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들에게 박지성이 지성 '팍'인 이유
지난 포스팅을 통해 아이들이 본래 가지고 태어나는 음소지각능력을 유지했을 때 벌어지는 일(링크)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오늘은 음소지각능력이 소실되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알아보면서 모국어 체계에만 익숙해진 아이들이 외국어 언어 체계에 적응하기 어려운 이유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앞서 설명했듯이, 18개월 이전의 아이들은 대단히 정교한 음성언어 지각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 세계 모든 언어의 음소(발음)를 구분할 뿐만 아니라 단어의 경계(word boundaries) 역시 잘 알고 있고, 수많은 말소리(speech analogs) 중에서도 실제 언어(language)를 선호합니다. 무엇이 의사소통을 위해 사용되는 소리, 즉 ‘언어’인지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아이들의 지각 능력은 후속 언어 학습의 기반이 됩니다.
아이들이 모국어 음소 체계에 익숙해지면서 모국어를 배우는 과정, 즉 음소지각능력이 소실되는 과정은 자신이 쌓아온 통계적 정보를 바탕으로 다양한 지각 능력을 발전시키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외출이나 이동의 제약이 있는 영아의 상황을 고려했을 때, 이 시기 아이들이 접하는 소리의 대부분은 모국어 음소입니다. 반면 모국어 이외의 음소는 접할 기회가 거의 없죠. 그 결과 들은(지각한) 경험이 있는 소리들의 통계 정보가 지각 편향(perceptual bias)을 만들고, 이것이 모국어 음소 체계 학습의 기반이 됩니다.
생후 6개월 정도가 된 아이들은 연속적인 말소리(continuous speech stream)를 듣고 단어의 경계를 알아차릴 수 있게 됩니다. 이는 다양한 음소 또는 어절의 공기 관계(co-occurrence patterns of syllables)의 통계 정보를 파악한 결과인데요, 쉽게 예를 들어보자면 blink, blue, blimp 등 bl로 시작하는 단어는 자주 들리지만, tf로 시작하는 단어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이러한 통계적 정보를 바탕으로 본격적 언어 습득을 위한 체계를 갖추기 시작합니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고 생후 12개월 정도에 접어든 아이들은 모국어에 대한 경험과 정보가 충분히 많아지면서 모국어의 특징적인 정보에 의존하게 됩니다. 각 언어마다 강세(stress), 단어 경계(word segmentation), 음소배열(phonotactics) 등 특징적인 요소들이 몇 가지 있는데요, 각 언어 예시를 통해 아이들이 어떤 정보를 활용하여 말소리를 인지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단어 경계
독일어나 네덜란드어에서는 어말(단어 끝)에 오는 자음은 모두 *무성음으로 발음합니다. 이를테면 ‘개’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인 ‘Hund’는 [hund]가 아니라 [hunt]로 발음하는 것이죠. 이처럼 단어 경계를 기준으로 소리가 다르게 나는 특징을 가진 언어들이 있는데, 아이들이 말소리를 들을 때 이런 특징적인 정보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이죠.
*무성음과 유성음
무성음(voiceless): 성대가 울리지 않는 소리 ex. [p], [t], [k]
유성음(voiced): 성대가 울리는 소리 ex. [b], [d], [g]
음소배열
한편 언어에 따라 음소배열의 제약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각 언어마다 함께 등장할 수 있는 발음들, 함께 등장할 수 없는 발음들, 또는 특정 위치에 올 수 있는 발음과 올 수 없는 발음이 서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한국어로 예시를 들어보겠습니다. 사실 한국어에서 어두(단어 첫글자)에 오는 자음은 모두 무성음으로 발음합니다. 한국인들은 [ㄱ]을 유성음인 [g]로, [ㅂ]를 유성음인 [b]로 인식하고 있지만, 실제로 어두에서 각 음소가 발음되는 양상은 [k]와 [p]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외국인들이 한국 이름의 성씨 ‘김’과 ‘박’을 ‘gim’, ‘bark’이 아닌 ‘kim’, ‘park’이라고 인식하는 것이죠.
이와 같은 모국어의 특징적인 정보에 점점 익숙해지면 지각 편향은 더욱 심해지고, 결과적으로 이 세상에는 모국어 체계의 발음들만 존재한다고 인지하게 됩니다. 즉, 음소지각능력이 소실되는 것이죠. 앞선 예시로 돌아가서 설명해보겠습니다. 한국어 자음 [ㄱ]은 어두와 어말에서는 [k]로, 모음 사이에서는 [g]로 발음됩니다.
(1)김 → [kim]
(2)박 → [pak]
(3)가(4)구 → [kagu]
실제로 (1), (2), (3)의 [ㄱ]는 [k]에 해당하고, (4)의 [ㄱ]은 [g]에 해당하는 서로 다른 소리입니다. 그러나 한국어에서는 두 소리를 구분하지 않고 한 개의 발음 [ㄱ]으로 인식하죠. 따라서 한국인은 서로 다른 두 소리를 들었을 때 구분하지 못하지만, 외국인이나 아직 한국어에 익숙해지지 않은 영아는 두 소리를 분명하게 구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참고문헌
Janet F. Werker, Judit Gervain(2013), Speech Perception in Infancy: A Foundation for Language Acquisition
Gouskova, Maria, 'Optimality Theory in Phonology', in Bernd Heine, and Heiko Narrog (eds), The Oxford Handbook of Linguistic Analys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