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유치원 02.
졸업을 했다는 것은 뭐다?
이제 방학이 온다는 것이지.
이번엔 유치원의 방학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유치원 방학.
방학이라는 단어처럼 설레는 것이 또 있을까 싶지만 그 설레는 방학이 오기까지 어마무시한 산과 강을 건너야만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이야기. 방학이면 이것저것 모두 안 해도 되는 자유를 만끽하고 즐기는 시간이겠거니 하지만 학생에게도 방학숙제라는 것이 있듯, 방학을 맞은 나와 동료들에게도 숙제는 존재한다.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방학이여. 그냥 방학만 같아라 하고 싶지만 마냥 놀고 쉴 수 없는 것이 또한 방학이다.
유치원 여름방학이 오기까지.
3월 적응기간, 여름방학을 만나기까지는 3월의 적응기간부터 시작해야 한다. 유아들도 낯설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해야 한다지만 유아를 맞이하는 입장에서도 10명이 훌쩍 넘고 많으면 최대 한 반에 24명의 유아 이름을 최대한 빠르게 외우고 그 유아들마다의 성향 파악과 학부모 얼굴까지 익혀둬야 하는 시기다. 그나마 경력은 무시 못한다고 하루만 지나면 유아들의 이름과 얼굴이 외워지니 못한다고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시작이 어렵다고 3월은 너도 나도 모두 어려운 시기.
4월 상담기간, 적응을 한지 얼마 되었다고 유아의 성향을 파악하고 이제 좀 한시름 놨다 싶은데 학부모와의 상담기간이 다가온다. 가정에서 어떻게 지냈는지, 유치원에서의 한 달 동안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가정과 소통하는 시간으로 상당한 부담감이 마음속을 꽉 채우는 시기.
5월 행사기간, 가정의 달 5월에는 나의 가정이 아닌 유아의 가정을 위한 모든 아이디어를 총출동시켜야 하는 시기다. 어린이날? 유아들이 즐거울 수 있도록 체험 행사와 선물을 준비해야지, 어버이날? 유아들과 고사리손에 시간과 노력을 얹어 유아의 부모님을 위한 다양한 카네이션 선물을 가정으로 보내야지, 스승의 날? 그냥 하루 무사히 지나가기를 바라고, 공개수업의 날? 학부모에게는 유아와 함께하는 참관과 참여가 곁들여진 수업을 공개하기 위한 사전 계획과 준비로 이 한 몸 불살라 마무리 짓는 시기.
6월 방학준비 기간, 방학이라고 해도 유치원은 멈추지 않는 기차처럼 달리고 있으니 계획 수립하고 운영 인력 구인하고 예산 짜고 바쁜 시기.
7월 마무리 기간, 여름 맞이 크고 작은 물놀이로 체험행사 하며 매일 하는 바깥놀이에서도 태양을 피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하얗던 가르마가 피부색이 될 때까지 구슬땀 흘리며 각종 안전교육에 방학 맞이 안전교육을 추가하고 방학 동안 쓸 물품 주문과 정리를 하는 시기.
드디어 기다리던 여름방학을 맞이한다.
여기까지 오기가 쉽지 않지만 이 외에도 잔잔한 일들은 뺐다. -.-
유치원 여름방학.
방학이 되면 놀며 쉬는 것이 전부일 것 같지만 방학에도 쉬지 않는 각종 공문처리, 행정업무, 출장과 연수가 기다리고 개인적으로는 방학에 맞춰 아프기 시작한 몸을 병원들을 순회하며 달래야 하고 가족과 휴가도 가본다. 그러면 며칠 없는 여름방학을 온전히 하루 종일 무엇도 하지 않고 보낸 날들은 또 어디 갔지? 하고 흘러가버린다. 분명 여름방학이 되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해야지 했던 나 자신은 함께 흘러간 것이 분명하다.
유치원 겨울방학이 오기까지.
8월 개학기간, 다시 시작하는 시기로 방학 동안 잃었던 감을 되살리고
9월 추석기간, 우리나라의 모든 것을 알아보자는 위대한 목표로 각종 체험행사를 시작한다. 전통음식도 만들어보고 전통놀이도 해봐야 하고, 가정으로 보낼 추석선물도 고사리손 빌려 함께 만들어 보며 오후에는 공장을 돌리며 2학기 상담도 개시하는 시기.
10월 가을맞이 기간, 10월도 더운데 가을에 대한 모든 것을 시작해 볼까 말까 하는 시기다. 11월에 가을을 맞이하기는 12월에 바로 겨울이 와서 우리나라 기후환경이 진짜 변하고 있구나를 새삼스레 느껴보고 숲체험도 하고 놀이체험도 하고 주말에는 유아들에게 보여줄 자연물도 채집하는 열일모드의 시기.
11월 유아모집 기간, 10월 중순부터 쏟아지는 유아모집 관련 공문에 의거해 계획 수립부터 홍보, 설명회 등등을 해내야 한다. 입학상담은 그동안 하던 일에 보너스로 주어지고 유아모집에 대한 스트레스도 비엔나 소시지처럼 딸려온다. 그 와중에 여름방학 계획을 세웠던 것처럼 겨울방학 계획을 세우고 운영인력을 구하고... 블라블라.... 더하기 생활기록부 종합발달사항을 500자 이내로 기록하며 유아들의 건강검진 마감을 위해 영유아검진 시기를 개별로 살피며 가정에 안내하는 시기.
12월 졸업 수료의 기간, 마무리를 위한 최대치 체력과 시간을 쏟아부어야 하는 시기로 졸업과 수료를 위한 모든 업무를 처리해야 한다. 모든 공문과 사업, 제출할 것을 끝내고 11월에 이어 바쁘고 바쁜 시기를 지나 졸업식까지 끝내면 비로소 겨울방학이 온다.
유치원 겨울방학.
지금 겨울방학의 한가운데에 와 있다. 눕고는 싶지만 방학기간에도 쉬지 않고 찾아오는 공문과 제출, 제출, 제출의 산을 넘기기 위해 노트북을 켰다. 겨울방학은 여름방학 보다 더 길고 길지만 한 해를 마무리하기 위해 끝나지 않은 업무를 해내야 한다. 각종 정산과 제출 공문을 처리해야 하고 무엇이든 마무리를 해두어야 하며 그 사이에도 유치원은 멈추지 않고 방학 전과 다를 바 없이 동일하게 운영된다. 방학 동안에도 가정에서 오는 연락을 받아야 하고 방학에 맞춰 아프기 시작한 몸을 병원투어 해줘야 한다. 다음 학년도를 위한 준비도 쉼 없이 돌아간다. 분명 겨울방학엔 뭐 할까 생각해 뒀던 것 같은데, 밀린 병원만 다녀왔다.
예전과 달라진 방학.
이전의 방학은 진정한 방학으로 유치원도 쉬고 유아도 쉬고 보고 싶은 마음을 담은 편지를 가정에 발송하던 추억 돋는 시기였다면 요즘의 방학은 방학답지 않은 돌봄의 연장기간이 되었다. 그만큼 돌봄이 필요한 가정이 늘고 양육은 교육기관이 대체하고 있는 사회적 변화가 반영되었다. 유치원마다 상황은 다르겠지만 1년에 평일 기준 5일 빼고 모두 운영하고 있는 상황에서 방학이란 예전만큼 편한 기간이 아니라는 것을 몸소 체험 중이다.
졸업을 하면 방학이 온다.
방학은 왔지만 방학답지 않다.
그래도 방학이라는 단어는 항상 매력적이지.
기다려진다.
왔다. 방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