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쓰시나요? - 1월의 글쓰기 모임
글을 쓰는 것은 읽는 것과는 또 다른 경험입니다. 마치 쌍둥이같아요. 닮았지만 많이 다르고, 또 판이한 듯한데 닮은 구석이 솔찬히 보이는 두 사람같아요(문득 든 궁금증! 동물에게도 쌍둥이가 있을까요?). 경험적으로도 그렇고, 보통 그렇게 말하기도 하지만 읽는 것보다는 쓰는 것이 어려운 일이죠. 이미 만들어진 글을 눈이나 목소리로 읽기만 하는 일보다 없는 것에서 있는 것을 만들어내는 작업인 글쓰기는 오랜 씨름을 요하니까요. 오래전에 비폭력대화 워크숍에 참여를 했었는데, 이 욕구 차원에서 나의 동기를 찾아보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감정을 바라본 뒤 그 아래에 있는 채워지거나 채워지지 않은 욕구를 탐색하다보면 좀더 맑게 자기와 그 상황을 이해하게 돼요. 그런 식으로, 이 쓰기와 읽기에 대해서도 욕구 차원에서 따져보면 같은 영역 안에 있는 것 같아요. 뭔가 의미 있는 것을 얻고 확인하기 위한 것이라는 욕구 말이죠. 지식이나 정보, 사상이나 공감이나 쾌감을 선사하는 멋진 이야기나 시같은 것을 쓰고 읽는 것은 모두 그것의 공급자이든, 수혜자이든 같은 욕구에서 움직이는 것 같아요. 적어도, 저는 그렇다는 걸 알겠어요.
그렇다면 같은 시간에 5~10권의 책을 읽는 것과 한 권의 책 또는 한 편의 단편소설이나 논문, 에세이를 쓰는 것 사이에 차이가 있을까요? 그것이 내 안에 어떻게 남는가?라는 질문에 따랐을 때 말이죠. 저는 오히려, 글을 쓰는 편이 더 확실한 욕구 충족이 될 수도 있겠다는 의견을 갖고 있어요. 물론, 그 과정에서의 소화불량과 예민함은 있지만 말이죠. 그럴땐 한 시인의 표현에 깊이 공감 식으로 시간을 가지며 회복해야 하는 텀이 필요한 것도 같아요.
쓰는 것보다 읽는 것의 기쁨이 더 크다는
이 사태를 인정하기가, 사과꽃 난분분하는
과수원에 혼자 누워 있는 일만큼 모질다
- 이문재, <겐지에 울다> 일부
뭐가 더 낫다고 계산할 문제는 아니고, 결국 같은 욕구 위에 궤적을 그리는 것이라 해도 내가 선택할 일이고 저는 좀더 글을 쓴느 것에서 충족되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게 맞는것 같아요.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는 것이 연말에 할 일이고, 곧바로 년 초가 되면 앞날을 내다보게 되는데 올해에는 글을 계속 써보는 데 힘을 주기로 했어요. 11월 즈음 이미 정한 마음이지만, 새해라는 핑계로 이제부터 시작한다는 구실이 필요했던지 본격적인 글쓰기는 1월 1일부터 시작하게 됐어요.
꾸준히 쓰는 것에서 제게 가장 큰 장애물은 혼자 써야 한다는 데 있었어요. 적절한 반영을 받지 못한 채 내 안에서만 글을 쓰다보면 허무함을 느끼기도 하고, 스스로 난해함에 빠져 길을 잃은 상태에서 빠져나오질 못해 중도 포기를 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올해 들어 글쓰기의 첫째 목표는 '함께 글 쓸 사람들을 모으자!'였어요. 자기만의 글을 쓰겠지만, 한 공간에서 자기 작업을 집중해서 하고 잠시라도 소감을 나누거나 하면 지금까지 했던 것보다 긴 호흡으로 해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렇게 1월의 '오롯이, 글쓰기' 시작. 정한 시간만큼음 주변 보지 않고 글만 쓰자. 글을 통해서 나를 살피자. 라는 의미로 모임의 이름을 그렇게 정하고 온라인에 모임을 알렸어요. 운영은 평일반(화~목)과 주말반(일)이고 시간은 9시 30분~12시.
이렇게 알리면서 마케팅의 측면에서 대상이 명확하지 않은 것 같다거나, 운영 방침이 좀더 명확하면 좋겠다는 조언을 들었어요. 놓쳐선 안될 부분들이고 다소 섣부르게, 형식이 완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하는걸까 하는 불안한 생각도 들긴 했었는데 이 모임은 우선 '내가 계속 글을 쓰고 싶으니까'라는 마음에서 시작한 것이기 때문에 이렇게라도 정한대로 올려야 암묵적인 약속이 되고, 신청자가 당장 있든 없든 정하고 알린 그 시간에 저는 제 작업을 계속 할 수 있을거 같았어요.
처음은 저 혼자 시작했어요. 일단 1월달은 내가 쓰려는 글이 명확하게 브런치 작가 도전에 맞춰 구상한 '이 장면이 내 꿈이라면'이었기 때문에 자리를 잡고 바로 시작할 수 있었어요. 신청자가 없어도 난 내 글을 쓴다, 일단! 이런 저런 생각이 일어나지만 지금은 글쓰기에 집중! 그렇게 2주정도 지났을까? 평일반에 S 님과 K 님이 신청을 하셨고, 주말반엔 H 님이 신청을 하셔서 1월 한달의 글쓰기 모임은 그렇게 혼자가 아니게 됐어요. 그 사이에 2주동안 쓰고 고치기를 반복하며 제출한 '브런치 작가 도전'의 합격 연락도 받고. 적어도 글을 쓰는 것에 있어서 2022년 1월은 기분 좋은 신호탄같은 한 달이었어요.
주말반의 H 님은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예요. 조용히 들어오셔서 가만히 자리를 잡고 바로 글을 쓰시더라고요. 가벼운 인사로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말수가 적으셔서 제가 더 많은 이야기를 끌어내는 데 조심스러워지더라고요. 사실, H 님이 공식적으로 첫 참석자이셔서 이 모임에 대해 저도 준비가 덜 된 상태였죠. 그래서 본의아니게 '오롯이, 글쓰기'의 문을 처음 두드려주신 H 님께는 더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네요.
평일반의 S 님은 갓 수능을 본 20대 초반의 남성이었는데, 말하는 것이나 쓴 글들의 일부를 들어보면 섬세하고 자기만의 감성을 갖고 그것을 글로도 잘 옮겨내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어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으며 자신의 관심사와 관련해서 공명되는 부분에는 열정적으로 반응하기도 하고 말이죠. 처음 모임을 하고 너무 좋아서 그 느낌을 이어가기 위해 집에 가는 길에 도서관에 들러 문학서를 잔뜩 빌려 읽었다는 말이 기억에 남아요. 그렇게 빌린 작품들이 대개 프랑스 작품이었는데, S 님의 글을 봐도 불문학에서 느낄 수 있을법한 화려하면서도 섬세하고 시적인 언어가 보이거든요. 이분의 프랑스 언어의 영혼에 가까운 분인가보다, 라고 지금은 생각하고 있습니다.
K 님은 인근 동네에 사시는데 산책길에 우연히 이 모임 포스터를 보고 신청을 하셔서 지금까지 꾸준히 함께 하고 계세요. 항상 저보다 일찍 오셔서 책을 읽고 계세요. 작은 책방에서 구매한 이상의 <날개> 필사책을 보여주시며 작은 체구에서 나오는 단단하고 솔직한 말들로 분위기를 한껏 띄워주시는 분이에요. 그리고 집에서 만든 한과나 떡을 챙겨오셔서 우리의 글쓰기가 정신과 몸 모두 채워질 수 있도록 일조해주기도 하세요.
S 님, K 님과 함께하는 평일반은 특히나 그 앞뒤로 각자 가져온 책이나 쓴 글에서 낭독하기를 꼭 하고 있는데, 그게 참 백미예요. 자고로 뛰어난 문장은 그 자체로 미적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내 안에 정리되지 않은 생각이나 느낌을 한방에 정리해주는 데 있는 것인데 그런 문장들을 하나씩 나누고 보면 그 순간의 행복감은 뭐라 말하기가 어려워요. '벅차다'라는 게 이런 뜻인가? 싶을 정도더라고요.
그때 읽었던 문장 몇 개를 소개하면 이래요.
글은 아무리 소품이든 대작이든, 마치 개미면 개미, 호랑이면 호랑이처럼 머리가 있고 몸이 있고 꼬리가 있는, 일종의 생명체이기를 요구하는 것이다. 한 구절, 한 부분이 아니라 전체적인, 생명체적인 글에서는, 전체적이요 생명체적인 것이 되기 위해 말에서보다 더 설계하고 더 선택하고 조직, 개발, 통제하는 공부와 기술이 필요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_ 이태준 <문장 강화>
자유의지. 그것은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것일까? 자유의지로 인해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살고 있는 나에게...... _ SH 님의 메모
중요한 건 어떤 사람이냐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 아니냐인 것이다. 서두르지 않는 것, 손을 써서 일하는 것, 그리고 하루하루의 즐거움을 한 그루 자신이 나무와 함께 할 것/ 멋진 나무는 아니었지만 그것이 자신의 나무라고 생각하면 신기하게도 '벅찬' 기분이 들었다. _ 요시다 히로시 <심호흡의 필요>
나 자신의 징검다리, 돌다리가 되어 스스로 의지하며 살아라. _ S 님의 불경 인용
쓰는 행위는 나를 일상에서 분리시킨다. 복잡한 잡념과 걱정을 추방한다. 그리고 내면의 목소리가 활자로 드러날 수 있도록 돕는다. 홀로 삼키고 휘발될 단상들이 이제는 곁에 남는다. _ H 님의 글 한토막
이렇게 평일, 주말반이 채워지면서 1월이 지났네요. 아, 그런데 한 명 더! 하루지만 제게 기분 좋은 에너지를 나눠주고 간 오랜 친구가 있어요. 그날은 눈도 내렸고, 아직은 제가 혼자 글을 쓰고 있을 때였는데 근처 볼일을 보고 '오늘 글 쓰러 가도 돼요?'라는 연락과 함께 찾아온 SH 님. 그날은 한 30분 글 썼나? 그 후에는 이런저런 이야기로 시간을 다 보냈는데, 힘이 됐어요. 즐거웠고요. 그날 브런치 연락을 받았는데, SH 가 반가움을 안고 찾아주면서 내 합격 소식도 데리고 왔나보다 라며 지레 생각에 더 크게 웃게 됐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