 아침에 일어나 줄넘기를 했다. 출근할 땐 늘 6시 45분에 울리는 알람을 들으며 몸을 일으켰다. 의지로 깨지 않고 외력으로 '깨워지면' 몇시간을 자든 개운하지 않다.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으므로 7시로 알람을 옮겼다. 15분의 사치. 몸은 여전히 6시 45분을 기억하고 있어서 알람보다 일찍 눈을 떴다. 개운했다. 유산균과 비타민을 챙겨먹고 기지개를 켰다. 나갈 채비를 하려고 옷방 문을 밀고 들어서는순간 '나가지 말까' 고민했다. 빨래가 잘 마르도록 열어둔 창문으로 밤새 찬 공기가 불어들어와 한기가 짙게 깔려있었다. 문고리 잡은 손을 그대로 몸쪽으로 회수하면서 한 스텝 뒤로. 닫힌 문 앞에 멀뚱히 서서 잠시 고뇌. 음 그래도 첫 날인데, 단추를 잘 끼워야지. 당차게 문을 열고 잽싸게 양말을 신었다. 기모 바지를 입고 깔깔이를 걸치고 빨간색 줄넘기를 챙겨서 놀이터로 갔다. 막상 나오니까 춥지 않은데. 지난 주말부터 날이(온도가) 적당했다. 줄을 넘으면서 열이 오르니 깔깔이를 벗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의 온도.

줄을 넘으며 수신한 카카오톡 답장을 떠올렸다. 퇴사날 뵙지 못한 선배들께 보낸 편지에 대한 회신. 연락을 줘서 고맙다는 말. 터프한 언론씬에서 잘 버텨줘서 고맙다는 말. 열정과 재능을 가졌다는 말. 조용하고 깍듯한 모습으로 기억될 거라는 말. 셀렉한 기사의 내용과 달아오는 제목이 '참 좋았다'는 말, 다시 만나 반갑게 인사하자는 말, 세상에 쫓겨 마음 속 빛을 놓치지 말라는 말, 여의섬을 지날 때 언제든 연락하라는 말.

사무실에서 직접 마지막을 배웅해주신 부국장님과 편집부장님은 악수를 건네셨다. 대뜸 자취하냐고 물으시더니 삼양에서 협찬받은 우지라면도 한 봉 주셨다. 옆자리에 앉아계시던 또 다른 부국장님은 오후에 다녀오신 혼다 행사장에서 받아온 수납백을 주셨다. '뭐 따로 줄 건 없고...라면보다 내 께 더 비싸'. 기대하지 않은 분들로부터 기대하지 못한 선물을 받아서 겸연쩍게 있으니 부국장1께서 2에게 '그거 뒀다가 어디 쓰게, 라면이 훨씬 낫지' 하면서 갑자기 두 분이서 투닥거리기 시작했다. 아무말도 않고 있으니 긍정의 신호로 이해한 부국장 2께서 '기껏 줬더니만...'하며 웃으면서 혀를 찼다. 그 장면이 참 좋았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각자의 편을 들어주길 바라며 내 입만 바라보고있는 부모님을 보는 것 같아서.

부국장님들과 인사가 끝나길 기다리신(것으로 보이는) 편집부장님은 옆에서 팝업창처럼 등장하시고는 손을 내미셨다. 인사이동 이후 두 달 남짓한 기간동안 협업한 것이 전부였지만 친히 내 자리 앞까지 와서 인사해주셨다! 강인한 인상과 듬직한 풍채의 소유자이신 부장님으로부터 '너 재능있어' 이야기를 들었을 땐 뿌듯했다. 칭찬에 인색하실 것 같은 분이, 하물며 나눠본 대화라고는 기사 제목을 수정하고자 카톡으로 연락드린 적 뿐인데도... 내 작업들을 주의깊게 지켜봐주신 것 같아 감사했다, 무엇보다도, 입사 초기 정보의 우열에 대해 고뇌했던 시간 ['옳은 뉴스와 그른 뉴스는 없다. 옳은 뉴스와 (지금) 더 옳은 뉴스가 있을 뿐.'] 이 무의미하지 않았음을 이해받은 것에 안도를 느꼈다.

-

이 기록을 끝으로 지난 충무로에서의 6개월을 저편으로 넘긴다. 무언가를 기억하는 일에 젬병이거니와, 추억하기 편한 방식으로 과거를 왜곡하는 악취미도 가졌지만, 마지막에 건네받은 따뜻한 말들만큼은 고이 담아 챙긴다. 처음도 중간도 아닌, 나를 충분히 겪은 끝에 꺼낸 말인만큼 진심에 더 가까운 것이라 믿으므로. 안녕 안녕 안녕!

매거진의 이전글배운 것. 얻은 것. 버린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