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연휴의 후반전. 김해에 내려온지 사흘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서울이 그리운가 싶다. 스스로 되물어본다. . . 서울이 그립다기보단, 경거망동할 수 있는 자유가 그립다. 2025년 10월의 김해는 유난히 느리다.
올해 추석에는 외조부모님과 고향에 동행했다. 친할머버지가 모두 떠나가시면서 부모님이 상계동에 들르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명절마다 거처가 되어 준 친가댁은 가까운 친척에게 팔아버렸고, 외가댁은 여섯식구가 자기엔 좁아 너무 엉겨붙어야 했으므로... 석관동의 두 분을 여행 삼아 김해로 모시자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특명이 생긴 셈이었다. 할머니 할아버지를 당신네 딸 집까지 안전히 모시는 것.
두 분과 발맞춰 느긋하게 움직이면서도 머리는 비상하게 돌리느라 애를 먹었다. 치매약과 속옷은 빠짐없이 챙겼는지 식사는 입에 맞는지 숨이 차지는 않는지 자리가 불편하진 않는지. 하필 부슬비까지 내리는 바람에 더 긴장했다. 무릎이 불편한 할머니와 발을 딛는 힘이 부족한 할아버지가 행여나 미끄러지실까봐. 오르고 내리기를 최대한 피하려고 택시로 이동했다. 할머니는 '서울역 가면 성아가 나와있는 거야? 기차 타고 어디 가는 거야?' 반복해서 물으셨고 할아버지는 추석 때 택시 타보는 건 처음이라며 택시 기사에게 너스레를 떠셨다. '김해에 가요. 엄마는 서울역에 없고 김해집에서 만나요.' 물음에 반복해서 대답하다보니 금방 서울역에 도착했다.
서울역에 온 것도 오랜만, 기차를 타는 것도 오랜만, 딸네집에 가는 것도 오랜만. 부지런히 두리번거리는 두 분의 얼굴에는 피곤함과 설렘이 공존한 듯 했다. 두 분의 속도를 과소평가한 탓에 역에 출발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도착해버려서 하릴없이 시간을 죽여야 했다. 앉을 곳이 마땅찮아 호시탐탐 들썩이는 사람들을 주시하다가 자리가 나자마자 엉덩이를 얹어드렸다. 우두커니 억겁같은 시간이 흐르고 기차에 오르자마자 두 분은 편안한 자세로 고쳐 앉고 선잠에 드셨다. 대합실이 너무 붐빈 탓에 혼이 빠져서일까, 여행의 시작을 열어드리는 입장에서 부디 너무 정신이 없지 않으셨길 바랐다. 아직 많이 부족한 가이드구나, 괜시리 스스로를 탓하게 됐다. 운전을 능숙하게 할 수 있어서 차가 있었다면, 지루할 틈이 없게 조금 더 수더분한 손자였더라면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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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 날엔 아빠와 함께 할아버지를 모시고 목욕탕에 갔다. 첫 날 진영역에서 집으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할아버지는 '나한테서 할아버지 냄새나냐?'라고 물었다. 뭐라고 답을 해야하나 싶어 잠자코 있다가 생각이 삼천포로 빠져 할어버지 냄새는 무엇이며 그것이 나는 이유는 뭘까 따위를 고민하고 있었는데 할머니가 '입 안 열면 냄새 안나요. 기차 타고 오면서 입을 너무 닫고 있으니까 그렇지'라며 위로가 섞인 팩트로 답을 내놓았다. 곁눈질로 할아버지 눈치를 살짝 살폈는데, '이걸 기분 나빠해야 해 말아야 해?'하는 표정처럼 보였다. 그러다 이내 평온해지셨다. 사실 적시 기분나쁨을 교묘하게 빗나가는 그녀의 절묘한 완곡어법. 아. 이것이 장수하는 결혼 생활의 비법이구나. 한 박자 늦게 무릎을 탁.
여하튼 할머니의 말이 은근히 신경쓰이셨는지 할아버지는 목욕탕에 가자는 제안을 무난히 받아들이셨다. 사실 목욕탕이 적극적으로 내키지 않는 것은 나였다. 바디로션을 안 챙겨와서 때를 밀면 몸이 건조할 것 같았고, 같이 깨끗하게 씻자는 마음보다 오랜만에 아빠 등도 밀어주고 할아버지 목욕도 시켜드리자는 겸사겸사 의도가 짙게 느껴져서 청개구리 심보가 났다. 그렇지만 알량한 마음 때문에 목욕탕을 가지 않으면 민족대명절에 아들이자 손자로서 역할을 저버리는 것이니 마음을 달리 먹었다. 효도 스위치를 켠 채 생각하고 행동하기로 했다.
할아버지의 몸을 본 것도 처음이었고 몸 구석 곳곳을 만진 것도 처음이었다. 알지 못했던 다리의 상처를 발견했고 비쩍 말라 늘어진 허벅지를 찾았고 왕년 운동의 흔적인 구획된 가슴 근육과 볼록한 광배를 확인했다. 옷이라는 것은 참 많은 것을 감추면서 또 드러내는구나. 할아버지와 더 가까워진 느낌을 받았다. 또래 할아버지들보다 허리가 꼿꼿하고 배도 아주 나오지 않았다는 점에서 내심 갖고 있었던 할부심도 강화하게 됐다.
깊숙하게 생각해보면 목욕탕을 가는 데에 거리낌이 생긴 표면적 이유는 (경우없게 말하자면) 나를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대동한다는 점이 와닿지 않았기 때문이지만, 나의 행동에 제약이 생긴다는 점에서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 부분도 있다. 할아버지의 속도에 맞춰 샤워 시간을 정하고 할아버지의 상태에 맞춰 탕 온도를 정해야 하는 것. 뜨거운 사우나에 들어갈 수 없고,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사우나의 가장 큰 묘미인 불가마 직후 찬물 샤워도 할 수 없게 되는 것. 나는 주도권을 잃는 것에 보통 사람보다 더 큰 스트레스를 느끼는 통제강박자이기 때문이다.
이런 다소 불손한 생각은 깨끗하게 때를 밀고 물을 끼얹어 한층 환해진 할아버지의 모습과 함께 말끔히 씻겨졌다. 아휴 개운하겠다. 몸에 묻은 물을 수건으로 닦아내고 자판기에서 이온음료를 뽑아 따 드렸다. 목욕 일정이 너무 타이트했는지 벌컥 한숨에 절반 넘게 드셨다. 나른해진 표정을 보면서 무사히 잘 마쳤다는 안도감과 함께 곡진한 사랑 앞에선 자존심이니 주도권 따위는 모르겠고 스스로를 잃어버리게 되는 것에 무던해질 수 있구나하는 깨달음을 실감했다. 머리로만 알던 것을 가슴으로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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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 올라가는 여정에도 두 분을 모시게 됐다. 남은 두 밤을 오롯이 즐기셨으면 좋겠다. 나도 천천히 시간을 느껴보련다. 유튜브 2배속 금지. 일어나자마자 뉴스 확인 금지. 모니터 속 깜빡이는 마우스 커서와 눈싸움하기. 싸움에서 승리하고 백지를 글자로 가득 메워보기. 할머버지의 모습을 더 많이 눈에 담기. 2025년 추석을 기억하기(유독 명절에 어디에서 무엇을 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심지어 올 설조차도 잊어먹었다.). 엄마와 아버지가 할머버지를 대하는 모습을 관찰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