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가는 단어를 매끄럽게 엮는 법을 아주 잊을 것 같아서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는 생각으로 쓴다! 그동안 기사를 제외하고는 그 어떤 갈래의 글에 참으로 소홀했다. 꾸준함이 장기였던 1일 1영화는 '1일 1영화'라는 네이밍이 무색하게 기록이 끊긴 지 오래되었고(영화 자체를 많이 못 본 탓이지만), 비평을 담은 브런치 연재나 신변잡기식의 블로그글조차 방치가 된 지 너무 긴 시간이 흘러 쉰 내가 날 지경이라서. 점심시간에 책을 읽다가 자리를 박차고 사무실에 들어와 (다시) 앉아 글을 쓴다.
회사 점심시간이 두 시간인 것은 참 좋은 일이다. 물론, 계약 상으로는 1시간(1130-130 사이 자유롭게)이지만 당직 선배 기자들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지키지 않는다.(않는 것처럼 보인다..) 속보가 터지면 신속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점에서 당직 선배들은 1시간씩 교대로 식사를 하신다. 인턴에게는 속보를 맡기지 않는다. 축복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쉽다. 새로운 소식을 세상에 가장 먼저 전하는 전율을 맛볼 수 있다면. 그리스 시민들에게 마라톤 전투의 승전보를 알리던 페이디피데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게 될까.
넉넉한 점심시간 덕분에 이렇게 글을 쓸 여유도 있다. 일을 시작하고 난이도가 높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뒤부터 틈틈이 글을 쓰자고 다짐했다. 기사 처리에 속도가 붙고부터는 근무 중에도 시간이 쪼개져 딴 짓을 할 시간이 확보되기도 했는데, 글을 쓰려는 마음도 같이 쪼개져서 새로운 문장을 만들기엔 어려움이 있었다. 초반에 들었던 기사 할당량에 대한 부담도 있거니와, '그래도 근무중인데... 루팡은 아니지'라는 죄책감과 쫓기는 마음에 머릿속에서 허우적대는 단어들이 서로 엉겨붙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나쁜 짓은 하고 싶어도 못할 성정이다.
그래서 차일피일 글 배설을 미루다가 변비에 걸리기 직전, 여러 소스들에서 얻은 자극을 푸룬주스 삼아 이렇게 흘려보내고 있는 것이다. 아 시원하다. 이렇게 마구잡이로 갈겨내고 싶은 충동이 들 때가 있다. 이런 기분이 싫지 않다. 매일 느낄 수 있다면 좋겠다. 매일매일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얼마나... 좋을까?
1일 1영화를 꾸준히 기록할 때는 쓰는 것에 대한 고민이 현저히 적었다. 실제로 무엇을 쓰고 있기 때문이겠지만, 매일 결과물이 나온다는 점이 나를 안정시켰다. 내가 가장 취약한 것은 마음에 들지 않는 나를 보는 일이라서, 완결된 형태의 산출물을 내거나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키면서 효능감을 되찾는다. 영화를 보고 기록을 꾸준히 남기는 일은 '하루 한 편의 영화를 보자'는 약속을 지켜냄과 동시에 한 편의 글을 완성한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나를 일으키는 작업이었다.
이야기를 꿰는 긴 레이스를 위해서 아주 촘촘한 보상체계가 있어야 할 테다. 결국 버티는 싸움이라는 것이다. 버틸 수 있는 힘이 생기는 때는, 옳게 가고 있다는 믿음이 커지는 순간이다. 소소한 성공은 스스로를 꽤 괜찮은 인간이라고 느끼게 도와주니까. 반드시 무언가를 만들어내지 않더라도 고이지 않는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라면 아무렴 좋다.
그런 측면에서 루틴을 가지는 것은 긍정적인 일이다. 창발은 반복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매일 주어진 일과를 차근히 수행하고 정해진 시간에 책상에 앉을 때 도리어 많은 생각이 튀어나올 수 있다. '창의 스위치'가 켜지고 꺼지는 것이 분명해진다고나 할까. 온마음을 빼앗기는 것이기 이전에 '일'이므로 나의 삶과 어느정도 분리할 필요는 있다. 글을 쓰고 영화를 찍으려고 태어난 것은 아니니까. 나의 삶을 설명할 때 글과 영화를 내놓을 순 있어도, 글과 영화가 나의 삶을 대변할 순 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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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 단순해진 요즘, 자유롭게 지내던 때를 떠올리면 역시 그때가 좋았지 소리가 절로 나온다. 자유로움에 해방감을 느끼면서도 불안함에 현기증을 느끼던 그 시간이 왜인지 이 나잇대와 더 어울린다고 느껴진다. 20대에는 고생을 해야, 방황을 해야 20대 다운 - 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젊음은 젊은이에게 낭비랬는데, 그 나이에 낭비는 미덕이라고 했는데... 남아도는 것을 누리지 못하는 기분이라 괜시리 손해를 보는 것도 같다. 졸업 직후에 공허한 시간을 견디지 못해서 좌불안석이었던 당시 모습을 떠올리면 참으로 위선적이기 그지없다. 에라이 간사한 인간아.
어쩌면 나는 평생을 불안에 휩싸여 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내가 원하는 모습에 가까워지게 되어도 나는 또 다른 불안을 키우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만족을 경계하는 탓이다. 나는 끊임없이 불편을 만들고, 발전을 갈구한다. 멈추는 것이 두렵고 힘이 들어도 움직이는 것이 속편하다. 어쩔 수 없는 빨리빨리 한국인이다.
사무실 생활을 하면서 생각한 것은 평생 움직이는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는 거다. 계속 앉아만 있으니 배에 기름이 끼는 것 같기도 하고... 지피티랑만 대화를 하니 사회성이 떨어지는 것 같기도 하고... 굳어가는 기분이 싫다. 인간이 아니라 조각상이 되어가는 그 기분.
CGV에서 근무하던 때, 권태를 느끼면서도 웃을 수 있었던 것은 편안한 새로움 덕분이었다. 매일 새로운 손님을 응대하고 다달이 새로운 미소지기를 만나면 작은 세상을 배우는 기분이었다. 팝퍼기를 닦고 쏟아진 팝콘을 쓸면 퀘스트를 완수하는 기쁨에 슬픔은 잠시 미뤄둘 수 있었다. 몸이 자유롭고 마음이 요동치는 그 일을 좋아했다. 더 널리 더 멀리 나서고 싶어서 그만두기로 결심했고,적당한 때 잘 마쳤다고 생각한다.
편안한 새로움 대신 불편한 안정을 찾게 된 지금 또 다시 방황이 시작됐다.두 달 뒤면 그 불편한 안정마저 잃어버리게 될 테다. 지금으로선 다음에 일어나게 될 일에 대해 구체적인 생각이 없다. 한 달 정도 외국으로 훌쩍 떠날 거라는 것. 소규모로 팀을 꾸려 단편을 한 번 찍어보겠다는 것 정도. 엄마의 생신이었던 어제, 세상 하고 많은 걱정 중에 자식 앞길 걱정만이라도 덜어주겠다며 내 앞길의 안전만큼은 보장하겠다고 큰소리친 것이 무색하게... 생각이 없는 것이 죄스럽다.
https://www.youtube.com/watch?v=wD2cVhC-63I
사람은 늘 도망가. 왜. 사람을 늘 도망가?
생각을 해봤자, 계획을 세워봤자, 그 계획을 이루어봤자 나의 이상은 늘 서너발짝 도망가 있을 것이다. 평생을 바쳐도 닿을 수 없을 상상 속 거울의 나에게. 너를 만나고 싶은 생각은 없어. 만날 수 없을 걸 알면서도 노력하는 그 자체로 의미가 생기는 것이 삶이라면...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때가 된다면 한 발 자국 물러서 무거운 원칙을 내려놓고 살뜰히 주변을 챙길 수 있겠다.
늘 생동하게 살자! 성질은 변하는 게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라는 밥 딜런의 마음으로!
<이하 노벨문학상 수상식에 불참한 밥 딜런이 한림원에 보낸 편지>
안녕하세요. 여러분. 저의 가장 따뜻한 인사를 스웨덴 한림원 회원들과 오늘밤 참석해주신 기품있는 참석자들에게 보냅니다.
개인적으로 여러분과 함께 있지 못해 유감입니다. 하지만, 제가 정신적으로는 여러분과 분명히 함께 있으며 이런 권위 있는 상을 받는 것을 영광스럽게 여긴다는 것을 알아주세요. 노벨문학상 수상은 제가 전혀 상상해본 적이 없던 것입니다. 어렸을 때 저는, (노벨문학상을 받은) 러디어드 키플링, 버나드 쇼, 토마스 만, 펄 벅, 알베르 카뮈 같은 빼어난 가치가 있는 이들의 작품을 흡수하고 읽는 것에 친숙했습니다. 세계 곳곳 도서관에 소장되고 학교에서 가르치며 존경어린 어조로 말해지는 작품을 쓴 문학의 거장들에 언제나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제가 이런 이름들과 함께 같은 명단에 오른다는 것은 진정으로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이들이 노벨상 (수상)에 대해서 생각해봤는지 저는 모릅니다. 하지만, 책과 시 그리고 극본을 쓰는 세계 누구라도 안쪽 깊숙한 곳에서 비밀스러운 꿈을 품고 있을지 모릅니다. 아마도 너무 깊이 묻어뒀기 때문에 거기 있는지를 자신들도 모를 수 있습니다.
누군가 저에게 노벨상을 받을 아주 적은 기회가 있다고 이야기했다면, 달에 서 있다고 하는 이야기와 똑같이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사실, 내가 태어나고 그리고 몇 년 뒤까지는, 세상 누구도 이 노벨상을 받을 만큼 훌륭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적어도 나는 매우 드문 대열에 속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이 놀라운 뉴스를 들었을 때 저는 길 위에 있었습니다. 정확히 의미를 깨닫는데 몇 분 이상 걸렸습니다. 위대한 문학가인 윌리엄 셰익스피어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가 자신을 극작가로 생각했다고 봅니다. 문학 작품을 쓰고 있다는 생각은 그의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무대를 위한 말을 썼습니다. 읽기 위해서가 아니라 말해지기 위해서 썼다는 뜻입니다. 그가 <햄릿>을 썼을 때, 저는 그가 여러 다른 생각을 했으리라고 확신합니다. “이 역에 맞는 배우는 누구지?” “어떻게 무대에 올리지?” “이 작품 (배경을) 덴마크로 설정하는 게 맞나?” 그의 창조적 비전과 야망은 그의 마음 전면에 있었다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하지만 다루고 고려해야 할 일상적인 문제도 있었습니다. “자금 조달이 제대로 될까?” “후원자들을 위한 좋은 자리가 충분할까?” “해골을 어디에 가져다 놓아야 할까?” 저는 셰익스피어의 마음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질문이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게 문학인가?”
저는 10대 때부터 곡을 쓰기 시작했고 제 능력으로 어느 정도 명성을 얻기 시작한 이후에도, 노래들에 대한 제 열망은 그 정도 거리까지만 그쳤습니다. 커피숍이나 바, 나중에는 카네기 홀이나 런던 팰라디움에서 제 노래가 들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정말 크게 꿈을 꾼 게 있다면, 노래를 녹음해서 제 노래를 라디오에서 들을 수 있기를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녹음을 해서 라디오에서 자기 노래가 나온다는 뜻은 많은 청중이 있다는 뜻이고 시작하고자 하는 일을 계속할 수 있다는 뜻이 됩니다.
저는 제가 하고자 한 일을 지금까지 오랫동안 계속해왔습니다. 수십여번 녹음을 했고 전 세계에서 수천번의 콘서트를 열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하는 모든 일의 필수적 중심에는 제 노래들이 있었습니다. 여러 다른 문화에 속한 많은 사람의 인생에서 제 노래들은 공간을 찾아낸 듯합니다. 그리고 저는 이를 아주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가 말해야만 하는 게 한 가지 있습니다. 5만명 앞에서 그리고 50명 앞에서 공연해본 공연자로서 전 50명 앞에서 공연하는 게 더 어렵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5만명은 한가지 페르소나이지만 50명과 함께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각자 모두 개인이고 다른 정체성과 세계가 있습니다. 더 명확히 사물을 인식합니다. 정직함과 그것이 재능의 깊이와 어떤 관계에 있는지가 시험 됩니다. 노벨 위원회 (위원이) 소수라는 사실이 제게는 효과가 없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셰익스피어처럼, 저는 자주 창조를 위한 노력에 대한 추구와 일상의 문제들의 모든 측면을 다루는 데 사로잡혀 있습니다. “이 노래들에 적합한 최상의 음악가는 누구지?” “맞는 스튜디오에서 녹음하고 있는 걸까?” “이 노래 조성이 맞나?” 어떤 것(고민)들은 400년이 지나도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한 번도 저 자신에게 “내 노래가 문학일까?”라고 질문한 적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스웨덴 한림원에 바로 그 질문(자신의 노래가 문학인지)에 대해서 생각할 시간을 주었다는 점 그리고 궁극적으로 이런 멋진 답을 주었다는 점에 대해서 감사합니다.
그럼 모두 안녕히 계세요, 밥 딜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