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돌아오는 생일이면 할아버지는 의중을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하신다. 딸기 케이크에 꽂힌 9개의 큰 초를 힘껏, 나누어 부시고는 '내가 언제까지 살겠니?' 물으신다.
30년은 더 사셔야죠. 120까지.
무심한 세 아들들이 침묵을 지키는 동안 막내며느리가 말한다. 바로 옆에서 흉을 봐도 알아듣지 못할 만큼 귀가 어두운 할아버지는 이를 못 들었는지 '너네 엄마 죽고 나서 쓸쓸한데 어서 그이 곁으로 가야지.' 하신다. 무안한 가족들은 어쩔 줄 모르며 웃음으로 무마하다가, '그래 얼른 가셔야지 우리 다 편하지. 시댁살이 30년 이제 지겨운데' 맏며느리의 검은 농으로 분위기를 푼다.
'의사가 오래 살거래. 이 나이에 이렇게 규칙적으로 식사하는 사람 없다고. 8시에 아침, 한 시에 점심, 여섯 시에 저녁. 시간 맞춰서 영양소 골고루 먹잖아. 오래 사는 데엔 이유가 다 있어.'
할아버지는 주에 한 번 2만 5천 원짜리 추어탕을 시키시고는 매 끼니마다 조금씩 나누어 끓여드신다. 지겨울 법도 한데 늘 같은 곳에서 시키신다. 매번 배달이 오는 기사님과 친분이 생겼는지 인사도 주고받는다고 한다. 추어탕을 시키면 오는 4색 반찬도 맛이 좋다고 칭찬하셨다. 상을 차리면 끓일 때마다 진해져 색이 탁해진 추어탕과 4색 반찬, 먹기 좋게 8 분할한 직접 삶으신 달걀, 고모할머니가 보내주신 나물과 며느리들 친정에서 받아온 김치가 올라간다. 락앤락 통에 정갈히 소분된 반찬들은 맛이 좋으면서도 뒷정리가 아주 편해서 할아버지가 홀로 생활하시기에 무리가 없다. 다만 너무 물리시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만 조금. 혼자 살기엔 너무나 넓어 적적한 집을 채우는 것은 자막이 나오는 테레비 뉴스 소리뿐이다. 먹는 즐거움이라도 가지셨다면 삶이 조금은 더 즐겁지 않을까 하는 다소 유치한 생각을 했다. 생일을 맞이해서 김장 김치에 수육 몇 점을 드셨더니 그새 속이 불편하다는 볼멘소리를 하시는 것을 들으니 추어탕은 진정 살기 위한 음식이 아닌가 또 생각했다.
법적 성인이 되고부터는 2개의 생일상 중 할아버지가 계신 곳에 내 자리가 생겼다. 할아버지와 삼 형제들을 위한 상, 며느리들과 손주들을 위한 상. 할아버지와 삼 형제의 상은 다소 경직된 곳이다. 큰아버지들의 질문 공세를 받아내며 먼 곳에 놓인 고기반찬을 정갈한 '오른손' 젓가락질로 가져다 밥에 놓아야 하는 정확성이 요구된 자리다. 자취를 하며 풍성하게 채우지 못한 영양소를 맘 놓고 채우고자 며느리와 손주의 상에 머물고자 했으나... 제한된 공간 때문에 엉덩이를 떠밀려야 했다. 아니나 다를까 대화에 유능하신 둘째 큰아버지가 말을 걸어오셨다. 추어탕 이야기였다. 언젠가는 할아버지가 본인을 부르시더니 그간 먹었던 추어탕 영수증을 보여주셨더랬다. 다 합치니 100만 원 돈이라고. 그간 전화로 시켜서 아버지 밥 챙기느라 고생했다며 봉투에 돈을 넣어 주셨다고 했다. 요즘 세상에 누가 전화로 배달시키냐며 '참 옛날 분이셔, 안 그러냐' 너털웃음으로 이야기를 우습게 끝내셨지만 눈가에 붉은빛이 살짝 돌았다. 부모의 마음은 참 고약하다. 환갑이 다 되어가는 성공한 자식인데도, 평생 주기만 했던 자식에게 받는 것은 익숙지 않나 보다.
할아버지 댁에 가면 읽을거리가 참 많다. 여느 작가가 쓴 책보다도 당신께서 직접 쓰신 것들이 더 재미있어서 손이 자주 간다. 서재 노릇을 하는 작은방 자개장을 열어보면 보자기에 족보가 있다. 누나와 단둘이 댁에 방문할 때면 붙들고 이게 뭔지 열정적으로 설명을 하셨더랬다. 박혁거세부터 내려오는 박(朴)가 족보에 항렬 따라 우리 아버지 대까지 손수 정리하신 족보를 펼쳐 보이시며 기록의 중요성을 강조하시더니, 늘 마무리는 이런 할아버지 없지.. 하는 자랑으로 맺어졌다. 풍요롭지 못한 집안이라 친척집에 얹혀살며 짧은 기간 서당의 가르침과 초등교육 만으로 배움을 끝마친 당신이었지만, 자부심만은 박사 저리 가라였다. 국민학교 5학년 시절 재학생 대표로 졸업생에게 보내는 송사를 읽은 기억을 아직까지 늘어놓으시니 말이다.
당시 공부 좀 한다는 놈들은 자라서 판검사에 어디 사장이 되었는데 말이야.. 내가 그네들 다 제치고 대표로 섰다고.
집안을 일으키고자 자전거를 타고 포도를 떼어 다니며 팔아야 했던 할아버지가 맘 놓고 공부를 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액자에 담겨 잘 보이는 곳에 전시된 손주들의 대학 입학 증명서가 그 마음을 담고 있을까. 스스로를 녹여가며 단단한 가정을 만들어내야 했던 당대의 아들, 오빠, 아버지가 품었던 아쉬움 같은 것. 써서 남기는 것을 좋아하는 당신의 유산이 어쩌면 내게 스며들었지도 모르겠다. 그의 못다 한 이야기를 더 듣고파서 책장을 뒤지게 되는 것일까.
할아버지가 선잠에 드시면 혼잣말인지 잠꼬대인지 알 수 없는 방언을 터뜨리신다. 주의 깊게 들어보니 돌아가신 할머니께 말을 거는 모양새다. 섬칫하면서도 애틋하다. 서재에 꽂혀있던 유독 두꺼운 공책에는 할머니가 요양병원에 입원하시고 나서 발생한 영수증들이 빼곡히 붙여져 있었다. 할머니의 경과를 관찰한 짧은 일기들과 함께. 기록은 사망일지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처, 이옥자 사망일지 ~ 2023년 6/25, 23시 34분 ~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도촌로 8번 길 34 좋은 이웃 요양병원 생애를 맞었다. 60년 동안 本人 뒤바라지에 고생 많았다. 덕분에 온 가족이 편안한 가정을 이루고 잘 살게 되었으니 이제는 당신은 아버님, 어머님 밑에 안장하였으니 편안한 몸으로 하루하루 즐겁게 보내며 "나를 기다려 주기 바란다."
할아버지는 양쪽 세상의 중간에 서 계신 걸까. 이승에서는 남은 가족들이, 저승에서는 사랑하는 부인이 끌어당긴다. 큰 사촌 누나에게 결혼 이야기를 하시는 것을 보면 산 세상에 더 오래 남아 손주들이 짝을 이루는 모습을 보고 싶으신 걸까 생각하면서도, 먼저 떠난 부인 곁으로 훌쩍 떠나고 싶으신걸까 혼란스럽다. 거하게 차려진 생일상을 먹고 원기를 보충하신 뒤에 하는 웃지 못할 농담은 역으로 가족들을 뒤흔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