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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이d Jan 18. 2022

결국, 하나의 장면에서 우리는 만나게 된다

이 장면이 내 꿈이라면, #0- prologue

 "당신은 어디서 당신 자신을 만나는가?"

내 꿈으로 상담을 받던 어느 날의 일이다. "무이 씨는 소통하고자 하는 욕구가 어마어마한 사람이네요." 내 상담자 특유의 무 자르는 듯한 단호한 말은 종종 오랜 숙고를 요구한다. 평소에 나도 그런 생각을 했다고 하더라도 한번 더 스스로에게 묻고 생각해보게 된다. "네, 그렇죠." 인정은 하지만 막히는 부분이 있었다. '어마어마한', '소통의', '욕구'. 이 세 어절 중 어딘가에서...... 그건 '어마어마하다'는 부사에 있었다. 상담자가 그 말을 할 때의 느낌은, 좀 더 선명하게 보도록 돕기 위한 강조의 의미로 쓴 부사가 아니었다. 그때의 '어마어마함'은 문장의 기본 요소였다. 그렇게 말하지 않으면, 내 꿈의 색깔과 내 상태를 정확하게 말할 수 없다는 느낌의 절대적인 부사.


 상대방이 하는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래야 하는 것도 아니다. 나에 대한 칭찬이든, 비판이든 우리는 모두 나를 향해 오는 말들과 그 속에 담겨 있는 생각들에 대해 되받아치고 강렬하게 부정하거나 열렬히 받아들일 수 있으며, 이번 일처럼 오래 숙고해볼 수도 있다. 그리고 어떤 시간이나 기회에, 알껍질이 쩍하니 갈라지듯 결론을 내리게 된다. 그때 상담실에서의 메시지가 나에게 어떤 식으로든 안착하는 데 필요한 시간은 1년이었다. '어마어마할' 수도 있는 소통의 욕구라는 말에 가슴이 답답했던 건 소통이 없으면 죽을 것 같은 절박함이 그 말 안에 담겨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 말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려면 나는 손에 들고 있던 이상적 자아상을 놓아야 했다. 이때에 떠오르는 건 알베르 라모리스의 <빨간 풍선>(1956)이라는 단편영화의 마지막 장면이다. 아이의 손에서 벗어나 푸른 하늘속으로 녹아들어가는 빨간 풍선의 모습.



  내 인생의 주치의, 영화와 꿈

내가 상담실에 들어서기 전, 꿈의 가치를 발견하기 전까지 내 개인 주치의는 영화였다. 내가 혼자라고 느낄 때 영화는 항상 나를 적절하게 반영하며 어느 쪽으로든 치우쳐 있는 내 내면의 혼란스러운 상황에 (최소한의) 균형을 잡아줬다. 나는 결국, 마음이라는 내면의 물줄기를 이해하기 위해 영화를 보고 있던거다. 그것이 어떤 영화든 나는 영화 한편 한편을 통해 나 자신과 더 잘 만나고 싶었던거다. 사춘기 이후엔 돈이 생기면 극장을 찾았다. 극장은 나의 2~3시간짜리 아지트였다. 적어도 영화 앞에서는 솔직하게 울고 웃을 수 있었고, 이미지가 말을 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영화들과 그에 대한 비평을 읽고 보면서 배울 수 있었다.


 상담 관계를 통한 성숙과 배움을 다룬 영화들은 뭐가 있을까? 나에게 그런 영화 한 편 꼽아보라고 하면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의 <몬스터 콜>(2016)을 말하겠다. 내가 처음 융의 분석심리학에 매료되었을 때의 느낌이 이 작품 안에 있었다. 융이나 그 후학들이 열거한 분석 사례들을 이야기로 만든다면 이런 게 아닐까 싶었다. 인간적 이해를 넘어서거나 위협이 될법한 존재가 출현하고 그 외형에서 느껴지는 위협을 뚫고 들어가면 만나게 되는 심오한 지혜와의 만남같은 것이 뼈대를 이루는, 예상외로 단단한 영화였다. 판타지나 초인적 존재들의 영웅담이 흔히 즐길 수 있는 이야기가 된 시대에 정말 가치있는 판타지를 가려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우후죽순처럼 나오는 소년 소녀의 모험 판타지물 사이에서 진짜배기를 한눈에 알아보기란.


한 컷의 사진이나 그림과 달리 영화는 이미지들의 연속, 배치를 통해 전혀 다른 이야기를 만들고 그에 걸맞는 새로운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것이 단순한 스토리라고 해도 이미지는 감독의 의도를 비껴가기도 하고, 감상의 폭을 무한대로 넓히기도 한다. 이미지의 예술이기 때문에 영화는 아름답다. 새로운 시선을 열어보여주며 그에 맞춰 생각의 길 또한 다른 곳을 찾아갈 수 있게 된다. 이미지는 그렇게 신기하다. 세계 각국에서 카메라를 들고 자기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고자 고투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눈에 보이는 것 이면의 세계, 마법의 세계같은 곳을 찾아다니는 탐험가들이 떠오른다. 안전하게 통제된 스튜디오 안에서 만든 영화 이미지조차 그 탐험의 성격을 잃지 않는다. 이미지는 눈에 보이는 것이지만 보이는 것 이상의 뭔가를 동시에 보여주고 있어서 신기하다.


 영화의 이런 점이 꿈과 닮았다. 내가 영화에 매달렸던 것이나 꿈의 가치를 발견한 후의 지금이나 나는 변함없이 이미지에 매료돼 있는 셈이다. 이미지를 통한 배움과 이미지가 하는 말을 향유하는 것에 푹 빠져 있다고 보는 게 맞는 것 같다. 그런 태도 안에서 나는 꿈과 영화를 동일하게 본다. 그런 면에서 할리우드를 일컬어 '꿈의 공장'이라 일컫던 것에서 묘한 울림을 받는 건 나뿐일까?


 영화판이 관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자신들의 기술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거대한 판타지, SF에 몰입하는 것과 정반대되는 방식으로 우리는 내면의 판타지인 꿈에는 다소 냉담하다. 영화 세계가 의식적이고 무의식적인 노고를 쏟아부어 만들어낸 이미지에는 그 결과에 있어 옥석이 있을 수 있지만 꿈이 만들어낸 이미지는 모두 금이다. 로버트 A.존슨이 말했듯이 "상상을 통한 이미지와 친밀한 관계가 형성되면 이미지와 상징 너머에 존재하여 흘러들어오는 에너지의 존재를 알게 될 것"(<내면 작업>)이다. 우리가 기억의 영사기 앞에 꿈의 필름을 돌리면 마음의 극장에 꿈이 상영되고 그때마다 우리는 평소라면 운좋아야 만날 수 있는 별 4~5개짜리 영화에 값하는 이미지와 드라마의 극을 보게 될 것이다. 꿈 작업할 때 자주 쓰는 말이 '이것이 내 꿈이라면'이라고 생각하며 투사를 하는 것인데 그 영어 단어가 projection(벽에 영사를 쏘아서 보는 것)이다.


  하나의 장면에서 시작해 돌아보는 나의 마음

영화를 대하듯이 꿈을, 꿈을 대하듯이 영화를 보려고 한다. 상담실은 개인적이고 비밀에 찬 장소이지만 극장은 대중을 위한 열린 장소이다. 함께 꾸는 한 편의 꿈에 대해 이야기하기 그만큼 좋은 곳이 있을까? 한 편의 이미지-이야기에 집중하고 감상자의 충만한 느낌과 생각으로 만나 이야기나누며 나와 타인의 내면에 가닿을 수 있는 곳. 극장에는 그만한 내력이 있으며 개인과 집단의 치유가 가능한 장소라고 은유적으로 표현하기 적합한 곳이다. 나는 집단으로 꿈 작업에 참여할 때도 영화를 자주 언급했는데, 꿈 작업과 같은 내면작업을 하면 자연히 일어나는 집중력 덕분에 영화 속 한 두 장면을 같이 보며 이야기할 때의 소급력은 평소보다 배가된다. 내가 영화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그것이 꿈을 다룰 때 영화를 같이 활용하면 더 가치가 있는 이유다.

 

 나는 앞으로 한 편씩, 나를 뒤흔들었던 영화들을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그리고 그 속의 한 장면을 보려고 한다. 내 안에 가장 깊게 닻을 내린 그 장면이 '내 꿈이라면 어떤 의미일까' 상상해보려고 한다. 내가 그 장면 앞에서 떨었고, 울었으며, 행복했다면 그건 꿈이나 진배 없다.


 상담자의 말이 맞았다. 나는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은 욕구가 어마어마하다. 그러다 보니 자주 겪는 소통 실패의 경험이 나를 쪼그라들게 만들었고, 점점 그 욕구를 억눌러왔던 것이다. 내가 바로 극장이었다. 내 안에서 상영되는 영화들을 잘 보고, 내가 하고자 하는 말과 내 이미지를 본 당신이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 나누고 싶다고 말하는 극장이었다. 이 지면이라는 작은 극장에서 다시, 꿈과 영화를 오가며 우리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조리개를 잘 맞추어가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한다.



 이 글의 초반부에 내가 상담자와 다룬 꿈은 아래와 같다. 이, 내 꿈이 당신의 꿈이라면, 어떤 의미라고 생각하는가? 당신 마음에 내 꿈은 어떻게 투사되고 있는가?


   꿈 속에서 나는 개인 출장을 다녀오던 길이었다.

낡고 오래된 나의 차의 외양이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드라이브 마이 카>(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에서 가후쿠가 10년 넘게 몰던 사브 900 터보와 닮았을 것 같다. 네비게이션의 안내를 따라 운전하고 있었다. 길은 낯설었다. 초행길이기도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들어가는 길의 낯섦은 집이 아닌 다른 곳으로 인도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주었다. 그래, 집이 아니었다. 차가 더이상 갈 수 없는 곳에는 바닷가에 면한 작은 마을이 있었다. 실수와 이탈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따뜻한 분위기의 바닷가 마을에 발을 내디디면서 짜증보다는 기쁨에 차올랐다. 행정구역상 내가 사는 도시에 포함된 곳이건만 이런 곳이 있단 얘긴 들어본 적이 없었다. 나는 마을을 한껏 돌아본 후 집으로 돌아가 아내와 엄마를 데리고 다시 마을을 찾았다. 두번째 방문도 첫번째 방문처럼 행복한 여행이었는데 아내와 엄마는 별 감응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는 함께 차에서 내렸지만, 걷는 방향이 달라지면서 서서히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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