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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oyager Sep 30. 2018

친구, Friend,
ともだち, 朋友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

0. 극장에서 영화를 보다 보면,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가도록 극장에 앉아 있을 때가 있다. 너무나 내용이 좋아서 여운이 길게 갈 때, 방금 본 영화 속 세계에 더 오래 있고 싶을 때,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기 아까울 때가 있다. 


1. 인생이라는 영화가 상영되는 극장에서도 그런 순간들이 있다.
비록 많지는 않지만, 소중하고 마음 따뜻해져서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 그런 순간들. 


나에겐 

2018년의 주니어보드가 그랬고,
2017년 밤을 새워가며 새로운 걸 배우던 인턴이 그랬고,
2016년 미국 LA 한복판에서 비빔밥을 팔던 순간이 그랬고,

2012년 대학교 친구들을 처음 만났을 때가 그랬다.

글을 쓰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기적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2. 2012년의 봄, 대학교로 도망치다시피 입학한 나는 영락없는 거지 꼴이었다. 옷차림도 추레했고, 두 눈은 어디에 초점을 두어야 할 지를 몰라서 왔다갔다했다. 오랜 따돌림에 찌들은 정신은 참 많이도 병들어 있었다. 


그러다가 기숙사에 같이 사는 것을 알게 된 '인싸' 친구와 우연히 수업 때 같이 앉아서 친해진 친구 두 명이 나를 데리고 이리저리 다니면서, 내 인생은 엄청난 속도로 변하기 시작했다.


술을 마시는 것 자체가 어마어마하게 나쁜 일이고, 귀가 울려서 도대체 왜 가나 싶었던 노래방에서 나는 어느새 그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서 재밌게 놀았다. 


그 친구들을 따라서 밤도 새 보고, 밴드부에 들어가서 온갖 개고생을 하며 길거리 공연도 했다. 대학교 첫 축제 때 정신없이 공연을 마치고 밤하늘을 볼 때는, 인생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인생이란 게 살아볼만 하구나, 나름.


3. 그 이후로 내 인생은 믿기 힘들 정도로 잘 풀렸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게 되었고, 미국 한복판에서 비빔밥을 파는 인턴도 해 봤으며, 올해에는 내가 1년을 넘게 손꼽아오던 주니어보드라는 대외활동에 합격해서 7달을 정신없이 달려왔다. 그 과정에서 만난 친구들은 하나같이 대단해 보였다. 어떻게 그렇게 다들 자기가 원하는 게 확실하고 성격도 매력적인가 싶었다. 치사하게 말이지.


4. 친하게 지내고 고마운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갈수록 자주 하게 된다. 자기 일들 열심히 하고 노는 건 또 엄청나게 잘 노는 친구들 모습에 질투가 나기도 하고, 나도 그런 친구들에 걸맞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가만 생각해볼수록 어떻게 이런 사람들이 내 곁에 있는지가 신기하다.



전 거짓말을 못해요. 다 티 나요. 대신 제 가장 강력한 무기는 진심이라고 생각하고, 사람들이 절 예뻐해 주는 것도 진심을 다해 열심히 하는 게 느껴져서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진짜의 내가 진짜로 멋진 진심을 가져야 하는 구나, 생각하죠.
_김세정, GQ 인터뷰 <구구단 세정의 진심> 중



언젠가 본 인터뷰인데, 공감이 참 많이 됐다. 나는 특히나 감정을 컨트롤하는 데도 서툴고 (그래서 거짓말 정말 못 한다), 언변이 화려한 것도 아니었다. 아마 나와 친한 친구들은 바로 알았을 것이다. 피곤했을 때도 있었을 거고. 나름 노력하지만 부족한 것 같아서 친구들에게 미안할 때가 많다. 그런 내가 잘 하는 건 딱 하나였다. 

진심으로 사람을 보고 듣는 것.


5. 난 나와 친한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가 재미있었다. 따로 재거나 따지려는 생각은 해 본 적도 없었고, 그렇게 생각할 이유를 찾지도 못 했다. 그러다 보니 친구 하나하나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필요한 게 있으면 내가 먼저 챙겨주고 싶었다. 다른 건 없고, 나와 함께해주는 그것 자체가 감사해서. 


6. 친구에 관한 글들은 많은 글 중,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글이라면 이것일 것이다. "힘들 떄 의지할 친구 하나만 있어도 그 인생은 성공한 인생이다" 같은 글. 이 글에 따르면, 나는 아마 아주 성공한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부서진 마음의 정원에 꽃을 심어주고, 물을 주고,
잔디를 깎아준 모든 사람들에게 나는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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