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싱의 기본은 스텝. 스텝은 다른 말로 리듬. 줄넘기는 하체 힘을 기르고 리듬감을 익히는 데 도움이 되기에 복서의 운동목록에서 빠질 수 없다. 영화에서 드라마에서 체육관을 처음 찾아갈 때 줄넘기만 주구장창 시키는 것은 다 이유가 있는 게다. 우리 체육관도 줄넘기를 시킨다. 스트레칭도 하기 전에 줄넘기 3라운드를 한다. 1라운드는 3분. 그리고 30초 휴식. 종이 울리면 넥스트 라운드.
원 투 원 투 백 원 투. 요즘 연습하는 콤비네이션. 투를 칠 때 왼쪽 무릎을 주저 앉는다. 오른쪽 발부터 허리 어깨가 충분히 돌아가지 않은 상태에서 손만 쭉 뻗다보니 왼쪽이 무너진다. 몸의 회전에 집중하다보면 가드가 얼굴에서 떨어진다. 가드에 집중하면 스텝에서 엇박이 난다. 스텝까지 잡고 제대로 된 동작을 두 세번 반복하면 종이 울린다. 왼쪽 엄지발가락이 얼얼해서 더 뛰기가 힘들다. 숨은 아직 고른데, 더 할 수 없다는 게 분하다.
왼쪽 발가락이 아픈 것은 스텝이 잘못되어서란다. 나는 오른손잡이, 오소독스라서 왼발을 앞에 오른발을 뒤로 벌려 자세를 잡는다. 뒷발(오른발)로 땅을 밀어서 왼쪽 앞대각선으로 뛰고, 다시 앞발(왼발)로 땅을 밀어 오른쪽 뒷대각선으로 돌아오는 게 스텝. 오른발잡이라서일까, 뒷발이 미는 힘이 앞발이 버티는(착지하는) 힘보다 더 세서 스텝을 뛸 때마다 왼쪽 발에 무리가 가는 듯하다. 뒤꿈치를 든 상태로 계속 뛰니까 특히 엄지발가락이 더 아픈가보다.
아무럼 매사 가장 중요한 것은 기본기. 기본에 충실해야 무너지지 않고 견고히 쌓아갈 수 있다. 올바른 스텝을 위해서 줄넘기를 더 하기로 했다. 스텝이 잘 되면 아프지 않게 연습을 더 할 수 있을 것이다. 숨이 남는데도 뛰지 못했다는 자책감에서 해방될 수 있다. 능력이 허락하는데도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죄책감을 덜어낼 수 있다.
총 10세트. 두 발 모아 뛰기 100회 후 곧바로 양발 교차 뛰기 50회. 이후에는 교차로 뛰면서 디딤 반대 다리(띄운 쪽) 무릎을 접었다가 앞으로 펴면서 킥을 하는 형태의 점프(풀어내 설명하자니 어려운데, 무한도전 '행쇼'편에서 요를레이후 노홍철이 춘 러시아 춤과 비슷한 스텝이다.)를 20회. 이후 쌩쌩이(2단 뛰기)는 자율적으로. 170회씩 10세트이므로 도합 1700번 정도 줄을 넘는 셈이다.
세트 당 줄을 넘는 횟수가 많지 않기 때문에 걸리지 않고 마치는 데 초점을 둔다. '탁탁탁탁' 리듬에 취해 줄을 점점 빨리 돌리게 되면 다리가 저리고, '탁 탁 탁 탁' 느긋하게 줄을 돌리면 '언제 10세트를 하나...' 잡념에 오히려 속도가 어긋난다. '탁 탁 탁 탁'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적당한 리듬감을 찾는 것이 핵심이다.
줄을 머리 뒤로 넘기고 나에게 질문을 한다. '자, 준비됐나?' 줄을 돌리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다. 줄넘기는 거짓말을 용납하지 않는 절대박감이므로, 성급하게 들어왔다고 판단하면 곧바로 발을 건다. 탁 탁 탁 탁 리듬에 맞게 열심히 줄을 넘다가 걸리면 원인을 찾아본다. 너무 빨랐거나, 너무 끌었거나.
https://www.youtube.com/watch?v=b9ilXLsz0KE
'줄이 너무 빨랐군.' 분명 미끄럼틀 옆에서 줄을 넘기 시작했는데 멈추고 보면 그네 옆까지 와 있다. 줄을 너무 빨리 돌린 나머지 흥분해서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린 게다. 점프를 할 때마다 5mm씩 앞으로. 멈추지 않으면 이러다가 줄을 넘으면서 산을 넘고 물을 건너게 될지도 모른다는 마음에 뇌에서 줄에 걸리게끔 신호를 내린 것이다.
'줄이 너무 느렸군.' 줄이 신발의 앞코를 때린다. 줄이 너무 늦게 도착한 나머지 이미 착지해버린 발에 걸린 게다. 천천히 넘으면 힘이 덜 들 것 같은데, 오히려 더 힘들다. 줄이 돌아오는 속도와 다시 뛰는 순간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져야 사뿐하게 점프를 이어갈 수 있는데, 속도가 느리면 줄을 기다리느라 착지 시 발바닥이 땅에 온전히 닿게 되고 무릎이 완전히 펴져 충격이 커지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결국 리듬. 재차 강조하지만 줄넘기는 속일 수 없다. 탁 탁 탁 탁, 그 고유의 리듬을 찾기 전에 성급히 줄을 넘어봤자 세 번을 넘지 못하고 다시 걸린다.
출근 전 줄넘기로 하루의 리듬을 조율한다. '타타타탁-'을 넘었다면? 오늘 좀 되는데? 고삐를 당겨도 되는 날이다. '탁 탁 탁' 안정적이라면? 아주 보통의 하루다. 줄을 넘으러 나가기 싫은 날이라면? 아, 쉬고 싶은 날이다. 어쩌면 쉬어야 하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