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보내주기는 너무 아까운 아이들의 능력
지난 시간에는 아이들이 말소리를 구분하는 방법에 대해 알아보았는데요,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음소지각능력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모국어 음소를 구분하는 능력만 남고, 빠르게 소실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음소지각능력이 소실되지 않고 그대로 유지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이번 시간에는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음소지각능력을 잘 유지하는 것이 외국어 학습에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외국어를 배우는 과정의 가장 첫 단계는 해당 언어 체계의 발음을 학습하는 것입니다. 그 언어에서 사용하는 발음을 알아야 단어를 인지할 수 있고, 문장을 구성하는 능력이나 세부적인 문법 지식은 그 후에 갖출 수 있는 것이죠.
이미 모국어 언어 체계에 익숙해진 화자가 외국어의 낯선 발음을 익히는 것은 화자가 특정한 문자에 매칭되는 소리를 카테고리화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독일어를 배우기 시작한 화자는 독일어에서만 사용하는 글자인 에스체트(ß)의 발음 [s]를 처음 듣게 됩니다. 이때 같은 발음을 충분히 많이 들으면 (enough speech input) 화자는 발음에 대한 통계적인 정보를 갖게 됩니다. 쉽게 말해 ß라고 표기한 글자의 발음이 조금씩 다르게 들리더라도 모두 동일한 표기를 가지므로, 자신이 인식한 서로 다른 소리를 모두 하나의 발음인 에스체트(ß)라고 학습하게 됩니다.
이러한 통계적인 정보를 가진 화자는 무의식적으로 이를 일반화, 카테고리화하여 발음을 인식하게 됩니다. 위 그림에서 음성학적으로 (1), (2), (3), (4)는 모두 다른 소리지만, 범주 경계를 기점으로 (1), (2), (3)은 모두 같은 소리인 [ß]로, (4)는 다른 소리인 [sh]로 인식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태어날 때 가지고 있었던 음소지각능력이 소실되어 모국어 음소만 구별할 수 있는 상태에서는 모국어에 존재하지 않는 발음을 완벽히 인식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이미 한국어 음소 구별 능력만 남게 된 성인 화자가 모국어에 존재하지 않는 에스체트(ß) 같은 발음을 다른 소리와 정확히 구별하고 직접 발화하기는 매우 어렵다는 것입니다. 외국어 발음 체계에 익숙해지는 데에 오랜 시간이 걸리고, 공부를 아무리 열심히 해도 원어민과 같은 발음을 내기 어려운 이유는 바로 외국어에 대한 음소지각능력이 소실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양한 언어의 말소리를 구별할 수 있는 음소지각능력이 계속 유지된다면 외국어의 새로운 발음 체계에 익숙해지는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원어민과 같은 발음을 내는 것도 가능해집니다. 이는 단순히 ‘좋은 발음’에 그치는 요소가 아닙니다. 외국어 학습에서 가장 중요한 태도는 바로 자신감이죠. 발음을 정확하고 쉽게 익히는 능력은 외국어 학습 전반에 자신감을 키워주면서 매우 큰 장점이 될 수 있습니다.
앞선 포스트에서 살펴봤듯이, 모든 아이들이 갖고 태어나는 음소지각능력은 생후 12~18개월 사이에 급격하게 소실되기 시작합니다. 본격적인 언어 학습을 시작하기 전에, 아이가 이미 가지고 있는 황금같은 능력을 먼저 지켜주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다음 포스트에서는 음소지각능력이 소실되는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고, 이를 예방하기 위한 방법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